한국과 러시아는 극동지역 경제 협력에 대한 관심과 논의를 이어왔으나, 교역을 제외하고 뚜렷한 경제 협력의 산출물이 보이지 않는다. 기존 한-러 협력의 비즈니스 접근 모델은 러시아의 넓은 영토, 분산된 인구, 제한된 소비시장, 동남아에 비하여 높은 노동자 임금, 각종 행정 제도 및 규제, 환율 리스크, 미국과 EU 제재 등으로 한계를 지니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러시아 극동 시장 진출을 위해서는 이전 접근과는 다른 스마트한 방법이 필요하다. 우선, 러시아의 산업 생태계, 제반 행정 시설의 한계를 극복하는 방법은 플랫폼 비즈니스 모델을 구축하는 방안을 고려해볼 수 있다. 두 번째로, 양국 경협 지원을 목표로 한 금융 투융자 플랫폼을 적극적 예산 집행이 가능한 구조로 전환하여야 한다.
오영일(포스코경영연구원)
한국과 러시아 극동 간 경제 협력에 대한 관심과 논의는 양국 수교 이후 지금까지 계속 이어지고 있다. 교역 측면에서는 점진적인 확대가 이루어져 러시아 극동의 핵심 교역국으로서 한국은 중국과 함께 가장 활발한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또한, 최근에는 블라디보스톡을 중심으로 한국 관광객이 크게 늘며 운항 항공 편수도 확대되었다. 뿐만 아니라, 이미 수년 전부터 한국으로 유입되는 극동 시베리아 지역의 러시아 의료 관광객도 꾸준히 증가하고 일반 러시아 관광객들도 눈에 띄게 늘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경제 교류에 있어 교역을 제외하곤 뚜렷한 경제 협력 산출물이 안 보인다. 한러 양국 정부 차원에서 추진했던 남-북-러 가스, 송유관 연결 사업, TSR-TKR 연결 사업, 기업 차원에서 추진하던 나진-핫산 프로젝트는 여전히 어려움을 겪고 있다. 러시아의 최대 잠재력이라고 일컬어지던 풍부한 자원개발 사업도 성과는 거의 없다. 양국 정상회담에서 핵심 경협 사업으로 합의한 서캄차트카 유전 개발 사업도 흐지부지되었다. 러시아 정부가 200억 달러 이상의 대규모 자금을 투입한 2012년 블라디보스톡 APEC 개최 관련 각종 인프라 사업도 우리 기업들은 참여 기회를 거의 얻지 못했다.
러시아 정부는 최근 새로운 러시아 극동 개발 프로그램을 만들었다. 약 4년 전부터 극동 지역에 제조업 육성을 위한 선도개발구역, 아태 지역으로의 수출 확대를 위한 블라디보스톡 자유항 제도를 도입하며 외국인 투자 유치에 대대적인 지원을 제안하고 있다. 두 제도는 파격적인 세제 혜택을 제공하는 공통점을 갖고 있는데, 선도개발구역은 러시아 극동 지역에서의 제조업 활성화를 위해 러시아 정부가 전기, 도로, 수도 등 비즈니스에 필요한 인프라를 제공한다는 점에서 차별성이 있다.
하지만 한국 투자자들은 새로운 정책에도 큰 호응을 보이지 않고 있다. 이유는 예나 지금이나 대동소이하다. 넓은 영토에 분산된 인구 구조를 지닌 러시아 극동의 소비 시장으로서의 한계, 중국, 베트남, 라오스 등과 비교해 결코 매력적이지 않은 노동자 임금 수준, 투자자에게 여전히 불편하게 다가오는 각종 행정 제도 및 규제, 일정 기간을 두고 반복적으로 발생하는 높은 환율 변동성 리스크, 게다가 최근에는 미국 및 EU의 경제 제재로 인한 근본적 문제 등 20년 전이나 지금이나 크게 달라진 점이 없다. 세계은행에서 발표하는 Doing Business 지수 상의 순위는 가파르게 상승하고 있지만, 투자자들이 느끼는 러시아 극동의 투자 환경은 여전히 매력적이지 않다. 상황이 이럴진대 이전과 동일한 접근 전략으로 러시아 극동 시장 진출을 바라보는 것은 스마트한 방법이 될 수 없다.
1994년 아마존은 온라인 서점으로 세상에 그 존재를 알리기 시작했다. 하지만 2001년까지 7년여간 아마존은 적자를 면치 못했다. 많은 이들은 곧 아마존이 문을 닫을 것으로 예상했다. 7년간 수익이 없으니 그렇게 생각하는 것은 당연했다. 그러나 아마존은 아직도 건재하다. 그것도 세계 최대의 인터넷 기업으로 말이다. 아마존의 생존 비결에 대해서는 여러 분석이 있는데 그 중 가장 큰 요인은 그들이 구상한 새로운 비즈니스 모델 구축 방식인 ‘플랫폼(Platform) 투자’가 아닐까 생각된다. 온라인 비즈니스라는 점에서 일차적으로는 서버 용량 확충과 최고 수준의 온라인 거래 시스템을 구축하였고 여기에 온라인 거래를 뒷받침할 오프라인 물류센터망을 추가로 구축하여 안정화된 온라인, 오프라인 인프라를 확보한 뒤 세계 각지의 다양한 컨텐츠 제공업자들을 집결시켰던 것이다.
비유를 하자면 이런 것이다. 백화점 사업을 하는데 아마존은 백화점 상품 구성에 집중한 것이 아니고 개별 상품 거래 구성원이 편리하게 사업을 할 수 있는 여건, 입주하고 싶어 할 만한 편리한 환경, 즉 “플랫폼(Platform)” 제공 비즈니스를 한 것이다. 왜냐하면 실제 사업에 있어서 그 사업이 원활하게 진행되기 위해서는 사업 그 자체뿐 아니라 연관 산업 생태계와 제도적 지원 인프라가 더 중요하기 때문이다. 사업에 편리한 조건들을 갖춘 훌륭한 뼈대를 만들어 놓자 이에 매력을 느낀 개별 사업자들이 모여들어 다양한 상품군이 갖춰진 최고의 백화점이 만들어진 것이다. 이렇게 아마존 사례를 설명한 이유는 한국의 러시아 극동 진출을 아마존 비즈니스 접근 전략, 즉 플랫폼 비즈니스의 관점에서 한 번 바라볼 필요가 있기 때문이다.
플랫폼 비즈니스라는 말은 이미 오래 전부터 기업 경영 전략 분야에서 자주 나오는 용어이다. 다만 플랫폼의 활용 범위가 넓고 시간이 지나며 그 활용 방식 또한 다양화되다 보니 플랫폼에 대한 정의도 보는 각도에 따라 여러 가지 형태로 나타나고 있다. 첫째, 승강장이라는 사전적 의미에 무게를 두고 공급자와 수요자가 만나는 거점 및 거래의 중심이라는 의견, 둘째, 기업 내부의 원가절감 및 생산성 제고의 도구로 보는 의견, 셋째, 참여자들의 연결과 상호작용을 통해 모두에게 새로운 가치와 혜택을 줄 수 있는 상생의 생태계라는 의견, 넷째, 다수의 사업적 욕구를 연계시켜 상호 시너지를 만들고 이를 통해 새로운 시장 생태계를 만들어 내는 ‘조직형(Organizing) 플랫폼 비즈니스 모델 등이 대표적이다. 이러한 다양한 정의 중 러시아 극동 시장 진출의 관점에서 주목해야 할 부분은 네 번째 조직형 모델을 중심이 아닐까 생각된다.
러시아 극동의 가장 큰 문제는 판매 시장이 좁고 연관 산업 생태계가 조성되어 있지 않고, 제반 행정 시설이 열악하다는 점이다. 하지만 이 문제는 쉽게 해결될 내용은 아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를 극복하는 능동적 방안으로 플랫폼 비즈니스 모델을 곰곰이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러시아 극동 농업 사업을 예로 들어 보자. 현재 극동에 진출한 우리 농업 기업들은 경작 후 판매라는 단순화된 단독 비즈니스 모델에 머물러 있다. 하지만 현지 진출 농업 기업들이 직면하는 가장 큰 문제는 대형 판매 시장이 없다는 점이다. 현지 진출 한국 농업 기업들은 중국을 위주로 한 수출과 러시아 내수 판매를 병행하고 있다. 중국으로 수출하는 경우는 상대적으로 거래 단위가 커 그나마 괜찮지만, 러시아 극동 내수 구매자들은 구매 단위가 작아 고정 판매처로서 관리가 어렵다. 러시아 극동에는 곡물을 장기간 보관한 시설, 즉 사일로(Silo)가 없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고객이 전혀 없는 건 아닌데, 이들을 대응할 사업 인프라가 없는 것이다. 따라서 현재와 같이 경작 후 판매라는 단순한 비즈니스 모델로는 매번 동일한 어려움을 겪을 수밖에 없다.
하지만 경작을 바탕으로 보관, 유통, 그리고 향후 가공까지 연결되는 비즈니스 플랫폼이 있다면 상황은 바뀔 수도 있다. 사일로와 같은 곡물 저장시설을 만들어 이용하는 것이 아이디어 전환의 단초가 될 수 있다. 곡물 보관 시설이 있다면 소량 구매를 하는 러시아 고객을 꾸준히 늘릴 수 있기 때문에, 농업 기업들은 경작지를 넓히며 수익성을 증대시킬 수 있다. 또한, 사일로를 통한 곡물 유통 사업을 통한 새로운 비즈니스도 창출된다. 소량 구매를 하는 러시아 극동 구매자들도 굳이 러시아 서부에서 들어오는 비싼 제품을 구매할 필요 없이 극동 생산물로 눈을 돌릴 수 있다.
물론 여기서 고민해야 할 문제는 누가 사일로 사업 투자를 할 것이며, 사일로가 수익성을 유지할 수 있을 만큼의 저장 곡물이 과연 있는지, 또 사일로 건설 이후 러시아 구매자들이 한국 기업들의 작물을 꾸준히 구매할 것인가 등이다. 만약 현재 기준의 물량으로 사일로 운영의 경제성이 다소 부족해 사업 추진이 곤란하다면 사일로를 중심으로 이해관계가 있는 곡물 생산자, 곡물 구매자, 사일로 운영자, 그리고 정부 유관 기관 간의 구속력 있는 협약을 바탕으로 한 비즈니스 모델을 구상해 볼 수 있다. 협약에 서명한 곡물 생산 기업들은 일정 기간 내에 곡물 생산 면적을 일정 수준으로 확대하는 의무를 성실히 이행해야만 하고, 연간 일정 물량 이상을 사일로에 보관하는 의무 조항을 이행해야 한다. 여기에 러시아 곡물 구매자들도 연간 의무 구매량을 정해 그 의무를 다하도록 한다. 러시아 서부, 우크라이나, 중국 등에서 구매하는 러시아 구매자들에게 경쟁력 있는 가격으로 시장을 늘려갈 수 있다면 그 조건을 마다할 이유는 적다. 한편 사일로 운영을 담당할 농산물 관련 공기업 또는 종합상사와 같은 투자 기업에는 총 투자비의 일부를 투자하게 하는 대신 일정 기간 최소매출보장(MRG: Minimum Revenue Guarantee) 조건을 제공하여 사업성에 대한 초기 부담을 경감시켜 주도록 한다.
한 가지 주목할 점은 과거 한국의 러시아 극동 투자에서 가장 성공을 거둔 분야로 지목할 수 있는 분야가 현대중공업의 호텔(지금은 롯데가 인수), KT가 투자한 이동 통신(NTK)인데 이 두 가지 호텔과 이동 통신 사업의 공통점이 바로 전형적인 플랫폼 사업이라는 점이다. 호텔은 숙박업만 하는 싱글 비즈니스 모델이 아니고 호텔이라는 플랫폼 위에, 컨벤션, 오피스 임대업, 그리고 숙박업이 얹혀지는 소규모 복합 사업이다. 이동 통신 역시 통신 서비스 제공을 바탕으로 광고, 기기 판매, 설비, 금융까지 얹혀지는 복합 사업이다. 즉, 이 두 사업은 핵심 사업(Anchor business) 위에 연관 사업(Sub business)이 따라오는 일종의 플랫폼 비즈니스 모델 형태를 갖고 있는 것이다.
현재 한국과 러시아 간에는 양국 경협에 지원을 목적으로 한 금융 투융자 플랫폼에 대한 합의가 있다. 문재인 정부는 물론 이전 박근혜 정부에서도 양국 정상회담을 통해 합의된 내용이다. 2013년 11월 박근혜 전 대통령과 푸틴 대통령 간의 정상회담에서 합의된 25억 달러 규모의 한러 공동 투융자 플랫폼 구축(한국수출입은행과 러시아 대외경제개발은행 간 서명), 극동 지역 개발 프로젝트 지원에 초점을 맞춘 2017년 9월 문재인 대통령과 푸틴 대통령 사이에 합의된 20억 달러 규모의 투융자 플랫폼(한국수출입은행과 러시아 극동개발기금 간 서명), 그 외에 한국 농어촌공사와 한국수출입은행 간의 러시아 극동 농업 분야 지원을 위한 금융 프로그램 등 여러 수준의 금융 지원 프로그램에 대한 합의가 있었다. 하지만 이러한 금융 지원 프로그램을 통해 성과를 거두었다는 뉴스는 접해본 바가 거의 없다.[1]
불특정 공통 예산으로는 기대 난망
한 가지 우선 명확히 설명할 부분은 위에서 언급한 20억 달러, 25억 달러의 투융자 플랫폼이 서명되었다고는 하나 실제 그 금액이 별도의 항목으로 분류되어 관리되고 있는 것은 아니라는 점이다. 다시 말해 누군가 수출입은행에 찾아가 사업 제안을 하고 그 사업이 괜찮다는 평가가 내려질 경우, 수출입은행의 전체 투자 예산 중 20억 달러 또는 25억 달러 한도 내에서 지원을 해 줄 수 있다는 뜻인 것이다. 지원 프로그램이 있는 이상 그게 무슨 상관이냐 생각할 수도 있지만, 러시아 투자 항목으로 특정하여 구분해 둔 것과 일반 공통 해외투자 자금으로 관리하는 것은 큰 차이가 있다. 국가 예산이든, 기업 예산이든 각각의 사업 목적에 따라 구체적인 예산을 배정해 담당 부서를 지정하고 지정된 기간이 종료된 후 그 예산 집행 실적에 대해 평가를 받는 것이 일반적이다. 그 경우 담당 부서는 그 예산을 목적에 맞게 제대로 집행하는 것은 물론, 배정된 예산이 사용되지 못해 남는 소위 ‘불용 예산’이 발생하지 않도록 적극적인 예산 집행을 하게 된다.[2] 여기서 말하는 적극적인 예산 집행이란 누군가 찾아와 지원하기만을 기다리지 않고 지원할 프로젝트를 스스로 발굴하게 된다는 의미이다.
실제로 수출입은행의 주요 임무는 투자 사업 발굴은 아니다. 수출입은행은 해외사업 대출을 원하는 기업들의 제안서를 심사하여 금융 지원을 해주고 이를 지속 추적 관리하는 곳이다. 하지만 그 투자제안서라는 것이 그리 단순한 작업이 아니다. 러시아 측 비즈니스 파트너에 대한 신용 리스크 평가부터 구체적인 사업 전략, 상황이 악화되었을 때에 대비한 출구 전략, 지원된 금융에 대한 신용 보강 방안 등 일반적인 사업 전략 차원이 아닌 금융 투자 구조화의 관점에서 작성되어야 하는 매우 까다로운 작업이다. 때문에, 자금을 필요로 하는 상당수의 중견, 중소기업들은 금융 지원이 가능한 형태의 사업 구조화 및 투자제안서 작성에 어려움을 느끼는 것이 현실이다.
적극적 예산 집행이 가능한 구조로 전환 절실
따라서 금융 지원 프로그램이 실제 투자로 연결되기 위해서는 현재와 같은 소극적 상태가 아닌 적극적 조치가 필요한데, 대표적인 대안으로 고려할 수 있는 것이 책정된 투자 규모에 대한 ‘위탁 운용’이다. 예를 들어 러시아 투융자 플랫폼에 따른 예산이 20억 달러라고 가정할 때 수출입은행은 10개의 자산운용사를 선정해 각 자산운용사에 2억 달러씩 위탁 운용을 맡기고, 10개의 자산운용사들이 각자 위탁받은 2억 달러 한도에 적합한 투자 프로젝트를 발굴하여 금융권에서 통용되는 투자제안서와 금융구조화 작업까지 사업주를 도와 함께 작성하고 수출입은행과의 커뮤니케이션까지 협력하는 구조이다. 기업들의 투자 프로젝트 발굴을 적극적으로 하기 위한 이러한 위탁 운용 방식은 2011년 국민연금에서 코파 펀드(Corporate Partnership Fund)라는 명칭으로 사용된 바도 있다.[3]
언급한 두 가지 요인은 기존에 있던 대러시아 극동 투자 장애 요인을 또 다른 각도에서 분석한 내용일 뿐 러시아 극동 진출을 가로막는 요인은 이 외에도 다양하다. 안타까운 것은 10년 전이나 지금이나 동일한 방식으로 한러 경협 정책과 진출 전략을 논하고 있다는 점이다. 지난 20년 넘게 한러 경협, 특히 투자 분야에 별다른 진전이 없다면, 그리고 러시아의 투자 환경이 획기적인 변화가 없다면 잘 안되는 이유가 무엇인지를 확인하고 그 문제를 풀어갈 새로운 비즈니스 접근 전략을 고민해야 한다는 것이다.
한국 기업에 중국, 베트남 등과 비교해 러시아 시장은 여전히 확신이 덜 서는 곳이다. 정부에서 아무리 9-Bridge 전략을 발표해도 투자 성과를 낼 기업들의 러시아에 대한 관심은 아직 냉담하다. 20억 달러 이상의 투융자 프로그램을 준비했다면 이를 활용할 잠재력이 있는 기업을 설득하고 이들이 투융자 플랫폼을 좀 더 편하게 사용할 수 있는 조건을 만들어주는 게 정부가 해야 할 역할이다. 기업들 역시 기존과 같이 단일 비즈니스 아이템을 들고 러시아 시장을 바라볼 것이 아니라 그 아이템이 꽃을 필 수 있는 생태계 조성에 대한 고민을 포함한 비즈니스 전략을 마련하여야 한다.
언급한 두 가지 요인은 기존에 있던 대러시아 극동 투자 장애 요인을 또 다른 각도에서 분석한 내용일 뿐 러시아 극동 진출을 가로막는 요인은 이 외에도 다양하다. 안타까운 것은 10년 전이나 지금이나 한국은 물론 러시아에서도 동일한 방식으로 한러 경협 정책과 진출 전략을 논하고 있다는 점이다. 지난 20년 넘게 한러 경협, 특히 투자 분야에 별다른 진전이 없다면, 그리고 러시아의 투자 환경에 획기적인 변화가 없다면 잘 안되는 이유가 무엇인지를 확인하고 그 문제를 풀어갈 새로운 비즈니스 접근 전략을 고민해야 한다는 것이다.
한국 기업에 중국, 베트남 등과 비교해 러시아 시장은 여전히 확신이 덜 서는 곳이다. 정부에서 아무리 9-Bridge 전략과 같은 러시아 극동을 중심으로 한 신북방정책을 발표해도 투자 성과를 낼 우리 기업들의 러시아에 대한 관심은 아직 냉랭하다. 20억 달러 이상의 투융자 프로그램을 준비했다면 이를 활용할 잠재력이 있는 기업을 설득하고 이들이 투융자 플랫폼을 좀 더 편하게 사용할 수 있는 조건을 만들어주는 게 정부가 해야 할 역할이다.
기업들 역시 기존과 같이 단일 비즈니스 아이템을 들고 러시아 시장을 바라볼 것이 아니라 그 아이템이 꽃망울을 터트릴 수 있는 생태계 조성에 대한 고민을 포함한 비즈니스 전략으로 러시아를 바라봐야 할 것이다.
오영일(youngil@posri.re.kr)은
포스코경영연구원 산업연구센터 수석연구원이다. 러시아 국립경영대학교에서 경제학 박사를 취득하고, 현재 러시아, CIS 등 신흥시장 연구를 담당하고 있다. 그는 “한반도 정세 변화가 가져올 ‘신(新)북방’ 비즈니스 기회: 러시아 극동을 중심으로,” POSRI 이슈리포트, Vol.2018 No.6, “러시아의 신(新)극동개발정책, ‘선도개발구역’ 활용 방안,” POSRI 이슈리포트, Vol.2016 No.9 등 다수의 저서 및 논문을 출판하였다.
[1]물론 2014년 미국 및 EU의 대러시아 경제 제재로 제재 대상 기업과의 신규 투자 프로젝트에 대한 지원은 현실적으로 어렵지만 금융 투융자 플랫폼이 제대로 가동되지 못하고 있는 원인은 제재 요인이라고 볼 수 만은 없기 때문에 본 글에서는 경제 제재를 고려치 않은 상태에서의 문제점을 분석하도록 한다.
[2]일반적으로 불용 예산이 발생하면 그 남는 예산을 반납하면 문제가 되지는 않는다. 하지만 전체 예산을 관장하는 부서 입장에서는 제한된 예산에 대한 효율적 관리 차원에서 불용 예산이 발생하는 것을 바람직하지 않게 보기 때문에 불용 예산을 발생시킨 부서가 요청하는 향후 예산에 대해서는 상대적으로 보수적인 판단을 할 수밖에 없는 것이 현실적 관행이다.
[3]당시 국민연금에서는 해외 투자프로젝트 활성화를 위해 수십개의 국내 자산운용사와 1개 기업을 파트너로 묶어 그들이 사업을 발굴해 제안하도록 하였다.
참고문헌
*본 기고문은 전문가 개인의 의견으로, 서울대 아시아연구소와 의견이 다를 수 있음을 밝힙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