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앙아시아를 주목할 필요가 있다. 동과 서로는 유럽과 아시아를, 남과 북으로는 러시아와 남아시아를 잇는 지정학적 요충지에 자리 잡고 있다. 신북방정책의 핵심파트너인 러시아와 신남방정책의 주요 무대인 인도와 동남아시아의 지리적 연결고리라는 점에서 전략적 가치가 각별하다. 신북방, 신남방정책의 연결성을 도모하여 정책성과를 극대화할 수 있기 때문이다. 특히 우리나라는 우즈베키스탄(이하 우즈벡)과 카자흐스탄(이하 카자흐)과 1992년 수교 이후 긴밀한 경제협력을 하고 있다. 한국은 우즈벡의 5대 교역국으로 누적 투자액이 7억 달러를 넘어서는 등 전 세계에서 우즈벡에 3번째로 많은 투자를 한 국가이다. 또한, 한국은 카자흐의 10대 교역국으로 2019년 양국의 교역액이 40억 달러를 넘어서는 등 양국의 경제교류가 활발하다. 투르크메니스탄(이하 투르크멘), 키르기스스탄(이하 키르기스) 그리고 타지키스탄(이하 타직)과의 경제협력도 기대된다. 이 세 나라는 우즈벡, 카자흐에 비하면 아직 교역량이 많지 않지만, 자원이 풍부하고 우즈벡과 카자흐 못지않은 높은 성장잠재력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풍부한 천연자원, 높은 성장잠재력에서 비롯하는 시장성, 남북과 동서를 연결하는 지정학적 특성을 고려하면 중앙아시아 5개국과의 경제협력은 우리에게 새로운 시장, 더 나아가 신성장동력이 될 수 있다. 그러면 한국과 중앙아시아의 지속적이고 안정적인 경제협력을 위해서 어떠한 협력체계가 필요할까? 답은 상호호혜성이다. 상호호혜성에 기초한 경제협력만이 협력의 지속성과 안정성을 담보할 수 있기 때문이다. 특히, 우리나라와의 경제협력이 중앙아시아 경제의 지속성장에 도움이 되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중앙아시아 5개국의 협력수요에 대한 전면적이며 체계적인 인식이 필요하다. 따라서 본 고에서는 이들 중앙아시아 국가의 협력수요를 구조적인 측면에서 고찰한다. 즉, 경제성장의 관점에서 중앙아시아 5개국의 경제를 평가하고 지속성장을 위한 과제를 도출한다. 이를 토대로 이들 국가의 협력수요를 식별하고 상호호혜적인 한-중앙아 경제협력 방향을 정리하기로 한다.
중앙아시아의 경제성장을 평가하기 위해서는 이들 국가가 어떠한 방식으로 성장해왔으며 현재의 발전단계에서 지속성장을 위해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알아야 한다. 2000년 이후 중앙아시아 5개국이 본격적인 경제성장을 경험했다. 실제로 키르기스를 제외한 모든 나라의 연평균 성장률은 5%를 웃돈다. 물론 전 세계를 휩쓴 코로나19 사태로 2020년 경제성장률은 크게 낮아질 것으로 전망된다. IMF는 우즈벡, 투르크멘, 타직의 2020년 경제성장률은 각각 0.7%, 1.8, 1.0%를 기록할 것으로 전망했다. 이에 반해 카자흐, 키르기스의 성장률은 각각 –2.7%, -12.0%로 예측되어 역성장을 기록할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주요 수출 자원의 국제가격 상승, 주변국의 조속한 경제회복 등 긍정적인 외부요건이 조성될 경우 ‘V’자형의 빠른 회복을 할 것으로 보인다. 중앙아시아 경제에서 코로나 충격은 어디까지나 예상치 못한 수요 충격적인 성격이 짙기 때문이다.
2000년 이후 빠른 경제성장을 경험했다는 점 이외에도 중앙아시아 5개국의 경제를 관통하는 공통점이 존재한다. 첫째, 교역조건에 따른 명목 GDP 변동성이 매우 크다는 점이다. 생필품 등의 주요 소비재 수입의존도가 높고, 원유, 천연가스 등의 천연자원 수출의존도가 높아 교역조건(terms of trade)에 따라 명목 GDP가 민감하게 반응하기 때문이다. 둘째, 중앙아시아와 러시아의 명목 GDP는 높은 동조성(comovement)을 보인다.[1] 러시아에 대한 대외의존도가 높기 때문이다. 특히 많은 수의 러시아로부터의 노동소득 송금에 크게 의존하는 키르기스와 타직 경제는 러시아 경기에 매우 민감하게 반응한다.
그러나 이러한 공통점 이외에 중앙아시아 5개국은 경제발전단계 측면에서 국가별로 분명히 구별되는 특징을 가진다. 우선, 통상적인 분류기준인 소득 수준에 따라 우즈벡, 카자흐, 투르크멘 3개국을 중진국(middle-income country)으로, 키르기스 및 타직은 저소득국(low-income country)으로 분류할 수 있다. 키르기스, 타직의 경우 World Bank 기준에 따르면 가까스로 중진국에 진입했다고 할 수 있지만, [2]국내총생산(GDP)이 아주 작고 기초산업 형성이 미진하여 노동소득 송금에 대한 경제의존도가 매우 높아 이른바 ‘송금경제(remittance economy)’의 특성을 가지므로 저소득국가로 분류하는 것이 더욱 적절할 수 있다.
중진국 | 저소득국 | ||||
우즈벡 | 카자흐 | 투르크멘 | 키르기스 | 타직 | |
1인당 실질소득 | 2,459 | 11,518 | 7,816 | 1,116 | 1,121 |
실질 GDP | 826억 | 2,130억 | $459* | 73억 | 105억 |
표 1. 2019년 중앙아시아 5개국의 국민소득단위: 달러, 주*: 예측치자료: World Bank WDI |
경제발전단계에 따라 그 국가의 산업구조는 크게 달라진다. 실제로 중진국인 우즈벡, 카자흐, 투르크멘과 저소득국인 키르기스와 타직은 산업구조 측면에서 각기 다른 문제에 직면해 있다. 우즈벡, 카자흐, 투르크멘은 제조업 육성이 매우 부진하다. 면화 생산이 경제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높은 우즈벡은 농림수산업(1차 산업)의 생산 비중이 상대적으로 높은 편이며, 원유와 천연가스에 대한 경제의존도가 심한 카자흐와 투르크멘의 경우 광공업(2차 산업)의 생산 비중이 상대적으로 높게 나타난다.
그러나 핵심은 제조업이 전체 생산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10% 초반에 머물고 있다는 점이다. 중진국 평균 수준인 20%의 절반 수준이다. 특히 카자흐의 제조업 생산 비중은 11%에 머물고 있어 소득 수준이 훨씬 낮은 베트남의 제조업 생산 비중(15%)보다 작다. 우즈베키스탄의 제조업 생산 비중은 12% 정도로, 1인당 GDP로 평가한 성장 단계에 비추었을 때 비교적 양호한 수준이지만 여전히 중진국에 평균에 미치지 못하고 있다. 선진국이 역사적으로 경험한 전통적인 경제 구조전환 양태에 따르면 1차 산업, 2차 산업 그리고 3차 산업 순으로 생산 및 고용 비중이 증가하면서 산업구조가 전반적으로 고부가가치화하는 경향이 발견된다.[3] 그러나 이들 국가의 경우 제조업, 특히 그 국가의 기술 수준과 밀접한 관련이 있는 중·고부가가치 제조업 발달이 매우 부진한 문제가 지속되고 있다. 전자, 통신, 자동차 등 중·고부가가치 제조업의 생산 비중은 그 성장세가 매우 더디다. 예를 들어, 카자흐의 중·고부가가치 제조업 생산 비중은 베트남의 5.5% 수준에 절반에도 못 미치는 2% 수준이다. 이는 이들 중앙아시아 중진국에서 구조전환이 지연되고 있을 가능성을 시사한다.
한편 낮은 토지 생산성으로 키르기스의 농림수산업 부문 생산 비중이 저소득국 평균인 25%를 밑돌고 있다는 점을 제외하면 키르기스와 타직의 산업구조는 저소득국의 그것과 대체로 유사한 양상을 보인다. 문제는 이들 중앙아시아 저소득국이 해외송금에 과도하게 의존하고 있다는 점이다. 키르기스와 타직은 해외 이주 노동자의 송금이 GDP에서 차지하는 비중(송금의존도)이 약 30%에 달해, 저소득국 평균인 6%를 크게 상회한다. 이는 키르기스와 타직의 산업기반이 아직 제대로 형성되어있지 않다는 것을 시사한다.
앞에서 살펴본 중앙아시아 5개국의 경제성장 평가를 토대로 이들 국가의 지속성장을 위한 구조적 측면의 과제를 도출할 수 있다. 중앙아시아 중진국인 우즈벡, 카자흐 그리고 투르크멘의 장기성장 과제는 산업구조 다각화(diversification)와 고도화(advancement)로 요약할 수 있다. 빠른 경제성장에도 불구하고 제조업, 특히 생산성 향상에 필요한 중·고부가가치 제조업의 육성이 여전히 부진하다. 이는 이들 국가의 높은 천연자원 의존에서 비롯한다. 원유, 천연가스, 금 등의 천연자원 부존이 풍부하여 오래전부터 천연자원 생산과 수출에 크게 의존해왔다. 실제로 천연자원에 대한 경제의존도를 나타내는 천연자원 지대(rent)가 전체 생산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약 16%에 달해 중진국 평균인 5%를 훌쩍 뛰어넘는다.
문제는 천연자원에 과도하게 의존하는 구조가 만성화되는 이른바 “나쁜 균형(bad equilibrium)”으로 경제가 수렴할 경우 지속적이고 안정적인 경제성장이 요원하다는 사실이다. 실제로 중앙아시아가 독립한 1990년부터 글로벌 금융위기 시점인 2010년까지 20년 동안 천연자원에 대한 경제의존도가 높을수록 연평균 경제성장률과 중·고부가가치 제조업 성장률이 낮아지는 경향이 발견된다. 이러한 상황에서 산업구조 다각화와 고도화는 거시경제 변동성을 완화하는 경제 체질(fundamental)과 직결되는 문제로서 성장의 안정성 혹은 경기변동 완화를 위한 필요조건일 뿐 아니라, 저부가가치 산업에서 고부가가치 산업으로 경제 전반의 생산 구조를 전환하는 문제로써 생산성과 직결된다는 점에 주목하여야 한다. 중진국에 있어 장기성장을 위해서는 생산성 향상을 통한 질적 성장이 요구된다는 사실을 고려하면, 이들 국가에 있어 이러한 산업구조 다각화와 고도화는 매우 중차대한 문제이다. 결론적으로 제조업, 특히 중·고부가가치 제조업 발전 지연 문제는 이들 중앙아시아 중진국에 있어 이른바“자원의 저주”일 뿐 아니라, 중진국에 진입한 뒤 성장이 지체되는 현상을 말하는“중진국 함정(middle-income trap)”과 직결되는 문제라고 평가할 수 있다.
그렇다면 중앙아시아 저소득국인 키르기스, 타직의 성장과제는 무엇인가? 이들 국가가 직면한 성장과제는 물적 자본(physical capital) 확충 및 산업기반 마련으로 요약된다. 물적 자본을 조속히 확충하여 산업기반을 마련함으로써, 노동자 해외 이탈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는 것이다. 물적 자본이 희소하여 산업기반이 제대로 확충되지 않는 문제는 경제발전 초기 단계의 저소득국에서 흔히 발생하는 문제이며 경제가 성장하면서 자연스럽게 해결될 수 있다. 노동력이 풍부할 때 새로운 산업에서 임금이 하락하면 자본 이득이 높아져 투자가 확대되고 물적 자본이 축적되기 때문이다. 그러나 자국의 노동력이 해외로 대거 이주할 경우 이러한 동학이 제대로 작동하기 어렵다. 따라서 노동력이 자국 산업에 제대로 공급되지 않을 경우, 자본 확충이 어려워져 경제발전 초기 단계에서도 성장이 오랫동안 지체되는 이른바 “빈곤의 덫”에 시달릴 수 있다.[5] 이를 위해서는 지금처럼 노동력을 주변국에 직접 수출하는 것이 아니라 식품·의류와 같은 노동집약적 경공업 품목에 노동력을 내재(embed)하여 해외 시장에 판매함으로써 국내 산업기반을 형성하여야 한다. 즉, 주변국보다 상대적으로 풍부한 노동력을 활용하여 자국의 경제발전 단계에 맞는 노동 집약 경공업을 적극적으로 육성할 필요가 있는 것이다.
앞에서 식별한 중앙아시아 경제의 성장과제는 논리적으로 다음과 같은 상호호혜적인 한국과 중앙아시아의 경제협력에 필요한 정책 방향을 제시한다. 중진국인 우즈벡, 카자흐, 투르크멘과는 중·고부가가치 제조업 부문의 기술교류가 절실하다. 우리 기업이 중앙아시아 기업에 중·고부가가치 육성에 필요한 기초지식, 적정기술의 이전·공여를 통해 이들 국가가 직면한 산업구조 다각화·고도화 문제 해결에 도움이 되어야 한다. 관련하여, 우리나라의 기술 교육·창업 기관의 중앙아시아 진출을 도모하는 한편, 학생 교류 등을 통한 인적자본 확충 및 기업가정신을 고양하는 방안도 마련할 필요가 있다. 중·고부가가치 제조업 육성에는 보통 대규모의 자본 투자가 필요하므로 활발한 민간 투자를 위해서 금융시스템이 발전해야 한다. 이를 위해 금융 제도 발전을 위한 자문 상시화 및 민간 금융회사 간 교류를 촉진하는 플랫폼 구축을 고려할 수 있다. 특히 중소기업 육성에 필요한 신용보증 관련 제도에 대한 발전 경험을 공유하고 한국 금융업체의 중앙아시아 진출을 장려하기는 제도적 인센티브를 마련하는 것도 필요하다. 금융시장 발달은 시장 내의 자원 배분 효율성을 높여 경제 전체의 배분적 효율성을 증진한다.
키르기스와 타직은 산업기반 조성을 위한 기초 인프라 부문에서 FDI를 촉진할 필요가 있다. 따라서 이들 나라에 대한 도로, 전력 등의 산업인프라 및 주거, 보건 등의 기초 생활인프라 조성을 위한 FDI를 유도할 필요가 있다. 키르기스와 타직은 교통 및 통신 인프라가 매우 낙후되어 있어 도로 및 통신장비의 보수와 건설에 필요한 국내 및 해외자본 유치를 꾀하고 있으며, 이를 바탕으로 효율적인 물류·운송 인프라 확충을 목표하고 있다. 문제는 투자 위험에 대한 체계적인 관리 방안을 마련해야 한다는 점이다. 높은 경기 변동성에서 비롯되는 투자 수익 불확실성을 완화하는 정책적 지원이 필요하다. 필요하다면 민관합작투자사업(PPP) 형태의 투자를 장려하는 투자 플랫폼을 구축할 수 있다. 마지막으로 노동집약적 경공업 부문 협력이 절실하다. 의류, 식품 가공 등의 노동 집약 경공업 부문에서 우리 기업의 투자를 유도하여 해당 국가의 노동 집약 제조업 수요에 대응하는 동시에 동 산업에 대한 한국의 발전 경험을 공유하여야 한다.
중앙아시아 경제의 새로운 도약이 필요한 시점이다. 장기성장의 길은 험난하다. 한국과의 협력이 중앙아시아 경제의 구조적 문제를 해결하는 데 도움이 되어야 한다. 한국과의 경제협력이 어느 한쪽의 경제적 이익만 보장한다면 협력의 유통기한은 짧아질 수밖에 없다. 핵심은 상호호혜적인 협력체계 구축이다. 이를 통해 한국과 중앙아시아 모두 물질적 풍요로움에 한 발 더 가까워질 수 있다.
정민현(mjeong@kiep.go.kr)은
대외경제정책연구원(KIEP) 러시아유라시아팀 부연구위원이다. Washington University in St. Louis 경제학 박사를 취득하고 현재 러시아·CIS, 경제성장론, 제도경제를 중심으로 연구 활동을 하고 있다. 『2000년 이후 러시아 경제성장 요인 분석과 지속성장을 위한 과제』(2019), 『한국의 신북방 경제협력 거버넌스 개선 방안 연구: 러시아를 중심으로』(2020) 등의 연구를 발표하였다.
[1] 실제로 2014년 러시아 경제위기 때 중앙아시아 명목 GDP도 큰 폭의 하락을 경험하였다.
[2] World Bank는 2019년 현재 1인당 국민소득(GNI per capita) 기준으로 $1,026 미만은 저소득국으로, $1,026~$12,375에 해당하는 국가를 중진국으로 분류하고 있다.
[3] 구체적으로 소득 수준이 높아짐에 따라 1차 산업의 생산 비중은 점차 낮아지고, 2차 산업의 생산 비중은 역 U자형(hump-shaped)을 따르면서 궁극적으로 3차 산업의 생산 비중이 점차 높아지는 형태를 보인다.
[4] “천연자원에 대한 지대”는 석유지대, 천연가스지대, 석탄지대, 광물지대, 삼림자원지대(forest rents)를 모두 합한 것으로서, 각 지대는 해당 자원의 생산비용과 판매 수익 간의 차이, 즉 경제적 수익을 나타낸다.
[5] 물론 물적 자본이 희소한 발전 초기에는 해외 노동 송금이 자본 확충에 도움이 되므로 단기적으로 경제 성장에 도움이 될 수 있다. 그러나 이렇게 국내로 들어온 자본이 제대로 투자되지 않을 수 있을 뿐 아니라 경영기술과 같은 생산 활동을 통해 축적되는 무형 자본이 부족한 현상이 지속되면, 민간의 경제참여가 계속해서 저조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