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앙아시아 농경 정주지대는 고대부터 관개 농업을 중심으로 도시들이 발달해 왔다. 중앙아시아 도시들은 7세기 이슬람화의 결과 무슬림 도시로서의 특징을 보이게 되지만, 중앙아시아 도시 특유의 삼중구조와 중앙아시아 지리-인문 환경, 종교적 특이점을 포함하여 중앙아시아만의 독특한 면모도 지니고 있다. 19세기 이후 러시아 식민지 근대화 과정을 통해 현대 중앙아시아 도시의 특징을 갖게 된다. 거듭되는 파괴와 재건을 딛고 전통과 현대가 공존하는 중앙아시아 도시들은 중앙아시아 사회를 이해하는 데 필수적이다.
부하라 전경
출처: gdenahoditsya.ru
이광태(한국외대 국제지역연구센터)
중앙아시아의 정주지대, 특히 시르다리야(Syr Darya) 강과 아무다리야(Amu Darya) 강 사이 지역은 예부터 관개 농업을 바탕으로 찬란한 문명을 꽃피워 왔다. 그리스어로 트란스옥사니아(Transoxania), 아랍어로는 마와라안나흐르(Mā warā al-nahr, 현대 우즈벡어로 모바로운나흐르Movarounnahr)로 불린 중앙아시아 정주지대는 특히 도시들이 발달했고, 이 도시 주민들을 통해 유라시아 대륙을 관통하는 장거리 교역의 허브(Hub) 역할을 해왔다는 점에서 주목할 만하다. 이러한 측면에서 중앙아시아 사회를 이해하는 데 중앙아시아 도시를 살펴보는 것은 필수적이라고 할 수 있다. 이 글에서는 중앙아시아 도시들 특히 부하라(Bukhārā, 현대 우즈벡어 표기법으로는 Buxoro)를 살펴봄으로써 중앙아시아 사회가 갖는 특징들을 소개하고자 한다.
중앙유라시아 초원과 건조기후의 사막 가운데 텐샨산맥(天山山脈)과 파미르(Pamir) 고원의 만년설이 녹아 흘러내린 강가에 건설된 중앙아시아의 도시들은 오래전부터 사회적으로 중요한 의미를 갖고 있는 것으로 여겨졌다. 아무다리야 상류 발흐(Balkh) 지방은 고대 박트리아(Bactria) 왕국이 있던 곳으로 “도시들의 어머니(Am al-bilād)”라는 별명으로 불리곤 했다. 현재 우즈베키스탄의 도시들 가운데 사마르칸트(Samarqand)나 부하라 같은 곳은 기원전 2천년 경 건립되었다는 기록도 있다.
그리스 북부 마케도니아의 군주 알렉산더 대왕이 기원전 330년경 중앙아시아 소그디아나(Sogdiana) 지방을 정복한 이후 중앙아시아 도시들은 이란-페르시아, 그리스, 초원-유목, 인도-불교 문화가 뒤섞인 복합 문화이면서도 중앙아시아 자체 창의성을 가미한 독창적인 문화를 발전시켰다. 중국 역사자료에 강국(康國)으로 불린 사마르칸트, 안국(安國)으로 불린 부하라, 석국(石國)으로 불린 타슈켄트(Tashkent), 사국(史國)으로 불린 오늘날의 샤흐리사브즈(Shahrisabz) 같은 도시들은 한꺼번에 뭉뚱그려 속특(粟特) 즉 소그드(Sogd)로 불렸다. 이 소그드인들은 중국 대륙에서 동로마 제국에 이르는 유라시아 대륙 곳곳에서 장거리 무역을 담당하는 상인 네트워크를 구축했다. 소그드인들의 문화에 대해서는 사마르칸트의 아프라시압(Afrasiab)이나 판지켄트(Panjkent) 등 중앙아시아 도시 유적에서 발굴된 유물과 벽화를 통해 그 모습을 생생히 들여다볼 수 있다.
중앙아시아의 도시들은 이후 7세기부터 이슬람의 전파에 따라 무슬림 문명권에 편입되었다. 중앙아시아의 발달된 도시문명은 이 지역을 방문한 무슬림들의 주목을 받았다. 이븐 호르다드베(Ibn Khordādhbeh)가 870년에 쓴 『도로들과 왕국들의 책(Kitāb al-Masālik wa al-Mamālik』이래 무슬림 중앙아시아의 도시들을 묘사한 다수의 지리서가 등장했다. 또한 중앙아시아 각 도시의 역사서 혹은 안내서가 작성되었다. 저명한 중앙아시아사 연구자인 리쳐드 프라이(Richard Frye)에 따르면 이미 10-11세기 중앙아시아의 현지 무슬림 학자들은 사마르칸트에 관하여 2종류, 키쉬(Kish) 혹은 케쉬(Kesh; 오늘날의 샤흐리사브즈 Shahrisabz)와 나사프(Nasaf; 오늘날의 카르쉬Qarshi)에 관하여 1종류, 메르브(Merv)에 관해 3종류, 헤라트(Herat)에 관해 2종류, 호라즘(Khwārazm)에 관해 2종류, 발흐(Balkh)에 관해 1종류, 그리고 사마르칸트와 부하라를 함께 다룬 1종류의 지리서가 존재했다고 한다. 안타깝게도 이들 서적들은 오늘날 전해지지 않고 단지 나르샤히(Narshakhī)의 『부하라의 역사(Tārīkh-i Bukhārā』가 남아 있을 뿐이다(Frye, 1954, xi).
중앙아시아의 이슬람화에 따라 중앙아시아 도시들은 다른 무슬림 사회의 도시들과 많은 공통점을 공유하게 되었다. 예를 들어 금요예배를 위한 모스크와 근처 시장을 중심으로 도시들이 발전한 모습은 여타 무슬림 도시들과 유사하다. 중앙아시아를 연구한 학자들은 서아시아의 도시처럼 중앙아시아의 도시들도 무슬림 사회의 특징을 반영하는 공간이라는 맥락에서 연구를 진행해 왔다. 그러나 서구학자들이 무슬림 사회에 갖는 담론, 특히 오리엔탈리즘(Orientalism)이라는 편견 속에서 무슬림 도시들을 ‘폐쇄적’인 장소로 본 것처럼, 중앙아시아 도시들도 중앙아시아를 식민 통치한 러시아 및 소련 학자들에 의해 전근대적인 특징을 지닌 것으로 묘사되는 경우가 많았다. 최근 오리엔탈리즘의 한계를 극복하고자 다양한 관점에서 새로운 접근이 이루어지고 있다. 무슬림 사회의 전통적인 도시구조에서 보이는 좁고 구불구불한 거리를 통해 폐쇄성을 강조하던 기존의 접근법을 극복하고 도시의 기능과 그에 대한 새로운 구조적 평가가 이루어지고 있다. 이러한 측면에서 중앙아시아 도시들에 대해서도 재평가가 필요한 시점이다. 아래에서 중앙아시아 도시들이 갖는 독특한 특징들을 살펴보도록 하자.
중앙아시아 도시들은 외견상 다른 무슬림 도시들과 유사하지만, 중앙아시아 무슬림 사회가 갖는 특수성을 반영하여 독특한 면모도 보인다. 첫 번째로 중앙아시아 도시가 갖는 독특한 구조적 특징이다. 중앙아시아 도시에 관한 연구가 19세기 중앙아시아에 진출한 러시아의 동양학 전문가들에 의해 진행되었는데, 특히 러시아 동방학의 거장 바르톨드(Bartol’d)가 주장한 중앙아시아 도시들의 삼중구조설은 유명하다. 즉 중앙아시아 도시들이 전통적으로 쿠한디즈(Kuhandiz)나 아르크(Ark)로 불리는 성채, 샤흐리스탄(Shahristān)이라 불리던 도심, 그리고 라바드(Rabaḍ)라고 불리던 교외의 삼중구조로 구성되어 있었다는 것이다 (Barthold, 1928:100)
각각 살펴보면 먼저 성채는 군사거점으로 적군의 침략을 받았을 때 퇴각하여 농성할 수 있는 곳이었다. 많은 경우 군주들의 왕궁이 성채 안이나 또는 바로 바깥에 건설되었다. 샤흐리스탄, 즉 도심은 주요 관청과 종교 시설들을 중심으로 거주지가 위치해 있었다. 중앙아시아의 중심도시 가운데 하나인 사마르칸트의 경우 샤흐리스탄으로 4개의 수로를 끌어들여 주민들의 편의를 제공했다. 도심의 거리는 돌로 포장이 되어있었고, 도심 주위에 성벽을 둘러 세운 경우도 많았다. 라바드, 즉 교외라고 불리는 지역은 주로 시장들과 수공업자들의 작업장, 그리고 일반 주민들의 거주지가 형성되어 있었다. 샤흐리스탄의 성벽이 없는 경우 라바드 지역에 촘촘히 건설된 집으로 도시의 방어선을 구축하기도 했다.
사마르칸트와 함께 중앙아시아를 대표하는 부하라의 경우 성채, 샤흐리스탄, 라바드의 삼중구조 이외에 방대한 성벽이 부하라와 인근 도시를 두르고 있었다는 점은 특이하다. 이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부하라 지역의 생태 환경을 살펴볼 필요가 있다. 부하라는 파미르 고원에서 발원한 자라프샨(Zarafshan) 강이 서쪽으로 흐르다가 남류하는 지점에 위치해 있다. 부하라 일대에는 자라프샨 강을 이용하여 각종 운하와 수로가 개발되었다. 주요 지점에는 마을들이 있었고 몇몇은 소도시로 발전했다. 그 가운데 와르다나(Wardāna), 파라흐샤(Farakhshāh)나 라미탄(Rāmitan) 같은 곳은 부하라보다도 먼저 도시가 생성되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이러한 부하라 지역의 소도시들은 자체 성벽을 보유하고 있었지만 기본적으로 서로 수로로 연결되어 있었기 때문에 하나의 집단 방어 체제를 구축하지 않을 수 없었다. 따라서 부하라의 군주는 부하라 도시 자체 뿐 아니라, 인근 소도시와 마을을 아우르는 거대한 성벽을 건축해야 했던 것으로 보인다. (Barthold, 1928, p.113)
중앙아시아 도시들이 갖는 두 번째 특징은 도시들이 수시로 파괴되고 재건되었다는 점이다. 이는 중앙아시아 갖는 지리-사회적 환경에서 이유를 찾을 수 있다. 유라시아 대륙의 정중앙에 위치하여 유라시아 초원과 극도의 건조한 기후가 공존하는 중앙아시아에서 북쪽 초원으로부터 유목국가가 침략하는 일은 언제나 일어날 수 있었다. 중앙아시아 도시들은 유목민들에 항복하여 지배를 받기도 하고 때때로 저항하여 스스로를 방어하려 했다. 이때 적을 격퇴하면 다행이지만, 실패할 경우 도시가 철저히 파괴되는 일은 예정된 수순이었다. 중앙아시아의 대표도시로 번영을 누리던 사마르칸트는 13세기 칭기스칸이 이끄는 몽골군의 공격을 받아 철저히 파괴되었다. 현재 사마르칸트시 북쪽에 폐허로 남아 있는 이른바 아프라시압 언덕이 과거 사마르칸트의 도시가 위치했던 곳이다.
중앙아시아 정주지역을 정복한 유목제국은 기존 유목 부족집단의 기마병을 중심으로 한 군사력과 중앙아시아의 정주세력이 갖는 인적, 물적 자원을 결합하여 제국을 건설했다. 이렇게 강력한 국가를 건설하면서도 또 다른 정복자들, 특히 유목민들의 습격에 대비했다. 이를 위해 도시 안에 강력한 성채를 유지했다. 성채는 정치적인 중심지로 파괴와 재건이 반복되었다. 현재 사마르칸트의 성채는 파괴되고 존재하지 않지만, 부하라의 성채는 아르크라는 이름으로 남아있다. 실제 부하라의 성채 아르크는 다양한 유목정권이 번영과 쇠퇴를 반복한 격변의 장소였다.
한편 중앙아시아의 건조기후 속에서 많은 도시들이 생존에 필수적인 수자원을 잃거나 사막에서 불어오는 모래폭풍을 맞아 폐허가 되기도 했다. 부하라의 인근 소도시 와르다나(Wardāna)는 1868년 모래폭풍으로 인해 상당한 농토가 모래에 파묻히게 되었는데, 중앙아시아에서 이렇게 모래폭풍이나 혹은 수로의 변경으로 도시가 버려지는 경우가 적지 않았다. 중국 신장위구르자치구(新疆維吾爾自治區) 동남변에 있던 누란(樓蘭, 현지어로 크로라이나Kroraina)이나 카탁(Katak) 같은 도시들이 모래폭풍에 없어진 것은 전설이 되어 전해진다. 호라즘 지역의 쿠냐 우르겐치(Urgench) 같은 삶을 지탱하는 강줄기가 바뀌면서 도시가 버려진 경우에 해당한다. 물론 버려진 도시 옆에는 새로운 도시가 생겨났다. 오늘날 우르겐치는 버려진 쿠냐 우르겐치를 대체하여 건설된 도시이다.
중앙아시아 도시들이 유목 세력에 점령당하고 때때로 도시가 파괴되거나 피해를 입었음에도 불구하고, 이들 유목 세력은 결코 현지 주민들이 거주하고 운영하는 도시를 폐허로 버려두지 않았다. 왜냐하면 중앙아시아 도시는 이들 유목 집단이 필요로 하는 물자를 생산했을 뿐 아니라, 제국을 운영한 인적 자원 역시 제공했기 때문이었다. 몽골제국을 이어 유라시아 곳곳을 정복한 티무르는 정복지로부터 수공업자들을 모아 사마르칸트에 정착시킨 것으로 잘 알려져 있다. 이렇게 중앙아시아 도시들의 수공업자들은 점차 자신들만의 조합 즉 길드(Guild) 조직을 만들기 시작한다. 오늘날에도 이들의 길드 조직의 의식이나 규례를 담은 리살라(Risāla, 현대 우즈벡어로 리솔라Risola) 들이 남아 당시 수공업자들의 조직의 모습을 엿볼 수 있다.
한편 중앙아시아 도시들은 경제활동으로 필수적이었던 장거리 무역을 위한 상인들의 휴식처이자 거래 장소로 카라반사라이(Caravan Saray)로 유명했다. 카라반사라이에서 상인들은 장기 투숙하면서 교역을 진행하고, 거래를 마치면 낙타 대상단(隊商團)을 조직하여 다른 도시로 떠났다. 19세기 중앙아시아를 지나는 무역량이 늘어나면서 카라반사라이 개수도 1820년대 10여 개에서 1840년대에는 40여 개에 이르렀다(이광태, 2009).
중앙아시아 도시들이 갖는 네 번째 특징은 중앙아시아식 이슬람의 특징을 반영하고 있다는 점이다. 중앙아시아 무슬림 사회는 순니(Sunni) 이슬람의 4대 법학파 가운데 하나피(Hanafi) 종파의 본거지로서 금요예배 혹은 이슬람 축일(ʿid)를 위한 대모스크가 종종 도시 외곽에 건설되었다는 점에서 다른 무슬림 사회의 도시들과 다른 부분이 있다. 또한 이슬람 수도승이라고 부를 수 있는 수피(Ṣūfī)들이 매우 중요한 사회적 역할을 담당한 사회였다. 단순히 개인적인 수도의 차원을 넘어 사제 관계의 구축 그리고 이후에는 교단을 형성하여 스승의 가르침을 후대에 전하는 일이 매우 중시되었다. 그에 따라 오늘날까지 무슬림 사회 전반에 걸쳐 영향력이 큰 주요 수피 교단들, 예를 들어 낙슈반드(Naqshbandi) 또는 야사비(Yasavi) 같은 교단들의 창시자나 호자 아흐라르(Khwāja Aḥrār) 같은 명망 높은 수피 지도자의 묘소는 ‘성스럽고’ ‘복된’ 장소로서 중앙아시아인들의 삶 속에 중요한 종교적 중심지가 되었다.
물론 중앙아시아 도시들에서도 무슬림 사회에서 중요한 기능을 했던 제도들은 남아 있다. 예를 들어 금요예배를 위한 대규모 모스크와 인근 장터 그리고 주민을 위한 공중목욕탕 등의 공공시설은 와크프(Waqf)로 알려진 공공기금으로 운영되었다는 점에서 기타 무슬림 사회의 도시들과 유사하다(McChesney, 1991). 또한 마할라(Maḥala)로 일컫는 도시 내 지역공동체는 독자적인 모스크를 중심으로 구성되었다는 것은 무슬림 도시들의 공통된 특징이다. 그러나 중앙아시아에서는 와크프로 유지된 시설 가운데 한카(Khānqa) 또는 하나카(Khānaqa)로 불리는 수피들의 공동숙소가 중요한 위치를 차지한다는 점에서 주목할 만하다. 도시 내 자치 공동체 마할라의 경우에도 중앙아시아에서는 종종 악사칼(Aq Saqal, 투르크어로 ‘흰수염’이라는 뜻)이라 불리는 장로들의 지도를 받아 자체적으로 운영된 것도 중앙아시아의 특징이라고 볼 수 있다(Sukhareva, 1976).
1865년 이후 중앙아시아는 러시아 제국에 편입되어 1991년 독립하기까지 러시아-소련 스타일의 근대 및 현대화 과정을 거치게 된다. 이는 중앙아시아 도시에도 큰 영향을 미쳤다. 타슈켄트나 사마르칸트의 경우 중앙아시아 현지 무슬림들이 거주하는 구도시 옆에 러시아인들에 의해 신도시가 건설되었다. 당시 중앙아시아를 방문하는 여행자들의 눈에는 좁은 도로와 흙먼지 날리는 ‘지저분한’거리의 구도시가 곧고 넓은 도로에 가로수가 늘어선 유럽식 신도시가 나란히 위치해 있는 장면은 매우 대조적으로 보였다. 흥미로운 것은 이러한 구도시와 신도시의 연결점에 러시아 제국 통치 기구들이 늘어서 있었다는 점이다. 예를 들어 타슈켄트에 위치해 있던 제정 러시아의 총독부는 지금도 신도시와 구도시가 연결되는 치르치크(Chirchiq) 강 옆에 위치해 있다. 오늘날 부하라 시 역시 과거 무슬림들의 구도시 동남부에서 신도시로 넘어가는 지점에 부하라주(Buxoro viloyati)의 주청사(hokimiyat)의 높은 건물이 양쪽을 넘어보고 있다.
현대 신도시의 또 다른 특징 가운데 하나는 철도의 연결이다. 1880년경부터 러시아 제국에 의해 본격적으로 건설되기 시작한 중앙아시아의 철도역은 중앙아시아 현지 무슬림들의 전통적 구도시는 무시한 채 러시아식 신도시의 건설을 촉진했다. 투르크메니스탄의 수도 아쉬가바트(Ashgabat) 역시 철도 역사를 중심으로 건설된 러시아 식민도시에서 비롯되었다. 부하라에서는 구도심에서 12km 떨어진 카간(Kagan, 우즈벡어 표기로는 Kogon)에 철도 역사가 건설되었는데, 이곳에서 신도시가 형성되었다. 지금도 우즈베키스탄의 수도 타슈켄트에서 열차를 타면 카간역에서 내려 부하라로 들어가는 버스나 택시를 타지 않으면 안된다. 카간은 근대사에서 매우 중요한 의의를 갖는 곳이다. 중앙아시아 근대주의자들은 이슬람의 개혁에 반대하는 정통파 무슬림들을 피해 신도시인 카간으로 피해들었다. 그리고 카간을 통해 재차 부하라 공산당이라는 혁명조직이 뿌리를 내렸고 1920년 부하라에서 공산혁명이 일어나는 밑거름이 되었다.
지금까지 중앙아시아 도시 특히 부하라를 통해 중앙아시아 사회를 살펴보았다. 중앙아시아 도시들은 다른 무슬림 도시들과 유사하면서도 독특한 중앙아시아 만의 특징을 보여주었다. 삼중구조라는 전통적 도시구조 위에 유목민과의 접촉 과정에서 파괴와 재건이 이루어지고, 무역과 수공업이 발달하고, 중앙아시아 특유의 이슬람이 발전한 곳이었다. 무엇보다 전통과 현대가 조화를 이루면서도 때때로 과거를 지향하는 관성과 미래지향적인 개혁의식이 충돌하는 중앙아시아 도시는 중앙아시아 사회의 특징을 여실히 보여준다고 하겠다.
이광태(keunbit@gmail.com)는
한국외국어대학교 국제지역연구센터 HK연구교수이다. 서울대학교 노어노문학과에서 학사, 동양사학과에서 석사, 미국 인디애나대학교에서 중앙유라시아학 박사학위를 취득하고 현재 한국외국어대학교 국제지역연구센터 HK+국가전략사업단에서 중앙아시아 역사, 문화, 정치-경제 및 한국과의 관계와 관련된 연구를 진행하고 있다.
참고문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