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카서스 남부, 카스피해 서안에 위치한 아제르바이잔은 19세기 중반 세계 최초로 유전이 개발된 곳이다. 현재 석유가스를 비롯한 에너지산업은 아제르바이잔의 경제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절대적이다. 아제르바이잔 정부는 소위 ‘자원의 저주’, ‘네덜란드병’을 막고자, 원유산업을 통해 획득한 수익을 바탕으로 경제다변화, 산업다변화 전략을 추진하고 있다. 그 중 ‘서부유라시아지역의 교통물류 허브로의 도약’은 아제르바이잔 정부가 역점을 두고 있는 핵심전략 중 하나다. 바쿠신항 개발, 아제르바이잔-조지아-터키를 연결하는 철도 건설 등을 통해 중국의 일대일로와의 연계를 통한 유라시아 교통물류회랑과 러시아-이란을 연결하는 남북 회랑 개발을 추진하고 있다. 유라시아 시대, 신북방정책을 추진하고 있는 우리나라와 아제르바이잔의 협력 가능성은 더욱 높아지고 있다.
신범식, 김효섭, 고가영, 최아영, 이금강, 조대현(서울대학교 아시아연구소 중앙아시아센터)*
※ 아래 글은 서울대학교 아시아연구소 중앙아시아센터가 지난 1월 25~31일간 진행한 러시아, 아제르바이잔 답사기이다. 신범식(중앙아시아센터장), 김효섭(선임연구원), 고가영(객원연구원), 최아영(객원연구원), 이금강(연구보조원), 조대현(연구보조원)이 이번 답사에 참여하였다.
코카서스(Caucasus) 산맥의 남부지역, 카스피해(Caspian Sea)의 서안에 위치하는 아제르바이잔은 ‘불의 나라’로 알려져 있다. ‘아제르바이잔’이라는 국명은 ‘불’을 뜻하는 페르시아어 ‘아자르(Adhar)’와 ‘국가’라는 아랍어 ‘바이잔(Beyqan)’을 합쳐 만들어졌다. 지표면에서 뿜어져 나오는 천연가스로 지역 곳곳에서 불을 볼 수 있으며, 이러한 지역적 특성으로 불을 숭배하는 조로아스터교가 성행하였다. 20세기에 그 불은 석유-가스 산업으로 활활 타올라, 아제르바이잔의 경제를 이끌어가는 핵심 동력이 되었다. 1848년 세계 최초로 바쿠 유전이 개발되어, 석유산업이 꾸준히 발전하였다. 노벨상으로 유명한 노벨 형제도 이러한 투자의 흐름에 동참하여, 막대한 부를 얻게 되었다.
최근 아제르바이잔은 석유 의존 경제의 한계를 인식하고, 새로운 성장동력의 육성을 통해 산업과 경제다변화를 국가발전의 핵심전략으로 추진하고 있다. 이러한 전략은 유라시아대륙에서 진행되는 세계사적 변화에 조응하고, 아제르바이잔의 지리적 이점을 강화하는 방향에서 이루어지고 있다. 그 핵심전략 중 하나가 ‘서부 유라시아의 교통물류 허브’ 구축이다. 이에 중앙아센터는 2019년 1월 현지답사를 통해 아제르바이잔의 변화를 직접 보고 들었다. 대통령 산하의 ‘경제개혁과 커뮤니케이션 분석 연구소’와 ‘전략연구소’ 및 하세테피대학교(Hacettepe Univ.)의 전문가들과의 면담하고, 알라트 신항(Alat Port)과 바쿠국제무역항만공사를 방문하여 아제르바이잔의 경제개혁과 교통물류 허브 구축 현황과 전망에 대한 설명을 들었다.
독립 이후 아제르바이잔은 풍부한 석유와 천연가스 자원을 중심으로 경제 발전을 이룩하였다. OPEC이 2018년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아제르바이잔의 채굴 가능한 원유량은 약 70억 배럴, 천연가스는 1조 227억㎥이며, 아제르바이잔 전체 산업 중 80%는 원유 및 천연가스의 채굴, 정유와 연결되어 있다. 또한, 아제르바이잔의 석유와 천연가스 수출은 전체 수출 비중의 90%를 차지한다. 2012년 아제르바이잔은 이러한 석유 중심의 경제에서 탈피하고 지구화(Globalization)와 지역 통합이 진행되는 상황에서 경쟁력을 제고하기 위한 <비전 2020>을 채택하였다. <비전 2020>의 주요 목표는 석유와 천연가스에 집중된 경제를 다각화하고, 탄소 자원의 수출 의존도를 낮추는 한편, 비석유 부분의 성장을 촉진하며, 신기술을 통한 효율성을 높이는 것이다. 이를 위하여 아제르바이잔은 운송 및 물류 인프라 개선, 정보통신 기술의 발전, 인적 자원의 개발을 국가발전을 위한 핵심으로 보고, 해당 분야에 대한 투자를 늘려가고 있다.
아제르바이잔의 국가발전 전략, 경제발전 전략 수립에서 핵심적인 역할을 하고 있는 대통령 산하 ‘경제개혁 커뮤니케이션 분석 연구소’ 부살 가시믈리(Vusal Gasimli) 소장에 의하면, 석유가스산업 의존도를 낮추고 경제다변화의 추구가 향후 국가발전전략의 중심 기조라고 한다. 에너지 산업도 채굴 위주에서 벗어나 고부가가치의 석유화학산업 육성을 도모하고 있다고 한다. 아울러 방위 산업과 농업, 관광, 운송물류 산업을 중점적으로 육성할 계획이라고 한다. 가시믈리 소장은 이전에 몇 년간 한국에서 연구활동을 진행하면서 한국의 경제성장 과정을 직접 보고 느꼈다고 하면서, 경제발전에서 교육과 과학기술의 중요성을 다시 한 번 자각하게 되었다고 한다.
최근 아제르바이잔이 경제다변화 전략을 추진할 수 있는 기반은 2005-2014년 동안 고유가 시기에 축적한 석유기금(SOFAZ)이다. 이 시기 아제르바이잔은 석유가스 판매를 통해 약 1,250억 달러의 소득을 얻게 되고, 이 중 28%인 350억 달러를 전략자금으로 비축하여, 국가의 다른 경제 부문에 투자하였다. 원유를 판매해 획득한 외화를 해외자본시장에 투자하는 걸프 지역의 산유국과 달리, 아제르바이잔은 획득한 대부분의 수입을 국내에서 활용하였다. 아제르바이잔 국내 시장에서 가장 큰 수혜자는 건설과 부동산개발 분야였다. 2012-2015년 간 도시재생에 약 180억 달러를 지출하였고, 정부 1년 예산의 35% 정도를 인프라와 건설프로젝트에 할당하였다. 그러나 막대한 자금을 투자하여 인프라를 건설하였지만, 기대했던 서구자본의 투자는 이루어지지 않았고, 건설경기 부양을 통한 경제활성화도 기대만큼 진행되지 않았다. 활발하게 진행되었던 부동산개발은 경제 개발의 신기루에 지나지 않았다. 이에 아제르바이잔 정부는 새로운 경제발전전략, 산업육성 전략을 모색하게 되었다.
아제르바이잔은 서부 유라시아지역의 지리적 중심에 위치해 있다. 카스피해 너머 동쪽으로는 중국과 중앙아시아와 맞닿아 있고, 서쪽으로는 터키와 동유럽과 인접하며, 북으로는 러시아, 남으로는 이란과 접하고 있다. 아제르바이잔의 수도 바쿠를 중심으로 반경 1,000킬로미터 안에 고대부터 동-서를 가로지르는 실크로드와 남북을 잇는 교통회랑의 중심에 위치해 있다. 이러한 지리적 위치로 최근 아제르바이잔 정부는 글로벌 교통물류회랑 개발에 관심을 갖게 되었다.
운송 및 물류 인프라 개선을 위하여 아제르바이잔은 2016년 물류 분야의 국가 전략을 구체화하는 <물류 및 교역 발전을 위한 전략적 로드맵(Strategic Roadmap for Logistics & Trade Development in Azerbaijan)>을 발표하였다. 해당 로드맵에는 2016~2020년, 2020~2025, 2025년 이후로 시기를 구분하여 각 시기별 비전과 목표, 진행할 주요 프로젝트, 투자 계획, 기대 효과 등이 담겨 있다. 먼저 아제르바이잔은 2020년까지 운송 물자를 유치하고 부가가치를 창출하는 것을 목표로 삼아 운송 회랑의 경쟁력 강화, 바쿠 신항 단지 내 자유무역지대(Free Trade Zone)를 설치할 계획이다. 이러한 계획을 바탕으로 장기적인 관점에서 아제르바이잔은 2025년까지 인프라를 개선하고 제도적 인센티브를 제공하여 지역 내 물류 교차로로 거듭나고자 한다. 2025년 이후에는 주변국과의 우호적인 관계를 통하여 물류와 교역이 효율적으로 관리되는 지역 교역의 중심지가 되는 것이 아제르바이잔의 목표이다.
실제로, 아제르바이잔은 교통 물류의 허브로서 다양한 지리적 이점을 지니고 있다. 먼저, 지형적으로 다른 코카서스 국가들과 달리 아제르바이잔은 상대적으로 많은 평지를 보유하고 있다. 즉, 높은 고지대와 험준한 산악지대를 피해 코카서스 지역의 남북을 연결할 수 있는 가장 쉬운 방법은 코카서스 산맥의 동쪽 평지인 아제르바이잔을 통과하는 것이다. 둘째로, 항공 운송 분야에서도 아제르바이잔은 중앙아시아, 남아시아, 중동, 유럽의 주요 국가를 아우르는 잠재력을 지니고 있다. 아제르바이잔의 수도인 바쿠를 중심으로 3,000km의 원을 그렸을 때 40개 이상의 나라와 연결되는 모습을 볼 수 있고, 이 안에는, 러시아, 인도, 중국, 터키 등 경제적 강대국들이 포함되어 있다. 항공 운송의 특성상 화물기의 비행거리가 상용 여객기의 비행거리보다 짧다는 것을 고려했을 때, 아제르바이잔은 화물기의 출발지 혹은 중간 기착지로서 매력적인 선택지가 될 수 있다. 실제로 현재 아제르바이잔 국적의 Silk Way 화물 전용 항공사가 운영되고 있다. 이 회사는 2016년 1년간 약 15억 FTK(Freight Tonne Kilometres)의 비행을 기록하였는데, 이는 같은 기간 러시아의 아에로플로트(Aeroflot)나 핀란드의 핀에어(Finnair) 보다 더 많은 물류 운송을 담당한 것이다.1) 마지막으로, 카스피해를 활용하여 해상운송을 활용할 수 있어 아제르바이잔의 복합운송(Multimodal freight) 발전의 잠재력이 높다고 할 수 있다. 그 대표적인 사례가 바쿠의 신항인 알라트(Alat) 신항(新港)이다.
‘2020 국가전략’을 통하여 아제르바이잔은 석유와 천연가스에 집중된 국가의 산업 구조를 개편하고, 새로운 경제 성장의 동력을 갖추기 위해서 유라시아의 교통물류의 허브이자 지역 산업의 중심지로 발돋움하려고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물류 운송 분야에서 아제르바이잔은 동쪽에 있는 동아시아 국가들과 서쪽의 유럽을 연결하는 동서 루트, 북쪽의 러시아와 유럽, 남쪽의 이란과 인도를 연결하기 위한 남북 루트에서 어떤 역할을 수행할 수 있는지 연구했다. 아제르바이잔은 따라서 수도인 바쿠를 중심으로 육상, 해상, 항공 운송을 모두 포괄하는 복합 교통 및 물류 운송, 그리고 제조업 상품 운송을 수행하는 큰 청사진을 구축했다. 이에 따라 아제르바이잔 정부는 기존의 인프라 시설을 개선했을 뿐만 아니라 새로운 항구를 건설했으며, 철도 노선과 이를 뒷받침할 도로 네트워크를 건설했고, 각종 물류와 승객을 수용할 수 있는 시설들을 확충했다. 아제르바이잔의 이와 같은 노력은 크게 알라트 신항, BTK 철도 두 가지로 나누어서 확인할 수 있다.
알라트 항구는 아제르바이잔 수도 바쿠의 중심에서 남서쪽으로 약 50km 떨어진 곳에 위치한 항구로, 2018년 5월 14일에 운영을 시작했다. 기존 바쿠 도심에 있었던 항구의 시설 노후화와 부족한 화물 처리 능력을 대체하기 위하여 아제르바이잔 정부는 바쿠 주변에 새로운 항구 건설을 계획하고, 그 후보지를 물색하였다. 바쿠 근교의 작은 마을인 알라트는 최고의 입지 조건을 가진 장소였다. 알라트는 바쿠 만(灣)의 연안에 위치해 있으며, 근처에 존재하는 자연 섬들이 물막이 역할을 해줄 수 있다는 뛰어난 장점을 가지고 있었다. 이와 함께 카스피해 반대편이자 남부 코카서스의 서쪽과 남쪽으로 향하는 기존 철도 노선 또한 알라트를 통과하는 부분도 영향을 미쳤다. 알라트 항구 관계자의 말에 따르면, 아제르바이잔에서 알라트만큼 항구를 건설하기 좋은 장소는 없다고 표현할 정도로 알라트는 최적의 신항 건설 입지 요건들을 갖추고 있었다.
알라트 항구는 3단계의 건설 사업으로 진행되고 있으며, 현재 1단계 사업을 마친 상태다. 1단계의 목표는 기존의 바쿠 도심 항만 물류 시설을 대체하고, 주변 지역에서 오는 대형 페리선과 더 큰 규모의 화물선을 받아들일 수 있도록 준비하는 것이었다. 먼저 카스피해의 동쪽에 위치한 카자흐스탄, 투르크메니스탄과 서쪽의 유럽, 북쪽의 러시아, 남쪽의 이란과 모두 이을 수 있는 기반 시설을 갖추고자 했다. 1단계 건설 사업을 통해서 알라트 항구는 최대 10,000톤급 페리선을 수용할 수 있는 터미널, 650m 일반 화물 선석(Berth) 4개, 300m 규모의 로로선 선석 1개, 그리고 450m 정비 선석 다수를 보유하게 되었다. 이 모든 시설들은 항구 내 건설된 철도 노선으로 곧바로 연결되어 있으며, 또한 아제르바이잔 수도 바쿠와는 왕복 6차선 고속도로를 통해 연결되어 있다. 1단계 사업을 통해 알라트 항구는 약 1,150만 톤의 일반 화물과 5만 TEU를 처리할 수 있는 규모를 갖추게 되었다. 향후 3단계 건설 사업까지 통해서 알라트 항구는 최대 약 2500만 톤의 일반 화물과 백만 TEU를 처리할 수 있는 수준까지 그 규모를 확장하고자 한다. 알라트 항구를 관리하는 ‘Port of Baku’ 사장인 탈레 지야도프(Taleh Ziyadov)에 따르면 아제르바이잔 정부는 알라트 항구 건설 계획을 위해서 약 8억 달러를 투자할 것이며, 현재까지는 약 1억 3천만 달러가 지출되었다고 한다. 지야도프 사장은 서부 유라시아 지역의 물류 허브를 지향하는 바쿠 신항이 중국의 일대일로 이니셔티브와의 연계를 통해 발전할 계획을 세우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일대일로 사업에 참여하는 동남아나 남아시아 국가와 다른 점은 교통물류 인프라 개발에 필요한 재원이 100% 정부 투자로 이루어진다는 것이다. 소위 ‘일대일로의 덫’이라고 할 수 있는 채무 문제에서 자유롭기 때문에 아제르바이잔의 바쿠항 개발은 발전 가능성이 더욱 높다고 한다.
BTK 철도는 아제르바이잔의 바쿠, 조지아의 수도 트빌리시(Tbilisi), 터키의 카르스(Kars)의 앞글자를 따서 만든 명칭이다. 바쿠에서 출발하여 코카서스 산맥의 남부를 따라 조지아로 들어가고, 트빌리시에서 남서쪽 터키방향으로 내려가는 BTK 철도는 총연장 826km이다. 2007년 11월 21일 착공하여, 10년의 공사 끝에 2017년 10월 30일에 완공하였다. 현재 BTK 철도는 화물 전용 철도로 운영되고 있다. 아제르바이잔 철도청에 따르면 2018년 1년간 BTK 철도를 통해서 약 3천 개의 콘테이너가 운송되었다. 2019년 가을부터 BTK 철도는 일반 승객 운영을 시작할 것으로 알려져 있다.
BTK 노선의 건설의 배경에는 아제르바이잔과 아르메니아 두 나라 사이에 발발했던 나고르노-카라바흐 전쟁이 있다. 남부 코카서스 지방에는 러시아 제국과 소련 시기 건설된 다양한 철도 노선들이 있었다. 바쿠에서 출발하는 기존의 노선 중 주요 노선으로는 크게 19세기 말에 완공된 코카서스 횡단철도와 터키와 남부 유럽으로 가는 노선이 있었다. 코카서스 횡단철도는 현 조지아의 포티(Poti)와 트빌리시, 그리고 바쿠를 연결하면서 카스피해와 흑해의 러시아 제국과 소련의 영토를 연결하는 역할을 했다. 바쿠에서 터키와 유럽으로 향하는 이전의 노선은 트빌리시에서 남쪽으로 내려가 현 아르메니아의 제 2도시인 귬리(Gyumri)를 거쳐 터키의 카르스로 향했다. 하지만 소련 해체 직전부터 유혈 갈등을 빚었던 아제르바이잔과 아르메니아가 결국 전쟁에 치닫게 되자, 아제르바이잔과 긴밀한 관계를 가지고 있었던 터키가 1993년 아르메니아와의 국경을 폐쇄하게 되면서 이 철도 노선 역시 운영을 멈추게 되었다. 곧바로 아제르바이잔, 조지아, 터키 세 나라는 대안 철도 경로를 모색하기 시작했다. 트빌리시에서 아르메니아를 거치지 않고 직접 카르스로 향하는 새로운 철도 계획을 구상되었다.
그러나 건설자본의 부족으로 인해 BTK 철도는 2005년 1월 아제르바이잔-조지아-터키 삼국 공동 합의 이후 실제 공사로 바로 이어지지 못했다. BTK 철도의 운영을 위해서는 트빌리시와 카르스를 연결하는 새로운 철도 노선, 그리고 두 나라 사이의 궤간 변경을 위한 시설 등이 필요했는데, 이를 수행하기 위한 자금이 절대적으로 부족했다. 국제사회로부터의 지원도 용이하지 않았다. 미국 내 강력한 영향력을 행사하는 아르메니아 디아스포라 로비스트의 압박 속에 당사국들은 세계은행(WB), 아시아 개발 은행(ADB), 유럽부흥개발은행(EBRD) 등과 새로운 철도 인프라 건설을 위한 금융 지원을 논의했지만, 좋은 결과를 얻지 못했었다. 하지만 2000년대 초반 유가 상승으로 인해 상대적으로 많은 외화를 벌 수 있었던 아제르바이잔이 적극적으로 BTK 철도에 투자하게 되면서 건설이 시작되었다. 아제르바이잔은 조지아에 낮은 금리로 총 약 8억 달러 규모의 차관을 제공하면서 BTK 철도 건설을 착수할 수 있도록 도와줬다.
아제르바이잔 정부의 이와 같은 물류 산업 육성 방안은 알라트 항구의 개항과 BTK 철도의 개통과 함께 본격적으로 운영되고 있다. 알라트 항구는 BTK 화물 철도 노선의 기점이자 종점이다. 카스피해를 건너온, 혹은 이제 곧 카스피해를 건너게 될 화물들은 알라트 항구로 모여든다. 특히 중국의 일대일로 전략과 맞물려, 알라트 항구는 새로운 실크로드 무역 노선의 한 축을 담당할 것으로 예상된다. 2014년 2월, 아제르바이잔, 조지아, 카자흐스탄 세 나라의 철도, 항만, 운송 법인이 합작하여 카스피해 횡단 국제 운송로 발전을 위한 조정위원회(Coordination Committe for the Development of the Trans-Caspian Internatioanl Transport Route)를 설립해 카스피해를 횡단하는 국제 운송로를 개통시켰다. 이 운송로는 중국과 카자흐스탄 국경부터 카스피해 동쪽의 악타우(Aktau)나 쿠릭(Kuryk) 항까지의 철도 노선, 카자흐스탄과 알라트 항구를 연결하는 뱃길, 그리고 BTK 철로를 통한 흑해 항구와 터키-유럽 철도까지의 연결을 포함하고 있다. 관계자에 따르면 이 노선을 사용한다면 중국 동부 장쑤성의 렌윈강(連雲港)시에서 터키의 이스탄불(Istanbul)까지 20일 이내 화물이 이동 가능하다고 하며, 2020년에 이 운송로를 통해 연간 30만 TEU 규모의 물류가 이동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아제르바이잔은 향후 알라트 항구를 단순한 물류의 중개지 수준을 벗어나 지역 산업의 중심지로 성장시키고자 한다. 아제르바이잔 정부는 알라트 항구의 배후지에 약 200ha 규모의 경제자유구역을 조성하고 있다. 알라트 항구를 중심으로 세계적인 기업들의 제조업 공장을 유치하고 자국 2차산업을 육성하여 아제르바이잔이 물류운송의 단순한 중간 경유지가 되는 것 이상을 꿈꾸고 있다. 아제르바이잔은 이미 경제자유구역을 위한 관련 법안들을 정비했으며, 알라트 항구의 2, 3단계 건설 사업과 함께 공장, 물류 창고, 석유 저장소, 터미널 등의 건설 계획을 수립하였다. BTK 철도, 바쿠 헤이다르 알리예프(Heydar Aliyev) 국제공항과 항구 근처에 위치한 구소련 공군 활주로를 활용하여 육, 해, 공이 모두 결합된 복합물류 시스템을 갖추고자 한다. 이를 종합하여 아제르바이잔은 기업에게 아제르바이잔의 값싼 노동력으로 상품의 제조와 조립을 수행하고, 완성된 상품을 주변 국가들로 다양한 수단을 통해 수출할 수 있는 기반 시설을 제공하고자 한다. 알라트 항구 관계자에 따르면 알라트 항구에 들어오는 약 80% 이상의 화물이 외부에서 들어와 항구를 중간 기착지로 거쳐서 다른 지역으로 이동하고 있는데, 아제르바이잔 정부는 이 비율을 자국 산업 육성을 통해 낮추고, 자국 수출품의 출발지로서 항구 사용량을 늘리는 것을 목표하고 있다고 밝혔다.
지역(Region) 수준에서 아제르바이잔의 교통물류 인프라 개발이 지니는 국제정치적 함의를 살펴보면, 아제르바이잔은 대규모 물류 인프라 건설 프로젝트인 일대일로(一帶一路, One Belt One Road), 러시아-아제르바이잔-이란-인도를 잇는 남북회랑 참여, 환카스피해 협력을 통하여 자국의 입지를 강화하고, 주변 강대국과의 관계에서 균형을 모색하고 있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아제르바이잔은 중국과 유럽을 육로로 연결하는 일대일로 계획을 자국에 커다란 기회가 될 것이라고 인식하고 있다. 앞서 언급한 것처럼, 국제물류에서 코카서스 지역의 평지라는 지형적인 이점, 육상, 해운, 항공 모두 활용 가능한 물류 인프라는 아제르바이잔이 지닌 강점이다. 이러한 강점을 극대화하는 한편, 자국 내 중국의 경제적 영향력에 대한 균형을 위하여 아제르바이잔은 자국의 예산을 활용하여 인프라를 건설하고 이를 일대일로와 연결하는 방식을 취한다. 이는 중국의 막대한 차관을 도입하여 상환에 실패한 채 IMF 구제금융을 받게 된 파키스탄과 비교된다.
일대일로가 중국과 유럽을 잇는 횡단노선이라면, 남북회랑은 러시아와 이란, 인도를 잇는 또 다른 종단노선이다. 아제르바이잔은 남북회랑 건설로 접경국가들과 협력을 강화하고, 관계를 개선하는 데 활용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먼저, 러시아는 아제르바이잔과 나고르노-카라바흐 문제로 영토 분쟁 중인 아르메니아를 오랫동안 군사적, 경제적으로 지원하여왔다. 이러한 이유로 아제르바이잔은 탈소비에트 국가 중 러시아에 반대하고 서구와 긴밀한 관계를 맺은 GUAM(조지아, 우크라이나, 아제르바이잔, 몰도바)의 한 축을 구성하며, 서구와 군사적, 경제적으로 긴밀한 관계를 맺어왔다. 하지만 아제르바이잔이 교통과 물류를 국가 발전의 새로운 방향으로 노정한 이후, 양국은 철도 운송량 확대하는 등 관계를 개선 중이다. 한편, 서구의 경제제재를 받고 있는 러시아와 이란의 입장에서도 아제르바이잔을 통한 남북회랑은 약국 간 교역을 확대할 수 있는 선택지가 될 수 있다.
또한, 환카스피해 협력 차원에서, 아제르바이잔은 카스피해를 둘러싼 러시아, 이란뿐만 아니라 카자흐스탄, 투르크메니스탄과도 경제적인 협력을 강화할 수 있다. 최근 카스피해 국가들의 카스피해의 법적 지위 합의, 아제르바이잔의 바쿠 신항 개발, 투르크메니스탄의 투르크멘바시(Turkmenbashi) 항구 확대 등 경제 협력을 위한 제도적, 물리적 환경이 개선되고 있다. 이러한 기회를 활용하여 아제르바이잔은 앞서 제시된 <비전 2020>, <로드맵>을 작성할 때 구체적으로 상정하지 못한 바쿠 신항 개발, 자유경제지역의 확대 등을 추가로 고려할 수도 있을 것이다.
코카서스 3국간 관계에서 교통 물류를 통하여 아제르바이잔은 지역 내 영향력을 확대하려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앞서 언급한 BTK 철도 건설 과정에서 아제르바이잔은 재정적으로 철도 건설에 어려움을 겪었던 조지아에 경제적 지원을 제공하였다. 조지아 내 산업구조가 급변하지 않는 이상, 아제르바이잔은 향후 BTK 철도뿐만 아니라 조지아로 연결되는 교통 물류 인프라에 지속적인 지원을 제공할 가능성이 높다. 아제르바이잔은 이러한 경제적 지원을 통하여 조지아와의 관계를 강화할 수 있다. 한편, BTK 철도는 코카서스 지역 교통 물류 체계에서 아르메니아를 고립시키는 기능도 지니고 있다. BTK 철도가 아르메니아를 거치지 않고 조지아-터키를 거쳐 지중해로 뻗어나가며, 남북회랑 또한 아르메니아를 거치지 않고 러시아-아제르바이잔-이란으로 이어진다. 아제르바이잔이 건설 중인 교통 물류 인프라는 코카서스 지역에서 내에서 아제르바이잔의 영향력을 확대하는 한편, 적대하는 아르메니아를 압박하는 수단으로 활용되고 있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아제르바이잔의 교통물류 인프라 개발 계획은 한국 기업에 새로운 기회가 될 수 있다. 특히, 해운 인프라 개발, 인프라를 운영하기 위한 ICT 기술 등은 아제르바이잔의 교통 물류 인프라 발전에 반드시 필요한 요소들이다. 알라트 신항 관계자들은 새로운 교통물류 인프라의 건설과 운영, 발전에는 거대 항구인 부산항, 평택항을 운영하는 한국의 지식과 경험이 자신들에게 큰 도움이 될 수 있을 것이라며 언제든 아제르바이잔 진출을 환영한다고 밝혔다. 교통물류 분야의 협력은 한국과 아제르바이잔의 새로운 지평을 열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
서울대학교 아시아연구소 중앙아시아센터(centralasia@snu.ac.kr)는
2014년에 설립되어 중앙아시아 지역의 주요문제에 대한 깊이 있는 연구를 진행하고, 다양한 정보와 자료를 제공하고 있다. 중앙아시아지역의 연구기관과도 협력하여 연구기반을 강화하고 있으며, 러시아 극동시베리아지역에 대한 연구도 병행하고 있습니다. 저서로는 『중국의 부상과 중앙아시아』(진인진, 2015), 『유라시아의 심장 다시 뛰다』(진인진, 2017)을 비롯해 『중앙아시아 이슬람의 역사적 경험과 문화』(진인진, 2019) 등이 있다.
1) https://cargofacts.com/the-worlds-top-50-cargo-carriers/
*본 기고문은 전문가 개인의 의견으로, 서울대 아시아연구소와 의견이 다를 수 있음을 밝힙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