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자흐스탄은 중앙아시아 5개국 중 러시아인이 가장 많이 거주하는 나라이다. 18세기부터 러시아인들이 카자흐스탄에 본격적으로 이주하여 정착했고, 중앙아시아 5개국 중 러시아와 가장 긴 국경을 접하고 있기 때문이다. 구소련의 붕괴 이후 1990년대에 걸쳐 카자흐스탄 러시아인들의 러시아를 향한 이주가 대규모로 이루어졌다. 한편 2010년대 중반 이후 이들의 귀환이주가 또다시 점화되고 있는 현상이 목격되고 있다. 그렇다면 왜 다시 그리고 끊임없이 카자흐스탄의 러시아인들은 카자흐스탄을 떠나고 있을까? 이들을 밀어내는 것은 무엇이며, 또한 끌어내는 요인은 무엇일까? 이 글은 최근 몇 년 사이 다시 규모가 커지고 있는 카자흐스탄 러시아인들의 귀환이주의 원인과 배경과 그리고 이 현상이 카자흐스탄에게 가지는 의미를 살펴보고자 한다.
최아영(서울대학교)
중앙아시아 지역은 인류가 만들어낸 이전에 없었던 기발한 물건과 아이디어, 그리고 종교와 사상을 동에서 서로, 또 서에서 동으로 흘려보냈던 실크로드의 중심에 위치해 있다. 이러한 중앙아시아의 지역 정체성에서 기인한 ‘이동과 흐름’이라는 DNA는 21세기를 사는 중앙아시아인들의 일상에서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다. 이들은 자신들의 민족어 외에도 이웃 국가의 언어 등 2개 이상의 언어를 자유롭게 구사하는 경우가 많다. 중앙아시아의 유목민족과 정주민족은 소비에트 체제가 획정한 국경이 존재했어도 서로 자유롭게 넘나들며 소통하며 살았기 때문이다. 또한 70여 년 동안 지속된 소련의 통치는 중앙아시아인들에게 러시아어라는 의도하지 않았던 강력한 민족 간 소통의 도구까지 떠안겨 주었다.
한편 중앙아시아 이주의 빅뱅은 1991년 소련 붕괴를 전후한 시기에 발생했다. 1924년 소비에트 정부가 획정한 각 공화국들의 국경이었으나, 실상은 행정구역 경계에 불과했던 중앙아시아 공화국간의 내부 경계가 이제 주권국가의 ‘국경’이 되면서, 러시아인을 비롯한 각 공화국의 명목민족이 아닌 다양한 민족들이 역사적 모국으로 이동하면서 중앙아시아는 대이주의 흐름을 경험하게 된 것이다.
소련 붕괴 이후 당시 소련 인구의 약 10%인 2800만 명이 타국으로 이주했는데, 그중 2000만 명은 구소련 공간의 내부에서 이주하며 정착했다. 그중 1230만 명은 러시아로 유입되었다(Laruelle, 2013). 이렇듯 국제이주에서 다른 지역보다 구소련 공화국들 사이의 경계를 넘나드는 이주가 월등히 많고, 러시아가 이주의 흐름에서 가장 강력한 최종 목적지가 되는 것은 현재까지도 목격되는 중앙아시아 지역 이주의 특징적인 현상이라 할 수 있다.
이와 함께 2000년대 들어서면서 카자흐스탄은 석유, 가스 등 풍부한 광물자원 개발을 바탕으로 경제적 약진을 이루자, 키르기스공화국, 우즈베키스탄 등 다른 중앙아시아 국가로부터 몰려오는 이주 노동자들을 수용하게 되었다. 이렇게 카자흐스탄은 현재 중앙아시아 지역으로부터 이주자를 대거 수용하는 국가이자, 또 러시아로 향하는 중앙아시아 노동자들의 경유지가 되었으며 자국의 러시아인, 우크라이나인 등 이른바 ‘유럽인’ 인구의 유출을 경험하는 중앙아시아 이주의 교차로이자 허브가 되고 있다.
민족지역으로의 귀환이주 행렬
독립 직후부터 1990년대 중후반까지 구소련 공간에서 가장 두드러진 이주의 패턴은 귀환이주(Return Migration)였다. 1990년부터 1998년까지 280만 명의 러시아인들이 중앙아시아, 코카서스 등지에서 러시아로 이주했다. 적극적인 해외동포 귀환정책을 펼쳤던 이스라엘은 이 시기 약 77만 명의 구소련 유대인들을 받아들였다(Tsuda, 2009). 중앙아시아의 각 공화국에 거주하던 러시아인들도 러시아로 대거 이주하는 현상이 목격되었는데, 1989년부터 1999년부터 카자흐스탄에서만 약 150만 명의 러시아인들이 역사적 모국으로 향했다. 이는 같은 시기 구소련 공화국에서 러시아로 돌아온 사람들의 절반을 넘는 규모였다. 카자흐스탄으로서는 독립 직후부터 10년 동안 인구의 10%를 잃은 것이다(Peyrouse, 2013).
한편 1990년대 중반 이후부터 그 규모가 점차 감소하여 ‘떠날 사람들은 이미 다 떠났다’라고 인식되었던 카자흐스탄 러시아인의 귀환이주가 2010년대 중반 이후 또다시 점화되고 있는 현상이 목격되고 있다. 귀환이주는 거주국보다 더 부유한 모국으로 이주하는 패턴이 일반적인데, 현재 카자흐스탄과 러시아의 경제력의 차이는 러시아인의 귀환이주를 지속적으로 추동할 만큼 현격하다고 볼 수 없다. 그렇다면 왜 다시, 그리고 끊임없이 카자흐스탄의 러시아인들은 카자흐스탄을 떠나고 있을까? 이들을 밀어내는 것은 무엇이며, 또한 이들을 끌어내는 요인은 또 무엇일까? 이 글은 최근 몇 년 사이 다시 규모가 커지고 있는 카자흐스탄 러시아인들의 귀환이주의 원인과 배경과 그리고 이 현상이 카자흐스탄에게 가지는 의미를 살펴보고자 한다.
러시아인들의 카자흐스탄 이주와 정착의 역사
중앙아시아 전역에 러시아인들이 거주하고 있음에도 유독 카자흐스탄에서 러시아인들의 대규모 이주가 지속적으로 이루어지고 있는 현상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카자흐스탄과 러시아간의 상호 관계의 역사를 들여다보는 것이 도움이 될 것이다.
세계에서 9번째로 영토가 넓은 카자흐스탄이 가장 긴 국경을 마주하고 있는 나라는 바로 러시아이다(7644km). 카자흐스탄의 북부, 동부는 러시아의 우랄 지역, 시베리아, 알타이 지역과 접경해있고, 러시아의 시베리아와 지리적, 기후적 특성이 유사하다. 카자흐스탄의 수도 누르술탄(Nur-Sultan)인근과 카라간다(Karaganda)에는 과거 소련 정권이 만들어 놓은 수용소의 흔적이 지금도 남아 있는데 영하 40도까지 기온이 하강하는 혹한의 허허벌판에 을씨년스럽게 세워진 수용소들은 굳이 담장을 치지 않아도 그대로 천연감옥의 역할을 했을 것으로 생각된다. 인간이 땅을 일구고 정착하기에 호락호락하지 않은 이 땅으로 러시아인들은 삶의 돌파구를 찾기 위해서 혹은 정부가 수립한 개발 계획에 따라 이주해왔다.
러시아인들이 카자흐스탄에 이주하기 시작한 것은 16세기로 거슬러 올라간다. 러시아의 카자크 군대가 남부 시베리아에 요새를 건설하기 위해 현재 카자흐스탄 북부 지역에 진출하여 마을을 형성하면서 러시아인들의 이주가 시작되었다. 이후 농노제를 피해 도망한 러시아 농민들이 모여 들었지만, 이 시기 러시아인의 이주는 산발적으로 이루어졌다. 18세기 중엽 카자흐 부족들이 러시아의 힘을 사용해서 준가르 칸국(Dzungar Khanate)의 공세를 저지하는 정치적 선택을 하게 되자 러시아는 합법적으로 카자흐 스텝 지역을 병합할 수 있는 공식적인 명분을 얻게 되었다(양승조, 2017). 18세기에 러시아인들이 카자흐스탄 북동부에 위치한 세미팔라틴스크(Semipalatinsk)1), 파블로다르(Pavlodar)등 러시아와의 접경지역에 도시를 건설하면서 자연히 러시아인의 이주도 늘어났다. 현재까지도 러시아 접경지역의 도시에는 러시아인이 인구의 다수를 이루는 경우가 많다. 사실 카자흐스탄 북부, 동부 지역의 많은 도시들이 러시아인에 의해 세워졌기 때문에 일부 러시아 학자들은 카자흐스탄의 러시아인들을 ‘디아스포라’라고 부르는 것이 합당하지 않으며 오히려 이들이 이 지역의 원주민이라고 주장하는 경우도 있다.
볼셰비키 혁명 이후 1936년 카자흐 소비에트 사회주의 공화국이 출범하면서 러시아인의 이주는 조직적이고 계획적인 성격을 띠기 시작했다. 소련 통치 전 시기를 통틀어 러시아인들이 집중적으로 이 지역에 유입된 것은 1950년대 중반 소련 정부가 농지 확보를 위해 남부 시베리아 및 북부 카자흐스탄 등지에서 추진한 처녀지 개간 사업과 관련이 있다. 당시 카자흐인의 수는 3백만 명으로 전체 인구의 30%였던 반면 러시아인들의 수는 4백만 명에 달했다(Peyrouse, 2013). 러시아인이 전체 인구에서 차지하는 비율이 40%가 넘는 경우는 중앙아시아에서 카자흐스탄이 유일했다. 한편 처녀지 개간사업의 붐이 잦아들고, 1960년대 중반부터 러시아인들의 인구 증가 추세가 주춤하면서 1989년에 이르자 카자흐인의 수가 러시아인의 수보다 많아졌다.
민족 | 1939 | 1959 | 1970 | 1979 | 1989 |
카자흐인 | 2,327,625 | 2,787,309 | 4,234,166 | 5,289,349 | 6,534,600 |
러시아인 | 2,458,687 | 3,972,042 | 5,521,917 | 5,991,205 | 6,227,500 |
전체 | 6,151,102 | 9,294,741 | 13,008,726 | 14,684,283 | 16,464,400 |
카자흐스탄에 이주한 러시아인들은 주로 북부, 동부의 산업 지대의 도시에 거주하면서 기술, 과학, 산업 및 금융 분야에 종사했다. 반면 카자흐인들은 주로 농업과 식료품 산업, 제조업 분야에서 일하면서 남부 지역과 농촌에 집중적으로 거주했다. 이 두 커뮤니티는 지리적으로도, 그리고 각자 주어진 삶의 영역에서도 서로 간섭하지 않고, 교차되지도 않은 채 병존했다. 카자흐스탄으로 이주한 러시아인들은 대부분의 경우 ‘찾아온’ 것이 아니라 ‘보내어진’ 경우가 많았기에 굳이 카자흐인들의 사회에 통합되려는 노력을 할 필요를 느끼지 못했기 때문이기도 했다.
소비에트 시기 러시아인들이 카자흐어를 배우는 경우는 매우 드물었고, 오히려 도시에 거주하는 카자흐인들이 카자흐어보다 러시아어를 더 자유롭게 구사하는 경우가 일반적이었다. 과학, 기술과 관련한 서적들은 모두 러시아어로 출판되었고, 고등교육 시스템도 러시아어를 기준으로 만들어졌다. 이렇게 소비에트 카자흐스탄 사회에서 러시아어는 사회 상층부로 올라갈 수 있는 사다리와도 같은 역할을 했다. 이것은 비단 카자흐스탄만의 현상이 아니라 소비에트 통치 시기 중앙아시아에서 일어났던 일반적인 현상이지만, 지금까지도 카자흐인들은 중앙아시아 5개국 중 가장 악센트가 없는 러시아어를 구사할 정도로 러시아인, 러시아어가 카자흐인들의 삶에 미치는 영향력은 중앙아시아 다른 지역보다 두드러졌다.
앞서 말한 바와 같이 구소련의 붕괴와 함께 시작되어 1990년대 중반에 정점에 달한 이후 계속 감소했던 러시아인들의 귀환이주는 2010년대 중반부터 다시 증가세를 보이고 있다. 2019년 9개월간 전년 동기 대비 8.3% 증가한 34200명이 카자흐스탄을 떠났는데, 그중 30400명이 러시아로 향했다. 이주자들의 대다수는 러시아인들이었다.2)
1990년대의 러시아인들의 1차 귀환이주는 소련 붕괴로 인한 총체적인 경제 난국에서 비롯된 바 크다. 소련의 전 지역을 아울렀던 단일경제권이 무너지면서 러시아인들이 점유했던 중요한 산업 생산 단계의 사슬이 끊어졌고(Савин, 84), 이로 인해 삶을 영유하게 하는 경제적 수단이 사라지면서 이주를 결행하게 된 것이었다.
한편 2010년대 중반에 다시 촉발된 귀환 이주는 카자흐스탄 경제가 2000년대 석유, 가스개발로 호황을 누렸지만, 2008년 찾아온 글로벌 외환위기, 2014년 크림사태와 관련한 대러 경제제재의 여파 등 여러 이유로 인해 고전을 면치 못하는 상황에서 일어난 현상으로 1차 귀환이주를 추동했던 근본적인 원인이었던 경제 위기라는 상황은 동일해 보인다. 그러나 조금 더 들여다보면 경제적 원인 외에도 2010년대부터 카자흐스탄 정부가 독립 직후 1995년까지 행했던 강력한 카자흐화 정책으로 선회하는 등 일련의 정부 정책 기조의 변화와 이와 관련된 사회적 기류의 변화가 러시아인들의 이주를 유발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러시아인들이 2010년대 이후 카자흐스탄을 떠나는 이유로 주로 언급하는 것은 바로 러시아어 와 관련된 이슈였다. 카자흐스탄이 언어법을 채택하여 카자흐어의 공식적 지위를 인정하며 사회 여러 부문에서 카자흐어의 사용을 장려하고, 카자흐인들을 정부 요직에 배치하는 이른바 ‘카자흐화’ 정책은 소비에트 말기부터 시작되어 독립 이후 본격적으로 진행되었다(손영훈, 2007). 카자흐스탄은 구소련 공화국 중 독립 당시 명목민족이 다수를 이루지 못한 유일한 국가였다. 따라서 정부가 카자흐인의 인구 비중을 늘리고, 카자흐어의 위상을 높이면서 민족어 사용을 확산하기 위해서 러시아인을 비롯한 비카자흐계 민족들이 여전히 적지 않은 비중을 차지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카자흐 민족주의에 기초한 정책을 펼칠 수밖에 없었다.
독립 직후 나자르바예프 대통령은 과거 소비에트 통치 시기 카자흐스탄을 떠났던 해외 카자흐인, 이른바 오랄만(oralman: 귀환자)들을 몽골, 중국, 우즈베키스탄 등지에서 카자흐스탄으로 유입하는 해외동포 귀환프로그램을 가동하면서 카자흐인들의 인구 비중을 늘려갔다. 1990년대에 걸쳐 러시아인을 비롯한 슬라브계 민족이 카자흐스탄을 떠나갔고, 카자흐인들의 높은 출산율에 힘입어 2010년대 중반 카자흐인의 비율은 전체 인구의 약 70%까지 올라갔다.3) 또한 석유, 가스와 같은 카자흐스탄 경제의 전략 분야의 요직을 카자흐인들이 장악하면서 러시아인들이 이 분야에 접근할 수 있는 기회도 거의 사라졌다. 이렇게 절대 다수가 카자흐어를 모르는 러시아인들은 2000년대를 지나면서 경제, 사회, 교육 등 여러 분야에서 더욱 주변화 되어갔다. 이와 함께 소비에트 시기부터 카자흐스탄에서 가장 많은 사람들이 사용했던 러시아어의 위상도 하락하기 시작했다.
이러한 상황을 선명하게 보여주는 것은 바로 카자흐스탄 정부가 구상한 “2011-2020 국가 언어 발전 및 기능 프로그램”(The State Program of Development and Functioning of Languages in the Republic of Kazakhstan for 2011-2020)이다. 이 사업의 핵심 목표는 카자흐어를 구사하는 인구를 2017년까지 인구의 80%, 2020년까지 90%까지 늘리는 것이다. 그리고 교육기관, 대중매체에서 카자흐어 사용을 점차적으로 늘려서 2020년이 되면 고등학교 졸업생의 100%가 카자흐어를 구사하고, 국영 방송매체에서 카자흐어로 제작되는 콘텐츠를 2020년까지 72%까지 확대하는 것이다. 이것은 러시아어를 사용하는 카자흐인들을 포함하여 러시아인 등 비카자흐계 민족들이 카자흐스탄에서 자녀를 교육시키고, 삶을 정상적으로 영위하기 위해서는 카자흐어를 배워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러한 상황에서 나자르바예프 대통령이 2018년 2월부터 정부와 국회의 모든 회의를 카자흐어로만 진행할 것을 선언하자, 카자흐어를 제대로 구사하지 못하는 정부 각료와 국회의원들은 카자흐어를 따로 개인교습을 받는 일까지 일어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1995년에 개정된 헌법 제7조 2항에 따르면 러시아어는 여전히 “국가기관, 지방자치단체에서 카자흐어와 동등하게 공식적으로 통용된다”고 명시되어 있다. 그러나 2018년부터 일부 카자흐 지식인들은 이 헌법 조항의 삭제를 요구하면서 러시아어의 공식적인 지위를 박탈할 것을 끊임없이 정부에 청원하고 있다.
이러한 분위기는 나자르바예프를 이은 토카예프 대통령의 언사에서도 감지된다. 2019년 9월 취임 이후 첫 대국민 담화에서 “카자흐어가 유일한 국어일 뿐 아니라, 민족 간 소통의 언어가 될 것”이라고 천명했다.4) 여기서 ‘민족 간 소통의 언어’는 카자흐스탄에서 그간 러시아어에게 부여된 공식적인 기능이었다. 이러한 언어와 소통의 문제, 그리고 2017년부터 정부가 본격적으로 추진하는 키릴문자에서 라틴문자로 전환하는 문자개혁이 단계적으로 이루어지고 있는 상황에서 러시아인들이 느끼는 경제적, 민족-문화적 차별과 한 세기에 걸쳐 축적해놓은 사회적 자본이 무너지는 박탈감은 이들 중 다수를 잠재적 이주자로 만들었고, 실제 그 발걸음을 옮기는 것을 실현하는 사람들도 시간이 갈수록 늘어가고 있다.
카자흐스탄 러시아인들이 이주를 결정하는 데 영향을 미치는 또 다른 중요한 요인은 자녀들의 교육과 미래의 진로와 관련되어 있다. 아직은 러시아어가 공용어로 사용되고 있지만, 국사 등 카자흐어로만 진행되는 교과목이 생겼고, 2017년부터 각 학교에서 러시아어는 회화만 가르치면서 러시아어 교육체계가 많이 바뀌었기 때문이다. 또한 러시아인들이 전통적으로 강세를 보였던 과학, 기술, 의학, 금융 분야의 교사, 학자 등 전문가들의 상당수가 이미 카자흐스탄을 떠났기 때문에 교육의 질적 저하는 피할 수 없게 되었다.
이런 상황에서 가족이 모두 함께 러시아에 정착하는 것보다는 자녀를 먼저 러시아로 유학을 보내고, 이후에 부모가 러시아로 이주하여 정착하는 유형, 즉 교육이주가 곧 가족들의 귀환이주로 연결되는 연쇄이주(Chain Migration)의 패턴이 나타나고 있다. 이것은 비단 카자흐스탄 러시아인들뿐만 아니라 구소련 지역에 거주하는 유대인들에게서도 나타나는 현상인데 이스라엘 정부가 운영하는 교육 프로그램에 따라 자녀들을 먼저 이주시키고, 이후 나머지 가족들이 합류하는 경우가 점점 더 일반화되고 있기 때문이다. 카자흐스탄-러시아 국경지대에서 멀지 않은 러시아 서부 시베리아 톰스크(Tomsk)시 소재 대학에서 수학하는 유학생들의 80%는 카자흐스탄 출신이며 대다수가 러시아인이라는 사실이 이를 보여준다.
이처럼 교육수준이 높고, 전통적으로 카자흐인들이 적은 전문분야에 종사하는 러시아인들과 그들의 자녀, 대학생 등 미래의 전문가들이 대거 카자흐스탄에서 빠져나가고 있다는 사실은 두뇌유출이라는 심각한 손실을 발생시키고 있다. 카자흐스탄 정부는 카자흐 청년들의 전문성을 높이기 위해 ‘볼라샥’(Bolashak)5)과 같은 국비유학 프로그램을 가동하고 있지만, 유학 이후 상당수가 정치인이나 공무원이 되는 길을 선택하고, 지속적으로 늘어나는 러시아인들의 이탈로 인해서 이러한 공백을 쉽게 메울 수는 없을 것으로 보인다.
카자흐스탄의 두뇌유출 문제를 더욱 심각하게 만드는 것은 정착을 목적으로 하는 이주에 러시아인들 뿐 아니라, 러시아어를 사용하는 카자흐인들도 가세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2014년 러시아 정부가 러시아어를 자유롭게 구사할 수 있는 사람들에게 국적을 부여하는 과정을 간소화도록 국적법을 개정하고(IOM, 2019), 배우자, 자녀, 부모 중 한 사람이 러시아 국적을 취득하면, 나머지 가족 성원의 국적 취득절차를 간소화하는 조치를 시행하면서 러시아인 귀환이주자들과 함께 카자흐 청년들의 러시아 유입이 증가한 것이다. 이는 2014년부터 카자흐스탄 청년들의 해외 이주가 유입보다 많아지고, 카자흐스탄의 청년 인구(18세-35세)가 2009년 450만 명에서 2018년 390만 명까지 감소하고 있는 상황에서 일어나고 있기에 카자흐스탄 정부로서는 더욱 염려스러운 현상인 것이다(IOM, 2019).
사실 러시아는 소련 해체의 결과 구소련 공화국에 가장 많은 재외동포를 두게 되었지만, 1996년이 되어서야 해외동포 귀환법을 만드는 등 디아스포라의 유입에 그다지 관심을 두지 않았다. 2006년 러시아 정부는 “해외동포의 자발적 재정착에 대한 국가지원 프로그램”(The State Program for Assistance to the Voluntary Resettlement of Compatriots Living Abroad)을 시행하면서 해외동포의 범위를 해외에 거주하는 러시아 연방 국민 뿐 아니라 과거 소련의 공화국에 거주했던 민족으로서 러시아의 문화와 정신적 가치를 자발적으로 선택한 사람, 그리고 직계가족이 구소련 지역에서 거주했던 자까지 포함하는 등 동포의 기준을 혈통적 러시아인을 넘어서 문화적 연계성까지 포함하는 것으로 확대했다. 러시아의 이런 귀환정책의 변화는 러시아 지방의 지속적인 인구 감소와 부족한 노동력을 충당하기 위한 필요에서 출발했다. 카자흐스탄의 오랄만 정책이 그러했듯이 이 프로그램에 따라 귀환한 ‘동포’들은 시베리아, 극동 등 개발이 더딘 ‘전략지역’에 거주해야 했다. 러시아로서는 러시아어에 상대적으로 서툴고, 러시아인과 이질적인 문화를 가지고 있으며 때로는 사회 불안 세력이 될 수도 있는 중앙아시아의 무슬림 노동이주자들보다는 러시아어를 구사하고, 러시아문화를 존중하는 이주자들을 환영할 수밖에 없다. 게다가 이들이 양질의 교육을 받고, 정착한다면 인구문제와 고숙련 노동력 부족 문제를 해결하게 되는 것 뿐 아니라 구소련 지역에서 러시아의 소프트파워를 과시할 수 있게 되니 러시아로서는 중앙아시아의 러시아인 귀환자들과 러시아어 사용하는 카자흐인들에게 기회의 문을 더 열 수밖에 없는 것이다.
2019년 현재 카자흐스탄에 거주하는 러시아인들은 약 370만 명으로 전체 인구의 19.3%를 차지한다. 6) 카자흐스탄에서 러시아인은 인구수로는 구소련 지역에서 우크라이나 다음으로 많고, 전체 인구에서 차지하는 비율로 본다면 구소련 공화국 중 가장 높다. 이들은 대부분 소련을 국가로 여겼던 시기에 카자흐스탄으로 이주했지만, 그보다 이전에 카자흐스탄으로 이주하여 5대째 살고 있는 가정도 있다. 모국이지만 한 번도 삶을 나누지 않았기에 러시아로 이주하기를 주저하거나, 이주할 수 없는 환경에 처한 러시아인들도 많다.
이들이 ‘모국’으로 찾아 이주한 러시아라는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고, 그 사회의 일원으로 통합되기 위해서는 또 다른 지난한 노력이 요구된다. 이주 이후 주류 사회에 입성하지 못하고, ‘카자흐스탄 러시아인’이라는 또 하나의 마이너리티를 구성하는 경우가 많으며, 이 과정에서 다시 오랜 삶의 터전이었던 카자흐스탄으로 역이주하는 현상도 목격할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카자흐스탄 러시아인들의 귀환이주는 소련 붕괴 이후 1990년대 중반에 정점에 달한 이후 계속 하향곡선을 그리다가 2010년대 중반 이후 다시 증가하고 있고, 러시아의 카자흐스탄출신 러시아인 사회도 점점 그 규모가 커지고 있다. 사실 러시아가 이들의 이주를 추동하는 흡인요소는 그다지 강력하지 않다. 1994년에 정점에 이르렀던 1차 귀환이주 당시 러시아 역시 극심한 경제난으로 위기를 겪고 있었고, 정부는 디아스포라 귀환을 위한 프로그램조차 만들어 놓지 않았기 때문이다. 2000년대 들어서 러시아 정부가 실행하고 있는 해외동포 귀환지원 프로그램이 제시하는 조건도 그다지 매력적이지 않고, 관료주의적 행정 처리로 인해 이 프로그램에 따라 귀환한 카자흐스탄 러시아인들은 많지 않다. 그리고 앞서 언급했듯이 거주국과 모국의 경제력의 차이도 그다지 크지 않다. 물론 카자흐스탄에서는 사라진 여러 복지 혜택이 이주자들에게 주어지고, 러시아가 국제사회에서 카자흐스탄보다 더 큰 영향력을 가졌기에 강대국의 국민이 되고자 하는 고려도 존재한다. 하지만 현재 목격되는 카자흐스탄 러시아인들의 귀환이주에는 흡인요소보다 배출요소가 더 강하게 작용하고 있다.
카자흐스탄이 독립한 이후 약 30년이 흐른 현재에도 여전히 국민의 상당수가 러시아어를 사용하는 상황에서 카자흐어 사용을 늘리고 장려하면서 유일한 국어로서의 카자흐어의 위상을 높이기 위해 강약을 조절하며 부단하게 국가적인 노력을 집중해야 한다는 사실은 카자흐스탄에서 ‘러시아인 문제’가 얼마나 복잡하고 중층적인지를 역설해준다. 러시아인들이 대거 떠나면서 카자흐스탄의 민족적 균일성은 높아졌다. 그러나 이것이 곧 카자흐인을 중심으로 한 국민통합으로 이어질지는 미지수이다. 카자흐스탄이 카자흐화 정책에 드라이브를 걸수록 러시아인의 이주는 더욱 증가하고, 이것이 두뇌유출과 인구감소를 가져오고 있을 뿐 아니라, 러시아어를 주로 사용하는 카자흐인과 카자흐어를 사용하는 카자흐인 사이의 불협화음과 충돌을 초래한다는 것이 여러 사건을 통해 드러나고 있기 때문이다.
현재의 토카예프 정권이 이렇듯 ‘카자흐성’(Kazakhness)과 다민족국가로서의 ‘카자흐스탄의 정체성’(Kazakhstaness)을 어떻게 충돌 없이 잘 조화시켜서 국가적 통합을 이루어 갈지는 시간을 두고 지켜봐야 할 것이다. 그러나 나자르바예프 대통령이 권좌에서 물러난 이후 러시아를 향해 가방을 꾸리는 러시아인들이 더 많아졌다는 사실은 카자흐스탄에서 러시아인들의 미래가 그다지 평안하지는 않으리라는 것을 조심스럽게 가늠할 수 있게 해준다.
최아영(cool3039@hanmail.net)은
서울대학교 아시아연구소 객원연구원이다. 모스크바 국립 대학교에서 민족학 전공으로 박사학위를 취득한 이후 러시아, 중앙아시아 지역 민족들의 문화와 종교, 유대인과 고려인 등 구소련 디아스포라 집단의 이주 및 정체성 연구를 진행하고 있다. 주요 저술로는 『중앙아시아 고려인 전통생활문화. 우즈베키스탄』(공저, 2017), 『중앙아시아 이슬람의 역사적 경험과 문화』(공저, 2019), “이스라엘의 구소련 유대인 이주자들의 문화정체성 연구 – 1990년대 이주한 뉴커머들의 언어사용과 종교 수용을 중심으로” (2015) 등이 있다
1) 세미팔라틴스크는 소비에트 시기 이 도시 인근에 지어진 동명의 핵 실험장을 연상시킨다는 이유로 2007년 대통령령에 따라 ‘세메이’로 명칭이 바뀌었다.
2) https://www.rusday.com/articles_new/2019-12-09/kazakhstan/10389/ (검색일: 2020. 5. 20)
3) 2019년 현재 카자흐스탄의 민족구성을 살펴보면 카자흐인의 비율은 68%, 러시아인 19.3%, 우즈벡인 3.2%, 우크라이나인 1.5%, 위구르인 1.5%, 타타르인 1.1%, 독일인 1%, 기타 민족 4.4%. https://www.cia.gov/library/publications/resources/the-world-factbook/geos/kz.html(검색일: 2020. 5.11)
4) https://tengrinews.kz/kazakhstan_news/kazahskiy-stanet-yazyikom-mejnatsionalnogo-obscheniya-tokaev-378033/ (검색일: 2020. 5. 20)
5) 1993년 11월 나자르바예프 대통령의 발의로 만들어진 국비유학제도로 경제, 과학기술, IT, 의학 등 국가 발전에 필요한 전략분야의 인재를 양성하기 위한 목적을 가지고 있다. 석사 및 박사 과정 유학 외에도 교사, 전문가들의 해외 대학 및 기업 파견 실습과정도 지원하고 있다.
6) https://www.cia.gov/library/publications/resources/the-world-factbook/geos/kz.html(검색일: 2020. 5.11)
참고문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