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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년 5월 31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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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년 5월 31일‘기후이주’ 개념을 다시 묻다
김유나(아시아연구소)
5월 19일, 서울대학교 아시아연구소 중앙아시아센터 이주·난민연구단은 Calum Nicholson(2023)의 “Conceptualizing Climate Migration,”과 Ilan Kelman(2023)의 “Climate Change–Disaster–Migration: Manufacturing a Nexus,” 그리고 Benoit Mayer(2023)의 “De-Conceptualising ‘Climate Migration’”을 함께 읽고 세미나를 진행했다. 위 세 글은 기후변화와 이주를 직접적으로 연결하는 익숙한 사고방식에 의문을 제기하며, 서로 다른 방식으로 ‘기후이주’ 개념을 검토한다.
‘기후이주’는 현실에서 발견된 개념인가? 혹은 특정한 정책적, 정치적 필요 속에서 만들어진 뒤 부합하는 현실을 사후적으로 찾아온 구성물인가? 기후위기가 인간의 삶에 영향을 미친다는 사실 자체를 부정하기는 어렵지만, 기후변화가 곧바로 특정한 사람들을 ‘기후이주민’ 또는 ‘기후난민’으로 만든다고 할 수 있을까? 이러한 의문의 중심에는 기후와 이주 사이에 직접적이고 선형적인 인과관계를 입증하기 어렵다는 문제가 있다.
니콜슨(2023)에 따르면 기후 이주 담론은 1970~80년대 신맬서스주의적 환경운동에서 출발해, 1990년대 안보 담론, 2000년대 보건·개발·인권 의제와의 결합을 거치며 확장되어 왔으나 정작 “기후이주민이란 누구인가?”라는 가장 근본적인 질문에 대해서는 명확한 답을 내놓지 못했다.
또한 켈만(2023)에 따르면 ‘기후 사건’이라는 표현 자체가 성립하기 어렵다. 기후는 보통 30년 단위로 평균화된 날씨의 통계이며, 따라서 실제로 발생하는 것은 기후 사건이 아니라 태풍, 홍수, 가뭄과 같은 날씨 사건이다. 그리고 날씨 사건이 재난이 되는지 여부는 자연현상보다는 사회적 취약성에 의해 결정된다.
마이어(2023)는 산정 방식에 따라 ‘기후이주민’의 수가 0명에서 거의 80억 명까지 달라질 수 있다고 본다. 따라서 ‘기후이주민’이라는 범주는 안정적인 분석 대상이라기보다는 정치적 혹은 정책적 도구에 가깝다고 할 수 있다.
이렇듯 충분한 인과관계를 입증하지 못한 채 ‘수억 명의 기후난민’이라는 수사가 반복되어왔다. 2005년 유엔이 “2010년까지 5천만 명의 환경난민이 발생할 것”이라고 예측했으나, 이후 그러한 결과가 나타나지 않자 별다른 설명 없이 관련 자료가 사라졌다는 것은 상징적이다(켈만, 2023).
또한 재난 지역에서 가장 먼저 떠나는 사람은 가장 취약한 사람이 아닌, 이동할 자원과 네트워크를 가진 사람이다. 따라서 가장 가난하고 피해가 큰 사람들은 오히려 떠나지 못하는 ‘갇힌 인구’가 된다는 사실은 ‘기후난민’이라고 할 때 떠오르는 익숙한 이미지가 실제 모습과 다를 수 있음을 시사한다.
이러한 개념의 해체와 비판에는 긴장도 존재한다. 직접적인 인과관계를 입증하기 어렵다는 이유로 개념 자체의 무용성을 선언할 경우, 기후변화와 환경 변화 속에서 실제로 진행되고 있는 현상들이 연구 의제에서 후순위로 밀려날 위험도 있다.
대안은 ‘기후이주’라는 범주를 먼저 설정하는 것이 아니라 ‘이주’ 자체에서 연구를 출발하는 것이다(마이어, 2023). 즉, 기후변화가 이주를 발생시켰는지를 단선적으로 증명하는 것보다 환경 변화와 다양한 조건이 결합해 이동성과 비이동성을 어떻게 만들어내는지를 포착하는 데 연구의 초점을 두는 것이다.
사람들은 왜 이동하는가? 또 왜 이동하지 않는가? 어떤 사람들은 왜 떠날 수 있음에도 남고, 어떤 사람들은 왜 떠나야 함에도 떠나지 못하는가? 여기에는 기후와 환경뿐 아니라, 생계 조건, 국가의 대응 능력, 지역의 경제, 사회적 불평등, 이동 비용, 공동체에 대한 애착과 적응 전략이 복합적으로 얽혀 있다.
개념의 정치적 이용에 대한 비판에도 신중할 필요가 있다. ‘기후이주민’이라는 개념은 온실가스 배출 책임이 큰 선진국에 책임을 묻는 근거로 사용될 수 있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대규모 이주에 대한 공포를 조장해 국경 통제와 이민 제한을 정당화하는 논리로도 활용될 수 있다. 따라서 개념 자체에 대한 인식론적 비판과 함께 이 개념을 누가, 어떤 맥락에서, 어떤 목적으로 동원하는지에 대한 정치사회학적 분석이 함께 이루어져야 한다.
결론적으로, 기후 이주 연구는 기후 위기의 현실을 부정하지 않으면서도 그것을 인구 이동의 단일한 원인으로 환원하지 않는 균형 위에서 출발해야 한다. ‘기후이주민’이라는 범주를 설정하고, 그에 부합하는 현실을 찾기보다, 현장에서 사람들이 왜 이동하고, 왜 남으며, 어떻게 적응하며 살아가는지를 따라가는 데서 시작할 필요가 있다. 이는 기후변화의 영향을 축소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그 영향이 사회적 취약성, 경제적 조건, 국가의 정책, 지역 공동체, 이동 가능성과 불가능성의 문제 속에서 어떻게 매개되는지를 더 구체적으로 드러내는 작업이라고 할 수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