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스크바 공연장 테러 사건 이후 러시아의 타지키스탄 이민자들에게 닥친 위기
최아영(아시아연구소)
2024년 3월 22일 모스크바 인근에 위치한 공연장 크로쿠스 시티홀에서 총기 난사와 방화로 144명이 사망한 테러 사건이 발생했다. 2004년 베슬란 학교 인질 사태 이후 러시아가 경험한 최악의 테러에 직접 가담한 용의자 4명은 타지키스탄 출신이었다. 타지키스탄 현지에서도 모스크바 테러 사건과 관련이 있는 타지크인들이 체포되었다. 러시아에서는 타지크인을 비롯한 중앙아시아인들에 대한 불심검문이 강화되었고, 타지크인이 운영하는 카페에 방화 사건이 일어났으며, 타지크인이 운전하는 택시를 이용하지 않으려 하는 경우도 생겨났다. 또한 러시아 공항에서 사유를 공개하지 않은 채 타지크인들의 입국이 거부되어 이들이 앞으로 5년~10년 동안 러시아에 갈 수 없게 된 경우도 발생했다. 러시아 주재 타지키스탄 대사관과 타지크인 디아스포라 단체들은 타지크인들에게 당분간 사람들이 많이 모이는 행사에 참석하지 말고, 밤에 외출하는 것을 삼가도록 권고했다. 러시아의 한 인권 단체는 테러 발생 후 이틀 만에 중앙아시아 출신 이주민들로부터 2500건 이상의 신고를 접수했다고 밝혔다.
타지키스탄 라흐몬 대통령은 중앙아시아의 신년 축제인 나브루스 행사를 연기하고, 테러 희생자에 대한 애도 기간을 선언했다. 푸틴 대통령도 테러리스트에게는 국적도, 미래도 없다면서 이번 사건으로 민족 간 반목을 부추기는 행동을 멈출 것을 요구했다. 한편 테러 용의자에 대한 고문과 학대 영상이 공개되자 타지키스탄 정부는 테러 공격을 지시하고 실행한 사람들은 처벌되어야 하지만, 고문 및 학대 행위 금지와 무죄추정의 원칙을 명시한 국제법은 지켜져야 하고, 테러를 자행한 자들 때문에 모든 타지크인을 비난하지 말 것을 호소하기도 했다.
현재 러시아의 타지크인 이민자들은 러시아 국적을 취득한 경우도 있지만, 대부분 이주노동자 신분으로 거주하고 있다. 2023년 현재 타지키스탄, 우즈베키스탄, 키르기스스탄 출신 이주노동자들은 러시아 전체 이주노동자들의 82%를 차지하고 있다. 이 중에서 타지키스탄 출신 이주노동자의 수는 2023년 말 120만 명이었다. 해외로 일하러 떠나는 타지키스탄 노동이주자의 90%가 러시아로 향한다. 2023년 타지크인들이 고국으로 보낸 송금액은 타지키스탄 GDP의 약 48%를 기록했는데 그중 80%가 러시아에서 보낸 송금액이었다. 이렇게 러시아에 거주하는 이주노동자들의 타지크 경제에 대한 기여는 절대적이다. 이것은 타지키스탄 국가뿐만 아니라 타지크인들의 삶이 얼마나 러시아와 밀접하게 엮어져 있으면서 깊은 의존관계에 있는지를 보여준다. 이처럼 타지크인들이 러시아를 비롯한 해외로 노동이주를 떠나는 빈도가 높은 이유는 농업과 에너지산업 등 국내 주요 산업을 발전시킬 수 있는 자본과 해외 투자가 부족하여 산업 기반이 취약하고, 이에 따라 경제 상황이 매우 열악하기 때문이다. 여기에 35세 미만 인구가 전체의 70%일 정도로 젊은 나라라는 점도 그 원인으로 작용하고 있다.
한편 모스크바 테러 사건 이후 러시아 하원은 노동이주자들의 러시아 입국 통제와 미등록 이주노동자들의 강제 출국 조치를 강화하는 것을 내용으로 하는 법안을 검토하고 있다. 이처럼 더욱 엄격해지는 이민자들에 대한 통제와 테러 이후 러시아 사회에 형성된 불안정한 분위기로 인해서 러시아로 입국하는 타지크인들의 수가 줄어들었고, 일부는 러시아에서 고국으로 떠나는 경우도 나타나고 있다. 그러나 러시아를 떠나는 타지크인들이 본국에서 일자리를 찾기는 쉽지 않다. 그곳에서 가족의 생계를 유지하는 것도 막막하다. 이렇게 러시아에 살고 있는 타지키스탄 이민자들은 러시아가 겪고 있는 경제 제재로 인해 임금이 줄어들었어도, 모스크바 테러 사건 발생 이후 자신들을 바라보는 러시아 사회의 눈빛이 냉랭해졌어도 러시아를 떠나지 못하면서 숨죽이며 이 위기의 시간이 지나기를 기다리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