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환점에 선 폴란드 우크라이나 난민들의 삶과 도전
최아영(아시아연구소)
우크라이나 전쟁이 발발한 지도 2년이 넘어가고 있다. 2023년 12월 말 기준 폴란드에는 956,633명의 우크라이나 난민들이 EU의 임시보호지침(Temporary Protection Directive: TPD)에 따라 거주하고 있다. 현재 폴란드의 우크라이나 난민들은 폴란드 난민 수용 환경의 변화, 그리고 끝나지 않는 고국의 전쟁상황 가운데 이후 삶의 여정을 결정해야 하는 갈림길에 서 있다. 폴란드의 우크라이나국민지원특별법에 따르면 2022년 2월 24일 이후 전쟁으로 인해 폴란드에 입국한 우크라이나인들의 폴란드 내 체류 시한은 올해 3월 4일까지인데 그 종료 기한을 6월까지 연장하는 법 개정안이 현재 국회에 제출된 상태이다. EU 이사회는 이미 2025년 3월까지 임시보호지침의 종료 시한을 연장했기 때문에 폴란드도 법 개정을 통해 우크라이나 난민 체류자격 변경 시한을 계속 연장할 가능성도 있다. 그러나 이 법이 개정되지 않는다면 그동안 폴란드인과 동일하게 누려왔던 사회복지 혜택에 변화가 있을 것으로 예상된다. 이처럼 체류자격의 변동 가능성과 함께 폴란드의 악화된 경제 상황도 폴란드인뿐만 아니라 우크라이나 난민들의 삶에도 적잖은 도전이 되고 있다. 폴란드가 2022년 이후 급격한 인플레이션을 경험하면서 이에 따른 파급효과가 경제 전반에 확산되고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상황으로 인하여 우크라이나 전쟁 지원, 그리고 우크라이나 난민 수용에 대한 폴란드 사회의 피로감도 누적되고 있다. 개전 초기에 조성되어 그동안 무료로 운영되던 난민 집단 숙소들도 2023년 후반부터 유료화되었다. 게다가 우크라이나산 곡물 문제로 폴란드와 우크라이나 간에 빚어진 충돌까지 겹치면서 폴란드 사회가 우크라이나 난민들을 대하는 시각과 태도에도 모종의 변화가 발생할 수밖에 없었다.
<바르샤바 중심부에서 열린 폴란드 농민들의 시위 집회. 필자 촬영>
그리고 그러한 변화된 상황은 폴란드에서 ‘임시보호대상자’로 삶을 이어가는 우크라이나 난민들도 고스란히 감지하고 있었다. 필자가 방문했던 바르샤바 시청에서 운영하는 난민 집단 숙소와 한 폴란드 기업인이 회사 건물에 난민들을 수용하면서 시작되어 국내외 NGO의 후원으로 함께 운영되고 있는 글로벌엑스포 난민 집단 숙소에서 만났던 우크라이나인들은 올해 6월 이후 어디로 떠나야 할지 모르겠다며 불안한 내색을 감추지 못했다. 폴란드에 머무는 2년의 시간 동안 취업을 했거나, 주택 임대료를 지불할 능력이 있는 우크라이나 난민들은 바르샤바 시내의 주택에서 거주하고 있다. 그러나 상당수의 노인, 장애인 등 취약계층은 여전히 이러한 난민들을 위한 집단 숙소에 머물고 있다. 또한 취업은 했지만, 원룸 임대료가 매월 3000즈워티(약 100만원)일 정도로 비교적 높은 부동산 임대료 때문에 집단 숙소를 떠나지 못하는 경우도 있었다. 글로벌 엑스포에는 난민 아동들을 위해 건물 내부에 학교, 유치원, 심리상담센터가 운영되고 있으나 현재 재정지원이 줄어들면서 유치원은 문을 닫았다. 바르샤바시가 관리하는 난민 집단 숙소에서도 의사가 이제 상주하지 않고, 무료 식사제공 횟수도 축소할 수 밖에 없었다.
<바르샤바 글로벌엑스포 난민 집단 숙소, 필자 촬영>
필자가 만났던 모든 우크라이나인들은 전쟁 초기 자신들을 따뜻하게 맞아주고 생전 처음 만나는 자신들에게 선뜻 집을 오픈해준 폴란드인들에게 지금도 진심으로 감동하고 고마워하는 마음을 표현했다. 그러면서도 “우크라이나인들이 지뢰밭에서 목숨을 걸고 수확한 유럽 다른 국가로 들어갈 곡물”들이 흩뿌려지는 것에는 마음 아파하는 모습도 감추지 못했다.
2024년 2월 폴란드의 우크라이나 난민들은 법적 지위의 불안정성, 높은 물가와 부동산 임대료, 체감하고 있는 폴란드 사회의 자신들에 대한 인식의 변화, 고국에 있는 남편과 가족들에 대한 그리움, 그리고 폴란드어를 배워가며 이제 막 폴란드에서의 삶에 조금씩 적응하고 있는 자녀들, 폭격으로 파괴되어 돌아갈 집이 없어진 상황, 여전히 전쟁으로 위험한 우크라이나의 현 상황 사이에서 고국으로의 귀환, 폴란드 잔류, 제3국으로의 이주 등 이후의 자신과 자녀들의 삶의 전략을 모색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