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 출신 난민들(‘렐로칸트’)은 왜 아르메니아를 선택하였는가?
슬랩첸코 바딤(아시아연구소)
아르메니아에는 현재 약 11만 명의 러시아 출신 난민들이 거주하고 있는 것으로 추정된다. 이들은 대부분은 우크라이나 전쟁이 발발 이후에 이주해 온 사람들이다. 그중에는 사회단체 활동가, 정치인, 언론인들이 있는데 이들이 이민을 선택한 이유는 일반적으로 정치적 박해에 대한 공포였다. 그 배경으로 2022년 3월에 푸틴 대통령이 러시아 ‘특별군사작전’에 관한 가짜 뉴스를 확산할 경우 최대 15년의 징역형으로 처벌하는 법을 제정했다. 실제로는 러시아 출신 난민들의 상당수는 징집 기피 난민들이다. 2022년 9월 21일에 푸틴 대통령이 부분적 동원령 발령 후 동원 대상이 되는 남성들을 대거 러시아를 떠나기 시작하였다.
현재 해외로 떠난 러시아 전쟁 난민들을 위해 ‘렐로칸트(релоканты)’라는 용어가 일반적으로 쓰이고 있다. 렐로칸트라는 용어는 영어의 relocation에서 유래되었다. 일반적으로 relocation은 특정 기업이 새로운 시장을 개척할 때 해당 지역에서 현지 직원을 채용할 때까지 본사에서 직원을 파견하는 제도를 의미하는 것이다. 따라서 ‘렐로칸트’는 러시아어로 파견 근무하는 직원을 의미한다. 우크라이나 전쟁이 시작되었을 때 얀덱스를 비롯한 많은 러시아 IT기업들은 한편으로 경제 제재를 피할 목적으로, 또 한편으로는 자사의 남성 직원들이 전쟁에 동원되는 것으로부터 보호하는 목적으로 직원들을 부서 단위로 해외로 파견하는 정책을 선택하였다. 처음에 이런 사람들만 ‘렐로칸트’라고 부르다가 나중에 해외에 거주하는 모든 러시아 전쟁 이민자들을 ‘렐로칸트’라고 부르기 시작하였다.
이들이 주로 이주한 국가들은 러시아가 무비자협정을 체결한 국가들이지만 그 중에 상당수는 아르메니아에 정착하였다. 많은 나라 중에 아르메니아를 선택한 이유는 무엇보다는 러시아인들의 정주에 적합한 체류 및 취창업에 대한 조건이다. 현재 아르메니아에 입국하는 러시아인들은 180일 동안의 무비자로 체류할 수 있다. 게다가 아르메니아 경우에 입국을 위해 해외 여권이 아예 필요 없고 국내 여권으로도 입국이 가능하다. 러시아 국내 여권으로 입국이 가능한 국가들은 아르메니아, 벨라루스, 카자흐스탄, 키르기즈스탄, 압하지야, 남오세티아이이며, 이 제도는 국내 발급 신분증 상호 인정에 관한 국제 협약을 체결한 국가에만 해당된다. 뿐만아니라 아르메이나에 거주하는 러시아인들은 ‘거주지등록제‘의 혜택을 받을 수 있다. 거주지 등록만 하면 180일마다 출굴 할 필요 없이 무제한 아르메니아에 살 수 있다. 또한, 아르메니아에 거주하는 러시아인들는 소셜 카드(соцкарта)를 발급받으면 취업이 가능하다. 이를 위해 신분증만 제시하면 된다. 아르메니아는 유라시아 경제 연합(Евразийский экономический союз)의 회원국이기 때문에 러시아 시민들은 아르메니아 시민과 동일한 조건으로 아무런 제한 없이 취창업할 수 있는 기회를 얻게 된다.
아르메니아로 이주한 러시아인들은 전통적인 의미에서의 난민으로 정의하기 어렵다. 다른 난민들과 달리 이들은 수용국 경제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는 고급 인력이다. 앞으로 러시아 출신 난민들은 안정적으로 정착하고 더 나아가 수용국 경제에 적극적인 참여 여부는 아르메니아 정부에 달려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