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러시아, 인재 유치를 위한 ‘로드맵’ 승인: 임파트리안트 프로그램 본격화
슬랩첸코 바딤(아시아연구소)
지난 5월 31일 MRD포커스에서 러시아의 새로운 이민 프로그램에 대해 소개한 바 있다. 러시아가 서방 국가들로부터 전통적 가치를 공유하는 외국 인재들을 유치하기 위해 특별 이민 제도를 도입했다는 내용이었다. 2023년 8월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이 서명한 대통령령 702호에 근거한 이 프로그램은 미국, 유럽, 한국 등 47개 ‘비우호적 국가/ 출신 전문가들이 간소화된 절차를 통해 러시아에 정착할 수 있도록 지원하는 제도였다.
흥미롭게도 이 정책의 발단은 모스크바국제관계대학교에서 유학 중이던 이탈리아 출신 학생 이레네 체키니의 제안이었다. 그녀는 푸틴 대통령에게 ‘러시아에서 살 시간(Time to Live in Russia)’이라는 프로그램을 제안했고, 러시아의 전통 가치를 존중하는 외국인들이 행정적 장벽 없이 러시아로 이주할 수 있는 제도가 필요하다고 역설했다. 푸틴 대통령은 이에 화답하여 전략구상청(ASI)과 내무부에 포괄적인 프로그램 개발을 지시했다.
당시 보도에 따르면 프로그램 시행 후 6개월간 미국, 캐나다, 유럽 국가 출신 599명이 러시아 임시 거주 허가를 신청했으며, 러시아는 특히 IT, 생명의학, 창의 산업 분야의 전문가와 기업가들을 유치하고자 했다. 러시아 당국은 일시적으로 체류하다 떠나는 ‘주재원(expat)’과 구별하여, 러시아에 장기적으로 정착하고 가족과 함께 살면서 사회에 기여하고자 하는 외국인을 ‘임파트리안트(импатриант)’라는 새로운 용어로 지칭했다.
러시아가 내세우는 ‘전통적 가치’란 구체적으로 무엇을 의미하는가? 푸틴 대통령은 이를 다자녀 가정, 개인의 자유와 사회적 책임의 균형, 공동체에 대한 기여, 복지와 정의의 추구로 설명한다. 이는 서방 국가들에서 진행되는 급진적 사회 변화에 불편함을 느끼는 이들에게 호소력을 가질 수 있다. 실제로 러시아로 이주한 외국인들은 자녀 교육 환경과 사회 안전을 이주 결정의 주요 요인으로 꼽았다. 러시아는 ‘신자유주의 이데올로기에 반대하며 “더 공정한 발전 모델, 확고한 가치에 기반한 모델”을 제시한다고 주장한다.
이제 이 프로그램이 새로운 단계로 접어들었다. 대통령 지시로 내무부 주도하에 설립된 임파트리안트 이주 및 적응 지원 본부(Штаб по поддержке переезда и адаптации импатриантов)가 범부처 ’로드맵‘을 승인한 것이다. 전략구상청과 러시아 내무부가 공동으로 개발한 이 문서는 행정 절차를 간소화하고, 러시아의 새로운 거주자들이 법률 요건을 이해하며 신속하게 적응할 수 있도록 돕는 것을 목표로 한다.
로드맵에는 해외의 과학자, 투자자, 기업가, 전문가들이 러시아로 더 빠르고 쉽게 이주하여 새로운 삶을 시작할 수 있도록 돕는 40개의 이니셔티브가 포함되어 있다. 주요 내용으로는 첫째, 행정 절차의 간소화가 있다. 외국인 인재들이 전 세계 어느 러시아 영사관에서든 비자를 발급받을 수 있게 되며, 일부 서류의 요구 사항이 완화된다. 둘째, 임파트리안트를 위한 ‘단일 창구(Единое окно)’ 서비스가 마련된다. 이는 외국인 인재들을 위한 전문 부서로, 여러 행정 서비스를 한곳에서 받을 수 있는 원스톱 시스템이다. 셋째, 임파트리안트에게 의료 서비스 제공 요건이 체계화된다. 넷째, 적응 지원 프로그램이 강화된다. 심카드 발급부터 외국 학력 인정에 이르기까지 정착 생활에 필요한 실질적인 지원이 제공된다.
전략구상청 이주 및 적응 지원 본부의 사무국장인 알렉산드르 바이노는 “이 모든 변화의 주요 목표는 단순히 절차를 간소화하는 것이 아니라, 러시아의 전통적 가치를 공유하고 의식적으로 우리나라를 새로운 고향으로 선택하는 사람들에게 러시아가 열려 있음을 보여주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제 대통령 행정실이 참여하는 가운데 각 연방 부처들이 이러한 제안들을 실무적으로 검토하게 된다. 이후 장벽 극복을 위한 상세한 해결책들을 담은 보고서가 작성되어 본부 회의에서 검토될 예정이다.
러시아와 서방 국가들 간의 긴장이 지속되는 가운데, 러시아는 경제적 이주가 아닌 ’가치 지향적‘ 이주를 강조하며 글로벌 인재 유치 경쟁에 독자적인 방식으로 참여하고 있다. 이번 로드맵 승인은 단순한 선언을 넘어 구체적인 실행 단계로 나아가는 러시아의 의지를 보여주는 것으로 평가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