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대학교 아시아연구소 중앙아시아센터 이주·난민연구단은 9월 18일 목요일 <기후변화와 역사 – 식량위기, 전쟁, 그리고 이주>를 주제로 서울대학교 지리학과 박정재 교수를 초청하여 전문가초청특강을 진행했다.
박정재 교수는 강의 서두에서 광양 퇴적물의 화분 비율과 평양의 해수면 온도 비교를 통해 한반도의 홀로세 기후변화를 소개하며, 기후변화가 동아시아 문명의 흥망성쇠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쳤음을 강조했다. 동아시아 문명은 기후가 온화할 때는 농업 생산력이 늘어나 번성했으나 추위와 가뭄이 겹친 시기에는 쇠퇴하고 인구 이동이 가속화되었다.
이어 동아시아 농경문화와 이주 양상을 살펴보았다. 황허강과 라오허강 유역에서는 기장 농경이, 양쯔강 유역에서는 벼농경이 발전하였고, 아무르강 지역은 수렵·채집에서 복합경제로 전환하였다. 이러한 생계방식의 차이는 기후 조건의 영향을 받았으며 기후가 악화될 때는 각 집단의 이동을 촉발했다. 실제로 약 8200년 전 이후 아무르강 집단이 남하하였고 약 3700년 전 이후에는 농경민 집단이 대규모로 이동하였다. 북방 집단들이 남하하면서 도미노식 이주가 전개되었고 이는 한반도와 일본 열도의 문화 형성에도 중요한 영향을 주었다.
또한 기후와 유라시아 사회변동의 관계가 구체적 사례와 함께 다루어졌다. 청동기 최적기에는 따뜻한 기후로 인구 증가와 문화 발전이 나타났고, 철기 저온기에는 기온 하강과 사회 혼란이 겹쳐 일본에서 야오이 문화가 발생했으며 춘추전국시대와 스키타이 문화가 전개되었다. 로마 온난기에는 한무제 시기의 한나라 전성기와 위만조선의 흥기가 있었고, 중세 온난기에는 고려와 송나라가 번성했으며 유럽에서는 바이킹이 그린란드로 진출했다. 반대로 소빙기에는 명·청 교체와 대규모 기근이 발생했다.
강의에서는 전쟁과 기후의 상관성도 강조되었다. 중국에서는 저온기에 전쟁 빈도가 높아졌으며, 기후 악화로 식량 자원이 줄어들면서 유목민의 남하와 갈등이 빈번해졌다. 17세기의 30년 전쟁, 명·청 교체, 병자호란, 대기근은 모두 기후 저하와 연결된 사건이었다. 조선 후기 대기근 역시 중요한 사례였다. 경신 대기근은 화산활동과 무관했으나, 을병 대기근은 대규모 화산 폭발과 저조한 태양활동이 맞물리며 발생했다. 이는 일본의 덴메이 대기근과도 겹쳐 동아시아 전체에 심각한 영향을 미쳤다. 또한 조선왕조실록의 기록을 토대로 열대수렴대 위치변화와 강수량 주기를 분석한 결과 약 70년 주기의 가뭄과 풍년이 왕조의 안정성에 큰 변화를 주었다는 점이 확인되었다.
강의 후반부에서는 현대적 시사점이 제시됐다. 지구 생태계의 회복력에는 한계가 있으며 아마존 열대우림과 적도 산호초의 파괴, 인간 활동에 따른 여섯 번째 대멸종이 이미 진행되고 있다. 또한 9개 행성경계 중 6개가 이미 위험 수준을 넘었으며 이는 기후변화뿐 아니라 생태계 전반이 위협받고 있음을 보여준다. 따라서 박 교수는 지구의 지속가능성을 유지하기 위해 인류에게 견제하는 삶의 방식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끝으로 박 교수는 산업화 이전 대비 기온이 4도 상승할 경우 한반도를 포함한 동북아 지역은 사막화되어 인류 거주가 어려워질 수 있다고 경고하며 최악의 시나리오에서는 2050년경 약 1억7천만 명 규모의 기후난민이 발생할 수 있다고 전망했다.
이후 질의응답 세션이 시작되었다. 참석자들은 발표 내용을 바탕으로 다양한 질문을 제시했으며, 이에 대해 발표자는 각 질문에 대한 답변을 제공했다. 최아영(아시아연구소)은 지금의 지구온난화 현상이 인류가 경험한 최초의 현상인지, 과거 온난기 때도 이주의 역사가 있는지 질문했다. 발표자는 일반적으로는 한랭건조화가 인간에게 위기가 발생했다고 답했다. 지금까지는 추위가 문제였지 더위가 문제인 적은 없었으며, 기후변화의 속도가 더 문제라고 답했다. 특히 온도가 변할 때 동식물이 적응할 수 있었지만, 문제는 급하강하고 급상승할 때라고 강조했다.
이선민(규장각한국학연구원)은 상고사와 관련해 홍산문화와 한국사의 관계를 물었다. 발표자는 홍산문화 유적에서 발견되는 유전적 연속성은 인정되지만, 이를 곧바로 한국사에 귀속시키는 것은 무리라고 답했다. 대신 하가점 하층과 상층 문화가 고조선과 더 밀접한 연관성을 가진다고 설명했다. 이어 이선민은 기후변화가 문명사적/역사철학적 관점에서 갖는 의미를 질문했다. 발표자는 산업혁명 이후의 생태 위기가 근대 문명의 산물임을 강조하며, 진보사관보다는 순환론적/종말론적 시각이 더 적절하다고 답했다. 인구 증가와 환경 파괴로 인해 다시 쇠락하는 순환 구조를 보이지만, 20세기 이후에는 화학비료와 녹색혁명 덕분에 이러한 순환이 깨지고 지속적인 성장과 생태 위기가 동시에 진행되고 있다고 설명했다.
정민기(서울대)는 한 세기를 초·중·후기로 나눴을 때 갈등과 이주의 강도가 달라질 수 있는지 질문했다. 예컨대 세기 초반에는 새로운 기후에 적응하는 시기, 세기 후반에는 변화보다 안정을 추구하는 시기라면, 중기에는 갈등이 집중적으로 발생할 수 있지 않겠느냐는 가설을 제시했다. 발표자는 이에 대해 문명은 보통 환경이 좋을 때 발전하고, 이후 인구 증가로 환경 파괴가 진행되면서 식량 문제가 발생해 쇠락하는 순환 과정을 거친다고 답했다. 그러나 1950년대 이후 비료와 대량 종자 혁명 덕분에 과거처럼 성쇠의 순환이 나타나지 않고 성장 일변도로 진행되었고, 그 결과 환경 위기의 징후가 드러나고 있다고 설명했다.
고가영(아시아연구소)은 근현대사 속 기후 변화의 구체적 사건을 물었다. 발표자는 1940년대 동아시아의 대가뭄과 1950년대 이후‘대가속 시대’를 중요한 사례로 꼽았다. 또한 2010년 전후의 일시적 기후 변화 정체기를 언급하며, 이 시기 온난화 회의론이 힘을 얻었으나 2014년 이후 다시 급격한 온난화가 진행되어 매년 최고 기온 기록을 경신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황의현(아시아연구소)은 유럽이 소빙기로 어려움에 빠졌다면 중동에는 오히려 유리한 조건이었을 수 있지 않느냐는 점을 질문했다. 즉, 유럽의 추위가 중동에서는 상대적으로 따뜻한 기후로 작용했을 가능성이 있으며, 따라서 그린란드의 기후 지표를 그대로 중동에 적용하는 것은 무리가 있지 않겠느냐는 것이다. 이에 발표자는 6~7세기 고대 후기 소빙기에는 유럽이 추위와 흑사병 등으로 큰 타격을 입은 반면, 중동은 상대적으로 습윤화되어 아랍 제국이 성장할 수 있는 조건이 형성되었다고 설명했다.
마지막으로 김선희(아시아연구소)는 방법론적 논의와 관련된 질문을 덧붙였다. 게르만족의 이동과 같은 대규모 인구 이동 또한 기후 변화의 흐름과 연결된 것으로 볼 수 있는지, 그렇다면 그러한 이동이 어떤 규모와 어떤 시간적 지속성을 가지고 나타났는지 질문했다. 발표자는 인구 이동의 원인이 단순히 기후 변화 때문인지, 기후 변화가 야기한 사회 변동 때문인지, 혹은 기후와 무관한 사회적 요인 때문인지를 구분하는 것은 과거 사례에서 명확히 구별하기 어렵다고 답했다. 다만 결정론적 시각에서 보자면, 사람들이 정치·경제·사회적 이유로 이주를 결정하더라도 그 근원을 추적해 들어가면 결국 식량 문제로 연결되는 경우가 많다고 설명했다. 그리고 식량 문제는 자국 내 기후 악화뿐만 아니라 주변 지역의 기후 악화로 인한 파급 효과에서도 비롯될 수 있다고 덧붙였다.
마무리 발언에서 사회자 신범식(아시아연구소 부소장)은 고기후학이라는 주제가 청중에게 다소 낯설 수 있지만, 발표자가 다양한 매체에서 활발히 활동하는 분이라 이번 강연을 통해 직접 이야기를 들을 수 있어 뜻깊었다고 감사 인사를 전했다. 이어 발표자의 연구와 역사학·사회과학 연구가 더 활발히 대화하며 간극을 좁혀갈수록 기후와 인간 삶의 상호작용을 더욱 현실적으로 그려나갈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를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