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중앙아시아센터 이주난민연구단 제22회 전문가초청특별강연
2026년 6월 2일서울대학교 아시아연구소 중앙아시아센터 이주·난민연구단과 HK+메가아시아 연구사업단은 2026년 6월 9일 아시아연구소 303호에서 ‘사타돌궐의 지배: 중세 중국–내륙아시아에서의 정체성 형성’ 이라는 제목으로 한수정 교수를 강연자로 하여 초청특강을 진행하였다.
본 특강에서는 먼저 첫 번째로, 907년부터 979년까지 이어진 중국 중세기의 5대 10국 체제를 조명하였다. 이후 당나라 말기부터 오대십국 시기까지 중국 북부와 중원을 지배했던 유목 민족인 ‘사타돌궐족’을 설명하였다. 사타돌궐족은 서부 내륙 아시아에서 기원하였으며, 5대 왕조 중 후당, 후진, 후한을 건립한 바 있다. 이후 『구오대사』, 『신오대사』 에 수록되어 있는 “나는 본래 번인으로, 양과 말을 기르는 일을 생업으로 삼았다” 라는 구절로 예시를 들며, 사타돌궐의 ‘유목민적 정체성’을 제시하였다.
두 번째로는 사타돌궐의 언어를 살펴보았다. 사타돌궐은 비한족이었으며, 따라서 ‘호(오랑케)의 언어’ ‘사타어’ 등으로 불렸다. 『구오대사』 의 사료를 살펴보며, 사타어가 거란어와 일종의 차이가 있음을 논증하였다. 이후 사타돌궐족의 외모를 사료와 함께 살펴보았다. 『진서』, 『위서』 등의 사료를 함께 살펴보며, “깊은 눈매에 수염이 많은 사람” 이라고 하는 사타돌궐의 외모에 대해서도 함께 살펴보았다.
세 번째로는 사료를 통하여 사타돌궐의 관습을 함께 알아보았다. 천신에게 제사를 지내고, 하늘에 점을 치는 등 사타돌궐이 가지고 있는 풍습을 살펴보았다. 이후 흉노족, 선비족 등 다른 부족의 풍습과 비교해보는 시간을 가졌다. 마지막으로는 ‘양과 말을 기르는 일을 생업으로 삼았다.’ 는 사료 속의 발언을 토대로 하여 사타 돌궐의 직업적 정체성에 대해서 알아보았고, 양자의 입양을 통해서 유지되는 사타돌궐족의 엘리트적 정체성을 함께 살펴보았다.
질의응답 시간에는 정식 역사와 묘비명을 같은 사료로 이해할 수 있는가, 양자를 받아들여서 계승을 이어나가는 구조가 사타돌궐족만의 정체성이라고 할 수 있는가, 사료에 나와 있는 사타족과 거란족 간의 소통은 어떻게 이루어진 것인지, 양자로 사전에 간택된 것이 아니라, 간택된 것에 대한 인식이 추후에 이루어 진 것이 아닌지, 부계 상속을 하겠다는 관념이 약한 곳과 강한 곳 간 풍습 차이, 소그드인의 묘지명에 쓰여진 언어에 관한 질문, 5대 10국에 대한 평가 등 다양한 질문이 제기되었다.
본 세미나는 중국 중세 시기와 중앙/내륙아시아 간의 외교관계를 중심으로 사타돌궐과 중화-내륙 아시아 세계의 재편 과정을 살펴보았다. 이를 통해, 8세기부터 11세기까지 중국과 중앙/내륙아시아의 관계를 외교적 관점에서 재해석할 수 있었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