키르기스스탄의 ‘기후 이주’ 현상
김선희(아시아연구소)
키르기스스탄은 지구 평균보다 두 배 빠른 속도로 온난화가 진행되고 있다. 1960년 이후 평균 연간 기온이 약 1.2°C 상승했고, 최근 20년 동안만 해도 약 1.3°C 상승한 것으로 분석된다. 기후 변화가 이 속도로 지속된다면, 세기 말까지 최대 6°C 이상 상승할 수 있다는 전망도 나온다(RFL/RL, 2023/12/17). 이러한 급격한 기온 상승은 톈산산맥의 빙하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친다. 톈산산맥을 빙하를 필두로 키르기스스탄에는 전국적으로 약 6,500개의 빙하가 있고, 이들이 저장하는 담수량은 6,500억 톤에 달하는데 최근 수십 년간 전체 빙하 면적의 약 16%가 소실되었고, 나린강 상류 유역에서는 1965년부터 2010년 사이 무려 21.3%가 감소한 것으로 보고된다(Cabar, 2024/01/08). 특히 해발 4,500m 이하의 빙하들은 2050~2070년경 최대 70%까지 줄어들 것으로 예측되며, 정부는 현재 추세가 지속될 경우 2100년경 빙하의 거의 전부가 사라질 수 있다고 경고한다.
빙하의 급속한 후퇴는 여름철 수자원에 심각한 영향을 주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가령, 나린강 유량의 30~40%는 빙하와 눈에서 오는데, 빙하가 후퇴할 경우 기존 유량을 유지하기 힘들어진다. 이는 키르기스스탄 전력의 90% 이상을 차지하는 수력발전에도 위협적이다. UNEP는 2050년까지 댐 유입수가 최대 18.8% 줄어들 수 있으며, 이는 발전량 저하와 겨울철 전력난으로 이어질 수 있다고 경고한다(UNEP, 2025/03/26)
한편 기후 변화는 강수 패턴에도 부정적인 영향을 준다. 겨울철 강설량은 일부 증가하고 있으나, 여름철 강우량은 감소 추세를 보이며 계절 간 편차가 커지고 있다. 이러한 변화는 중부 고지대 및 남부 건조 지역의 초원 생태계를 악화시키고 있으며, 목초지의 퇴화와 사막화가 진행되고 있다. 현재 국내 초지의 70%가 이미 황폐화된 상태라고 분석된다(UNEP, 2025/03/26). 기후 위기로 인한 강수 부족과 고온 현상은 가뭄 주기의 단축으로 이어지고 있으며, 과거 5~6년에 한 번 오던 가뭄이 최근에는 격년으로 발생하고 있다. 일부 하천은 5월 기준 유량이 과거의 1/4 수준까지 줄어든 사례도 있다.
농업과 목축 위주 생계에 빨간불이 켜지다
인구의 약 65%가 농촌에 거주하며 농작물 수확과 가축 사육에 의존하는데, 최근 기온 상승과 강우 감소로 전통적 농업 환경이 급격히 나빠지고 있다. 예년보다 봄이 빨라지고 여름이 길어지면서 파종과 수확 주기가 변화한다. 예를 들어 북부 추이 계곡에서는 1960년대 대비 겨울이 약 24일 줄어든 반면, 여름은 9일가량 늘어났다(RFE/RL, 2023/12/17). 이는 작물 재배 시기 뿐 아니라 품종 선택에도 영향을 미치며, 여름 가뭄 심화로 밀, 옥수수, 사탕무 등의 수확량이 줄고 과일 재배지는 고온과 물 부족으로 생산성이 떨어지고 있다.
세계 최대 규모의 잘랄아바드(Jalal-Abad) 아르슬란밥(Arslanbob) 호두 숲도 예외는 아니다. 현지 농민들은 토양 침식과 이상 기후로 수확량이 최대 70%까지 줄어들 수 있다고 예상하고 있다(Cabar, 2024/02/29). 목축업 역시 점점 악화되는 초지 조건을 맞이하고 있다. 방목지의 초지 70% 이상이 가뭄과 과도한 이용으로 황폐화된 상태이며, 이는 가축 체중 감소, 질병 취약성 증가, 축산물 생산량 저하로 이어진다. 여름철 초지가 마르자 가축을 더 먼 거리까지 데리고 나가야 하는 상황도 빈번하게 벌어진다.
물 부족은 사람과 가축 모두에게 심각한 문제다. 고산호수나 계곡 빙하가 줄어들면서 계절 하천이 완전히 마르는 현상도 나타나며, 일부 만년설호는 붕괴 위험까지 보이고 있다. 이는 농촌 정주 여건의 악화와 이에 따른 이주 압력으로 이어진다.
기후 위기는 식량 안보에도 경고등을 켰다. 2014년 여름 대가뭄과 2021년 농산물 가격 급등은 취약층의 식량 접근성에 큰 충격을 주었고, 전문가들은 기후로 인한 흉작 가능성이 가격 불안정을 가중시킬 것이라 우려한다. 이에 따라 키르기스스탄 정부는 기후 탄력적 농업 체계를 도입 하려하고 있으며, 물 관리 기술 확산, 가뭄 견디는 품종 개발, 수직농장 시범사업 등을 통해 적응 전략을 추진 중이다. COP29 회의에서 자파로프 대통령은 “기후 스마트” 농업 실천 사례를 국제사회에 공유하며 협력과 지원을 요청한 바 있다(24.kg, 2024/11/13).
새로운 ‘기후 이주’의 시작과 그 전망
이렇듯 기후 변화로 인해 생계의 위협에 직면한 키르기스스탄의 사람들은 더 나은 환경을 찾아 이주를 결심하기 시작했다. 농촌 지역의 생계 악화와 재난 위험 증대는 해당 지역의 인구들이 보다 안전하고 안정적인 지역을 찾아 나서게 만들고 있다. 현재 키르기스스탄 전체 이주의 약 60%는 내부 이주로, 농촌 주민들이 수도 비슈케크 또는 남부 도시 오슈(Osh)와 잘랄아바드로 이동하는 경향이 강해지고 있다(Integral Human Development, 2021). 특히 재해가 반복되는 바트켄주의 악-테렉 마을처럼 일부 주민들은 터전을 포기하고 떠나는 선택을 하고 있으며, 이는 ‘기후 난민’의 초기 양상으로 간주된다. 2018년 한 해에만 4,700명이 자연재해로 이주를 감행했다. (Integral Human Development, 2021).
IOM. 2023. “Addressing Human Mobility in a Changing Climate in Mountain Areas of the Kyrgyz Republic.” IOM, News-Local (March 01). https://environmentalmigration.iom.int/news/addressing-human-mobility-changing-climate-mountain-areas-kyrgyz-republic
아예 해외 이주를 하는 경우도 있다. 키르기스스탄은 전통적으로 러시아와 카자흐스탄으로의 노동 이주가 활발한 국가로, 이미 약 65만 명 이상이 노동자로 외국에 나가 있다. 이들의 다수는 농촌 출신으로, 기후 변화에 따른 농업 생산성 저하와 자연재해의 누적은 향후 더 많은 청년들이 도시나 해외 노동 시장으로 나가려는 동기를 부여할 것이다.
세계은행과 국제이주기구(IOM), UN 등 주요 국제기구들도 키르기스스탄을 포함한 중앙아시아에서의 기후 이주 가능성을 경고하고 있다. 세계은행의 2021년 보고서는 2050년까지 동유럽 및 중앙아시아에서 약 510만 명, 그중 중앙아시아에서만 240만 명의 내부 이주자가 발생할 수 있다고 전망한다. 키르기스스탄의 경우 최대 20만 명, 즉 인구의 약 3.9%가 기후 변화로 인해 국내에서 거주지를 옮길 수 있다는 시나리오도 제시된 바 있다. (World Bank, 2021) 이런 시나리오에서는 어떤 지역이 인구 유출지가 되고 어디가 유입지가 될지에 대한 구체적인 예측까지 모델링을 하고 있다. 예를 들어, 비슈케크 주변, 남부 오슈 일대, 페르가나 분지 인근은 물 부족과 생산성 저하로 인구의 유출 가능성이 높은 지역인 반면, 상대적으로 수자원이 풍부한 지역은 인구가 오히려 유입되는 지역이 될 수 있다. (The Tashkent Times, 2021/09/17 ). 이러한 공간적 변화는 농촌과 도시의 구조, 인프라, 사회 복지 수요에도 영향을 줄 것이다. 국제이주기구(IOM)는 2023년 발표에서 중앙아시아 산악국가들이 기후 변화로 인해 점점 더 복잡한 인구 이동의 국면에 접어들고 있다고 지적하며, 특히 키르기스스탄의 산악 취약계층에 대한 조기 개입과 지역 협력의 중요성을 강조했다(IOM, 202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