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녹아내리는 땅’에 사는 사람들: 러시아 사하(야쿠티야) 공화국의 기후 변화와 일상
최아영(아시아연구소)
얼마 전 러시아 사하(야쿠티야) 공화국의 한 게임 개발사가 눈길을 끄는 게임을 출시했다. 사하어로 ‘녹지 않는 차가움’, 즉 영구동토를 뜻하는 ‘이르벳 톤그(Ирбэт Тонг)’라는 게임이었다. 이 게임은 야쿠티야의 한 시골 마을에 사는 소년 우르겔이 엄마의 심부름으로 잼을 사러 가는 도중 마주하는 마을의 풍경과 경험을 중심으로 전개된다. 우르겔은 기후 변화로 인해 영구동토가 녹고 땅이 흔들리며 집들이 땅속으로 꺼져 사람들이 더 이상 살 수 없게 된 마을을 바라보며, 이 마을을 위해 자신이 무엇을 할 수 있을지 고민한다. 이러한 여정에서 소년은 사하인들의 전통적 세계관과 우주관을 바탕으로, 기후 변화로 인해 마을이 사라지고 있는 문제를 사하인들의 전통 신앙에 존재하는 정령들과 의논해 가며 해결한다는 것이 이 탐험형 게임의 스토리다.
2025년 6월, 게임 속에 그려진 것처럼 ‘녹아내리는 땅’ 위에서 살아가는 사하공화국의 사람들을 실제로 만날 수 있었다. 사하(야쿠티야)공화국은 러시아에서 가장 면적이 넓은 연방 주체로, 극동연방관구에 속하지만 지리적으로는 극동보다는 시베리아에 속한다. 인구는 995,686명이며, 이 중 47.14%가 사하인, 27.82%가 러시아인이다(2021년 기준). 이 외에도 북부와 북극 지역에는 에벤키인, 에벤인, 돌간인, 축치인, 유카기르인 등 러시아 연방법이 정한 북부소수토착민족(КМНС)이 거주하고 있다
북극권에 위치한 야말-네네츠 자치구의 살레하르드에서 며칠간 해가 지지 않는 백야를 경험한 뒤 도착한 터라, 사하공화국의 수도 야쿠츠크에서 밤 11시경 천천히 지는 해를 바라보니, 이 북부 시베리아의 도시가 문득 남쪽 어딘가처럼 느껴졌다.
하지만 사하(야쿠티야)공화국은 전체 영토의 40%가 북극권에 속하는, 러시아를 대표하는 북극 지역 중 하나다. 북위 62°2′에 위치한 야쿠츠크는 북극권 바로 아래에 있으며, 겨울에는 기온이 영하 50도까지 떨어지는 세계에서 가장 추운 도시 가운데 하나로 알려져 있다. 이곳의 집과 학교, 도로 같은 기반 시설은 얼음으로 채워진 영구동토 위에 지어져 있다. 이러한 환경 때문에 건물들은 지면 위에 바로 세워지지 않고, 지하 깊숙이 단단히 박은 기둥 위에 올린 형태를 지닌다. 이는 영구동토층의 변화로 인해 건물이 흔들리거나 침하하는 것을 막고, 건물의 열이 지면에 전달되어 동토층을 녹이는 것을 방지하기 위한 조치다.
최근 30년 동안 사하(야쿠티야)공화국의 연평균 기온은 1.4도 상승했다. 이러한 기후 변화와 함께, 벌목·산불·인프라 건설 등 인간 활동이 더해지면서 영구동토층은 점점 빠른 속도로 녹아내리고 있다. 사하공화국의 영구동토층을 모니터링하고 있는 러시아과학아카데미 산하 영구동토연구소 부소장에 따르면, 현재 영구동토가 녹으면서 지표면이 융기하거나 침하해 독특한 지형이 형성되고 있으며, 이로 인해 주택들이 붕괴되는 사례가 발생하고 있다. 이러한 위험성이 있는 지역에서는 더 이상 건물이나 도로를 건설해서는 안 된다고 경고하고 있다. 실제로 사하공화국에서 진행되고 있는 건설 프로젝트의 70%~80%는 영구동토층 융해와 관련한 문제를 겪고 있다. 러시아 정부도 현재와 같은 속도로 기후 변화가 발생한다면 2050년까지 주거 및 산업 시설에 발생할 피해 규모는 5조~7조 루블(약 86조원~122조원)에 이를 것으로 추산하고 있으며, 피해를 최소화하기 위해서 영구동토 모니터링작업에 집중하면서 지속가능한 발전을 위한 대응 방안을 모색하고 있다.
이러한 변화는 통계나 연구소의 분석에만 머무는 것이 아니라, 주민들의 일상 속에서도 분명하게 나타나고 있었다. 이번 여름에 사하공화국에서 만났던 대부분의 사람들은 기후변화로 인해 자연환경과 자신들의 일상이 변하고 있다고 이야기해주었다. 겨울이 지나면 영구동토층이 녹아서 집이 이리 저리 흔들리고, 매년 봄이 되면 하천이 범람해서 강둑이 침식되어 사라져가며, 예전에 보지 못했던 진드기나 조류가 출몰하고 있었다. 영구동토의 해빙으로 습지 면적이 늘어나면서, 주민들은 물을 잘 견디는 품종으로 교체해 채소를 재배하고 있다. 겨울철 일정 온도 이하로 기온이 떨어지면 학년별로 학교가 휴교하는데, 최근 들어 그러한 휴교 일수도 예전 같지 않다. 영구동토가 녹자 땅 속에 묻혀 있던 매머드의 잔해가 발견되면서 매머드의 상아를 채취해서 파는 일이 청년들 사이에서 인기 있는 돈벌이가 되었다.
기후변화는 도시 거주민들 뿐 아니라 북극해 인근에 거주하며 순록유목과 같은 전통생업에 종사하고 있는 토착소수민족들도 체감하고 있었다. 영구동토층이 녹아서 형성된 습지로 인해 순록들의 목초지가 줄어들고 있고, 툰드라의 식생대가 바뀌어서 어린 순록들은 자라난 거친 풀 사이를 헤치고 이동하는데 어려움을 겪고 있다. 이제는 거의 사라진 북동시베리아의 소수민족인 유카기르인인 사하공화국 북부토착민족협회 부회장은 조상 대대로 수백 년에 걸쳐 축적해 온 기후와 환경에 대한 전통 지식이 더 이상 통하지 않는다며, “자연이 이제 우리를 믿지 않는다”고 토로했다.
게임 ‘이르벳 톤그’ 속 소년 우르겔은 사람들이 사라지고 있는 마을을 떠나지 않고 전통 신앙 속 정령들의 도움으로 마을을 되살리려 한다. 하지만 현실은 그렇게 단순하지 않다. 기후 변화는 단지 자연환경을 바꾸는 데서 그치지 않는다. 기온이 올라가며 동토가 녹아내려 불안정해지면 기반시설이 무너지고, 생계비용은 올라가며, 전통적인 생업도 더 이상 지속하기가 어려워진다. 영구동토층이 녹아 집이 기울거나 붕괴되더라도, 그 수리비용은 전적으로 개인이 감당해야 하는 것이 이곳의 현실이었다. 결국 사람들은 ‘기후’ 때문이 아니라 기후로 인해 살 수 없는 사회-경제적 조건이 만들어졌기 때문에 그동안 살아온 곳을 떠나게 된다.
2025년 여름에 만났던 사하공화국의 사람들은 가능한 한 자신이 사는 그 곳에 머무르고 싶다고 했다. 평생 가꾸어온 익숙한 삶의 터전을 쉽게 떠날 수 있는 이는 드물 것이다. 그러나 지속적인 기후와 환경의 변화가 이들의 일상과 기반을 서서히 흔들고 있음 또한 감지할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