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년 러시아發 대규모 이주 행렬… IT 전문가가 절반 차지
슬랩첸코 바딤(아시아연구소)
우크라이나 전쟁 발발 후 65만 명 러시아 떠나, 4명 중 1명은 여전히 러시아 회사 근무
우크라이나 전쟁 개시 이후 러시아에서 발생한 대규모 인재 유출의 실상이 구체적인 수치로 드러났다. 경제행정대학교(РАНХиГС) 사회분석예측연구소와 응용경제연구소의 마리나 카르체바, 율리야 플로린스카야 연구진이 발표한 최신 연구에 따르면 2022년 한 해 동안만 약 65만 명의 러시아인이 조국을 떠난 것으로 분석됐다.
이번 연구는 2024년 2~3월 인터넷을 통한 설문조사로 실시됐으며, 최근 이주 경험이 있는 러시아 국민들을 대상으로 한 조사 결과를 바탕으로 했다. 러시아 내에서는 ‘렐로칸트(релокант)’라고 불리는 이들 이주민의 구체적인 직업 분포와 특성을 처음으로 체계적으로 분석했다는 점에서 주목받고 있다. ‘렐로칸트’는 전쟁 이후 러시아를 떠난 이주민들을 가리키는 신조어로, 이들이 러시아를 떠난 이유는 다양하다. 정치적 탄압과 언론 자유 제한에 대한 우려, 경제 제재로 인한 불안정, 그리고 부분동원령으로 인한 징집 회피 등이 주요 원인으로 작용했다.
연구 결과 주목할 만한 사실은 이주민의 직업 분포였다. 출국 전 취업자 비율이 84.7%에 달했던 이들 중 전체의 45.3%가 IT 분야 종사자였던 것으로 나타났다. 이는 러시아가 디지털 경제 발전을 위해 그동안 육성해온 핵심 인재들이 대거 빠져나갔음을 의미한다. 두 번째로 큰 비중을 차지한 것은 교육·과학 분야 종사자들로 16.7%를 기록했고, 문화·체육·여가 분야(5.5%), 금융·보험·법무 분야(5.4%) 등이 뒤를 이었다. 특히 제조업과 광업 종사자는 2.6%에 불과해 러시아의 전통적 기간산업보다는 지식기반 서비스업 인재들의 이탈이 두드러졌다. 이들 분야는 모두 러시아의 장기적 국가 경쟁력과 직결되는 핵심 영역이라는 점에서 인재 유출의 파급효과가 클 것으로 예상된다.
더욱 흥미로운 발견은 상당수 이주민들이 물리적으로는 러시아를 떠났지만 여전히 러시아 기업과 고용관계를 유지하고 있다는 점이다. 연구진에 따르면 해외 거주 이주민 4명 중 1명(23%)이 러시아 고용주를 위해 일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는 디지털 기술의 발달로 원격근무가 일반화되면서 나타난 새로운 현상으로 풀이된다. 실제로 출국 전 원격근무를 하던 이주민의 비율은 30.4%에 달했는데, 이들 대부분이 IT 분야 종사자로 추정된다. 업무 특성상 물리적 위치에 구애받지 않는 IT 직종의 경우 이런 형태의 고용관계가 더욱 쉽게 성립될 수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전문가들은 이번 인재 유출이 러시아 경제에 미칠 장기적 영향에 대해 우려를 표하고 있다. 특히 IT와 과학 분야 인재들의 대량 이탈은 러시아의 기술 혁신 능력과 국제 경쟁력 약화로 이어질 가능성이 높다는 분석이다. 다만 상당수 이주민들이 러시아 기업과의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는 점은 완전한 단절보다는 ‘물리적 분리, 경제적 연결’이라는 독특한 형태의 관계가 형성되고 있음을 시사한다. 이것이 러시아 경제에 긍정적 요소로 작용할지, 아니면 장기적으로는 더 큰 이탈로 이어질지는 지켜봐야 할 대목이다.
이 연구는 《예측문제(Проблемы прогнозирования)》 2025년 4호에 게재됐다.
М. А. Карцева, Ю. Ф. Флоринская. “Новые эмигранты и российский рыноктруда: эмпирический анализ” // Проблемы прогнозирования. 2025. No 4 (211). С.121-13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