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키르기스스탄 천산산맥에 위치한 남부 이닐체크(Inylchek) 빙하>
기후변화가 초래하는 이주_중앙아시아
최아영(아시아연구소)
물은 전통적으로 농업과 목축을 주된 생업으로 하는 중앙아시아인들이 안정적으로 삶을 영위할 수 있게 해주는 귀중한 자원이다. 소련 해체 이후 독립 초기 중앙아시아 각국은 물과 같은 지역 공동의 자원을 보호하기 위해서 협력하기보다는 각자의 국가 발전 로드맵을 가지고 경제 발전에 집중하였다. 이러한 과정에서 중앙아시아 각국의 발전을 위한 전략적인 자원으로서 물의 중요성이 더욱 커지면서 수자원 사용과 관련한 이슈는 시르다리야강과 아무다리야강이라는 두 개의 긴 강을 공유하고 있는 중앙아시아 국가 간의 분쟁의 원인으로 작용하며 정치적인 색채를 띠기도 했다. 한편 최근 중앙아시아 각국은 수자원 고갈을 비롯한 환경 문제를 ‘지역’의 위기로 인식하며 이를 해결하기 위한 방안을 함께 모색하고 있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얼마 전 우즈베키스탄, 타지키스탄, 키르기스스탄에 각각 캠퍼스를 두고 있어서 중앙아시아 지역 협력의 상징이 된 중앙아시아 대학교(University of Central Asia)가 중앙아시아 지역의 환경 관련 전문가들과 기후변화로 인한 환경 문제 해결 방안을 논의하는 회의를 개최하기도 했다.
중앙아시아 국가 중에서도 키르기스스탄은 영토의 약 4%가 천산산맥과 파미르의 빙하와 만년설로 이루어져 있어서 중앙아시아 지역의 ‘급수탑’이라고 불린다. 강수량이 적은 중앙아시아의 건조한 하절기에 빙하가 녹은 물은 키르기스스탄뿐 아니라 중앙아시아 전역에 매우 귀중한 수자원이 되고 있다.
한편 지구온난화로 인한 연평균 기온 상승으로 인해 키르기스스탄에 위치한 빙하의 면적이 줄어들고 있다. 이와 함께 빙하가 위치한 지역에서 이루어지는 광물 채취과정에서 발생한 불순물이 빙하에 떨어지면서 태양열을 흡수하여 빙하가 녹는 속도를 더욱 빠르게 하고 있다. 이렇게 지난 50년 동안 키르기스스탄 영토에 있었던 빙하의 16%가 사라졌다. 전문가들은 2050년이 되면 키르기스스탄 영토에 있는 빙하가 절반으로 줄어들고, 2100년이 되면 아예 빙하가 사라질 것이라고 예측하고 있다. 천산산맥과 파미르에 형성된 빙하의 면적이 감소하게 된다면 이 지역에서 발원하는 시르다리야강과 아무다리야강의 수량이 줄어들게 되고, 그 결과 키르기스스탄뿐 아니라 중앙아시아 전역에 드리운 심각한 가뭄의 위기는 더욱 가시화될 것이다. 게다가 2022년 봄부터 아프가니스탄 탈레반 정부가 건설하고 있는 코시 테파(Qosh Tepa) 운하가 완공되면 아무다리야강 물의 상당수가 사용될 것이므로 우즈베키스탄과 투르크메니스탄 일부 지역은 더욱 심각한 물 부족에 직면하게 될 것이다. 또한 수력 발전이 주요 전력원인 중앙아시아 지역의 고질적인 전력 공급 부족 현상도 더욱 악화될 것이다.
이러한 상황은 필연적으로 사람들의 이동을 촉발하고 있다. 강의 하류에 거주하고 있는 사람들은 상대적으로 물이 풍부한 상류 지역으로 이주하고 있으며 더 이상 농사를 짓지 못하게 되거나 목축이 불가능해진 지역에 살고 있는 사람들은 생업의 형태를 바꾸어 도시로 이동하고 있다. 이러한 기후변화로 인한 중앙아시아인의 이주가 현상으로서는 이미 오래전부터 존재하지만, 현재까지 중앙아시아에서 ‘환경이주민’(Environmental migrant)이라는 개념과 이들의 지위에 대한 논의는 타지키스탄을 제외한 4개국에서는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는 점을 중앙아시아의 환경 문제 전문가들은 지적하고 있다.
타지키스탄에는 2000년대 초부터 거주지의 생태 환경의 변화로 인한 이주민이 생겨났고 이때부터 환경이주민이라는 개념이 정립되어 환경이주민이라는 지위가 공식적으로 존재한다. 지질 관련 부서가 환경 재해 위험 지역을 결정하면 노동고용부, 이주관련 관청 등이 환경이주민의 지위를 결정하고 이주를 관리한다. 타지키스탄에서는 2002년부터 현재까지 기후변화로 인한 홍수와 산사태 발생 위험 지역에서 보다 안전한 지역으로 72000가구가 이주했다. 새로운 지역으로 이주한 사람들은 정부로부터 초기 정착금과 주택을 공급받는다. 이렇게 자발적인 이주보다 정부가 조직하는 국내 이주는 로군댐 건설로 인해 발생한 수몰 지역 주민을 다른 지역으로 이주시키는 것과 관련이 있어 보인다.
우즈베키스탄 역시 환경이주민이라는 개념이 명확하게 정립되어 있지는 않으나 이미 사막화가 진행되었던 아랄해 인근 지역인 카라칼팍스탄 공화국과 호레즘주에서 2015년부터 약 40만 명이 카자흐스탄으로 이주했다. 이들은 주로 우즈베키스탄에 거주하던 카자흐인이었는데 카자흐스탄 정부가 추진한 해외 거주 카자흐인 유입 정책과도 연결되어 있다.
또한 기후변화는 키르기스스탄에서 노동 이주의 동인 중 하나로 꼽히고 있다. 기후변화로 인해 목초지가 감소하고 작황이 악화되면서 유목과 농경을 하던 키르기스인들이 전통적인 생업을 포기하고 러시아나 카자흐스탄의 도시로 이주하고 있는 현상들이 나타나고 있다.
이처럼 지구온난화와 같은 기후변화가 촉발하는 사람들의 이동은 ‘사실’과 ‘현상’으로서 오래전부터 중앙아시아에 존재해왔다. 그러나 현재까지는 ‘환경이주’, ‘환경이주민’이라는 개념은 명확하게 정립되지 않았다. 현재까지는 기후변화로 인한 이주의 대다수가 국내의 다른 지역으로의 이주이며 일시적인 성격을 지니고 있기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