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대학교 아시아연구소 중앙아시아센터 이주·난민연구단은 9월 5일 신혜란 교수(서울대학교 지리학과)를 초청하여 “경계지(borderland)의 경계와 연결의 공존 – 탈북여성 사례를 중심으로”라는 제목으로 전문가 특강을 개최했다.
과거에는 경계(border)를 선 혹은 줄이라고 보았으나 이후 경계를 차별과 권력의 측면에서 봐야 한다는 의견과 경계는 지도상에서만 선일 뿐 사실을 넓은 땅(area 혹은 region)으로 봐야 한다는 의견이 등장했다. 더 나아가 경계 없는 세계(borderless world)라는 개념이 등장하며 경계는 정해진 것이 아닌 흐름(flow)이라는 주장도 나왔다. 후에 누가 경계 짓기(bordering)를 하고 어떤 이유에서 하는지, 일상에서의 경계는 어떻게 드러나는지에 관한 질문이 대두되며 경계를 넘어가는 사람들(borerlander)과 경계 해체(debordering)의 내용적 실체인 인프라 짓기(infrastructuring) 개념이 등장하였다.
신 교수는 탈북민 여성들의 이동과 정착 과정을 분석하여 경계 짓기(bordering)와 인프라 짓기(infrastructuring)의 공존과 순환적 과정, 행위자(actor)의 성장을 조명했다. ‘경계 짓기’란 물리적 장벽, 법적 제약, 감시 및 사회적 배제를 포함한 경계를 정의하고 집행하는 지속적인 관행과 정책을 의미하며, ‘인프라 짓기’란 이동을 가능하게 하는 경로, 네트워크 및 시스템을 구축하는 지속적인 과정을 의미한다. 경계와 인프라 구축은 갈등하지만 공존하며 상호형성한다는 측면에서 경계지의 역설을 확인할 수 있다.
한반도의 경계지(borderland)는 모빌리티 감수성과 상상력, 난민과 이주민의 정의에 큰 영향을 주는 한반도 분단이라는 상황에서 형성된다. 이러한 상황에서 경계 짓기의 행위자는 남북한 정부, 중국 경찰, 국정원, 한국 선주민, LH 등이라고 할 수 있으며, 인프라 짓기의 행위자는 장마당, 브로커, 중국남편, 중국과 한국의 기업인, 라오스/태국 난민보호소, 남한 정부(남북하나재단), 한국교회, 한국대학, 한국 선주민, 한국 남편, LH 등이라고 할 수 있다.
동화이론(Assmilation Theory)과 초국적주의(Transnationalism)는 대표적인 이주자 이론이다. 동화이론은 1920년대부터 가장 강력한 이주자 이론으로 이주자들이 결국 동화할 것이고 동화해야 한다는 측면에서 수용사회의 통합을 강조한다. 초국적주의는 1990년대에 동화이론을 비판하며 등장했으며 초국적 정체성을 발전시키는 것이 이민자의 현실이고 그것을 존중해야 한다고 본다. 많은 국가가 동화정책을 추구하고 있고, 한국 역시 북한이 변화하면 당연히 북한인들이 한국인에게 동화할 것이라고 전제하고 있지만 사실상 현장은 복합적이다. 따라서 사회적 존재인 이주민들의 몸을 둘러싸고 둘 이상의 국가 경계가 끊임없이 재협상하고 있으며, 국가는 이동을 통해 통치하고, 이주민은 일상에서 그 통치 논리를 내면화하며, 다시 그들의 이동을 통해 국가는 탈영통화, 재영토화 과정을 겪는다는 측면에서 동화-초국적주의 지정학을 고려할 필요가 있다.
이러한 관점에서 본 연구는 첫째, 경계와 인프라 구축 또는 두 가지 모두에 북한 탈북 여성의 이동성과 정착에 관여한 주체와 네트워크는 무엇인지와 둘째, 이러한 네트워크는 어떻게 북한 탈북 여성들을 활용하고 착취했으며, 동시에 새로운 기회를 제공하고 새로운 형태의 경계를 형성했는지에 관한 두 가지 연구 질문을 지닌다. 연구 대상은 북한에서 중국으로 넘어가 살다가 라오스나 태국을 거쳐 한국으로 온 중장년 탈북민 여성들이다. 신 교수는 탈북민의 공식적, 비공식적 한인 네트워크(남북하나재단, 브로커, 통일부, 미국 NGO, 사업 컨설턴트, 한국 NGO, 직업학교, 하나센터, 대안학교) 관련인 11명, 식당, 제조업, 온라인쇼핑몰 커피숍, 간판업, 간판업, 미용실, 편의점, 결혼정보회사, 탈북 브로커, 안보강사, 기업인 단체, 지역단체 등 다양한 분야에서 활동하는 탈북 여성 31명 등 42명을 심층 인터뷰하고, 탈북기업인 단톡방, 송년행사, 결혼식, 뒤풀이, 컨설팅, 쉼터, 탈북기업인 워크숍, 탈북민 창업인 지원행사 등에 속하여 참여 관찰하며 현지 조사를 진행하고 있다.
신 교수의 연구에 따르면 인프라 짓기는 탈북민 여성들이 북한에서 경험한 장마당에서부터 시작된다. 중년의 탈북민 여성들은 1991년 고난의 행군 시기 비공식 시장(장마당)에서 비공식적 사업에 눈을 뜨게 되어 비공식 무역을 위해 중국행을 택하게 되었다. 국경통제의 허술함과 중국 농촌의 성비 불균형 문제 등으로 인신매매 브로커의 활동이 활발한 가운데 이들을 통해 탈북민 여성들은 비공식 무역을 위한 일시적 탈경계 이동을 하게 된다. 이후 여성들은 인신매매 결혼이라는 뜻하지 않은 비참하고 억압적 경험을 하게 된다. 그러나 이는 탈북민 여성들이 중국에 거주할 수 있는 유일한 수단이기도 했으며, 결혼을 통해 한국인 기업에 취직하여 한국식 기업 운영의 노하우와 중국어를 익히는 계기가 되기도 했다. 한국에 오기 전 거치는 태국과 라오스 등에서 탈북민들은 난민이 아닌 불법 이민자로 간주 된다. 이들은 체포돼 불법 입국 혐의로 기소되고 수감 됐다가 추방 형식으로 주로 한국에 오게 된다. 이는 사실상 브로커의 활동을 통한 공식-비공식 행위자의 협상, 조정의 결과라고 할 수 있다. 이처럼 장마당, 인신매매 브로커, 인신매매 결혼, 태국-라오스행, 하나원 취업 지원 등의 과정에서 인프라 짓기 효과가 나타난다.
그러나 이는 경계 짓기의 효과로 나타나기도 한다. 예를 들어, 한국 하나원을 위시한 정부 기관에서 받은 직업훈련은 저임금 서비스 직종에 몰려있다는 점과 한국 선주민과 함께하는 직장생활에서 겪은 고립과 차별의 경험이 탈북 여성들에게 창업의 동기를 부여하기도 한다. 결혼 역시 이들에게 경계 짓기와 인프라 짓기로 작용한다. 한국이나 중국 남편의 사업을 돕다가 성공하여 탈북민 기업인들과 연결되거나 북한 사람들을 고용하는 등 인프라 짓기의 효과가 나타나는가 하면 탈북민 전체에 대한 생각이 많아져 단체설립이나 서비스 제공자가 되어야 한다는 생각의 계기가 된다는 점에서 경계 짓기와 인프라 짓기가 공존하는 형태로 나타난다고 할 수 있다.
따라서 탈북민 여성은 공식, 비공식 민족 네트워크에 도움을 받고, 이용당하고, 경계지 레짐(여성들의 이동과 정착을 가능하게 하거나 촉진하거나 제한하며, 권한을 부여하거나 박탈한 힘)을 이용하고 극대화하는 등 다양한 방식으로 지정학적 착취, 수혜, 이용 세 가지를 모두 경험한다고 할 수 있다.
본 연구의 학술적 함의는 첫째로, 끊임없는 경계와 인프라 짓기를 보여준다는 데 있다. 북한 디아스포라를 공식, 비공식 중개자들의 얽힌 연결 속에 위치시키며 국경해체에 대한 관계적 접근 방식을 드러낸다. 흔들리는 국경통제에서 경계 짓기(비이동)와 인프라 짓기(이동)가 끊임없이 협상된다. 탈북민 여성의 이동 경로지는 경계 짓기와 인프라 짓기가 공존, 갈등, 상호형성한 경계지라고 할 수 있으며 이주민, 난민에 대한 관심을 공식적/비공식적, 인간/비인간 네트워크에 대한 관심으로 구체화해야함을 드러낸다. 두 번째 함의는 경계지 레짐의 네트워크와 순환 효과를 보여준다는 데 있다. 경계지 레짐의 공식적/비공식적 네트워크와 행위자들은 상호 연결되고 영향을 주고받는다. 브로커는 이 과정에서 구심점 역할을 하며 인프라 짓기로 이주한 탈북민은 인프라가 되고 탈북민 커뮤니티 지도자와 브로커의 경계는 불분명하다. 경계지 레짐은 계속해서 진화한다.
이후 강연의 내용과 북한 이주 여성의 실상, 연구에 관한 내용을 중심으로 질의응답이 이루어졌다. 김선희(아시아 연구소)는 탈북민 여성들의 인신매매에 의한 결혼을 베트남 이주 여성과 비교해줄 것을 요청했고, 발표자는 중국의 경우 인신매매라고는 하지만 여성이 퇴짜를 놓기도 하고, 사촌이 브로커로 나서기도 하는 등 부모님이 매우 성화인 중매결혼과 비슷한 수준이라고 답변했으나, 한편으로는 연구가 생존하고 적응에 성공한 여성들을 대상으로 이루어진 만큼 일반화하기 힘들 수 있음을 부연했다. 황의현(아시아 연구소)은 중국에서의 북한 여성의 지위에 대해서 질문했다. 발표자는 북한 여성이 죽은 사람의 신분으로 결혼을 하기 때문에 중국 경찰을 피해야 하고, 얼굴 인식이 발달해 있어 일반적인 생활이 힘들다고 답했다. 또한 같은 동네 사람들에 대해서도 북한 여성에 대해 보호자 역할을 하면서도, 한편으로는 북한 여성이 도망갈지도 모른다는 인식으로 인해 감시자의 역할을 하기도 하며, 심지어는 경찰에게 고발하기도 한다는 이중적인 감정을 지적했다. 또한 연구 동향으로 소개되었던 동화주의와 초국가주의라는 프레임에 대한 논의도 제기됐는데, 구체적으로 시리아 난민에 대한 아랍 국가의 반응을 예시로 들며 그 사이의 상태도 있을 수 있음을 지적했다. 이러한 의문 제기에 대해서 발표자는 동의하며 최근 연구는 이것이 스펙트럼의 형태로 존재하며, 그 형태가 복합적이라고 합의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주 여성이 스카이프를 통해 본국의 아이들과 대화하는 등 기술 발달로 인해 일정 수준의 동화가 요구되고 있다. 최아영(아시아 연구소)는 북한 여성과 중국인 아버지 사이에서 태어난 아이들이 처한 상황에 대해 질문했다. 이와 같은 제 3국 출생 탈북민 아이들은 탈북민으로서의 혜택을 받지 못하고, 한국어를 할 줄 모르기 때문에 대안 학교에 재학한다. 또 면담 대상자와의 관계에 대한 인류학과 학부생의 질문에 답하면서는 면담 과정에서의 라포 형성이, 인간 관계에 의해 강압적으로 정보를 취득하는 비윤리적인 측면이 있음을 지적했다. 또한 프라이버시에 대한 인식이 높아지며 스노우 볼링과 라포 형성 자체가 어렵게 되었고, 이에 따라 최근에는 직접 찾아가서 대화를 시도하는 스포팅 메소드를 시도한다고 설명했다. 신범식(서울대)은 북한 이주 여성들을 대상으로 하는 정책적 필요성이 있는지 물었다. 발표자는 이에 대해 한국의 동화주의와, 특히 이주민을 도구화 하는 국가주의적 시각을 국민들이 매우 빠르게 흡수하여 내재화하고 있음을 지적했다. 또한 여러 기관과 조직으로 정책적 발전이 예상되는 상황에서, 국가의 의도가 미디에이터와 스텝들에게도 전달될 필요성이 있음을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