떠나지 못하는 사람들: 타지키스탄에 거주하는 아프가니스탄 난민들의 삶
최아영(아시아연구소)
아프가니스탄은 시리아, 우크라이나와 함께 가장 많은 난민이 발생한 국가 중 하나이다. 2023년 현재 해외로 흩어진 아프가니스탄 난민의 수는 약 640만 명이다. 상당수가 인접국인 이란과 파키스탄으로 유입되었는데, 아프가니스탄과 약 1400km의 국경을 접하고 있는 타지키스탄에도 필자가 방문했던 2024년 7월 현재 약 8000명의 아프가니스탄 난민들이 살고 있었다. 이들이 타지키스탄으로 이주한 이유는 우선 아프가니스탄과 지리적으로 가깝고, 타지크어는 아프가니스탄인들이 사용하는 공용어인 다리어와 매우 유사해서 서로 소통하는데 사실상 문제가 없기 때문이었다. 여기에 더하여 아프가니스탄에는 파슈툰인, 하자라인과 함께 타지크인도 다수를 이루며 살고 있다. 필자가 만나본 타지키스탄의 아프가니스탄 난민들의 대다수는 타지크계 아프가니스탄인들이었다.
타지키스탄의 아프가니스탄 난민들은 2021년 8월 탈레반이 카불을 점령하기 훨씬 전부터 타지키스탄으로 삶의 터전을 옮겨왔다. 탈레반에게 가족이 살해된 후 남은 가족들의 생명을 지키기 위해서, 딸들의 안위와 교육을 위해서 국경을 넘은 사람들이었다. 그러나 이들의 최종 목적지는 타지키스탄이 아니다. 타지키스탄은 캐나다, 영국, 미국 등 이들이 국경을 넘을 당시 바라고 원했던 나라로 가기 위해 잠시 머무는 곳일 뿐이다. 2022년 현재 전 세계 1인당 GDP 순위 131위인 타지키스탄은 중앙아시아에서도 가장 가난한 나라이다. 국민의 약 40%가 러시아를 비롯한 외국에서 이주노동을 해서 생계를 꾸려가는 타지키스탄에서 아프가니스탄 난민들이 뿌리를 내리며 정착할 계획은 애초부터 없었던 것이다. 필자가 만났던 아프가니스탄 난민 가정들의 대다수는 재정보증을 해 줄 수 있는 사람이나 기관을 손꼽아 기다리며 수년 동안 캐나다와 독일, 영국, 미국 등지로 갈 수 있는 기회만을 찾고 있었다. 타지키스탄 정부도 타지키스탄을 경유국으로만 여기는 아프가니스탄 난민들의 현실을 정확히 파악하고 있다. 따라서 타지키스탄이 수용한 난민의 절대다수를 이루는 아프가니스탄인들이 자국의 정치와 경제에 심각한 위협이 되지 않는다고 여기고 있다. 그래서인지 놀랍게도 타지키스탄의 난민 인정률은 사실상 100%에 육박한다. 타지키스탄 정부는 관광비자로 입국한 거의 모든 아프가니스탄 난민들에게 일정한 심사를 거쳐 소위 ‘빨간 카드’라고 불리는 난민증(Корти гуреза)을 발급하고, 매년 유효기간을 연장해주고 있다. 그러나 난민증 발급과 연장을 위한 금액을 지불하는 것이 녹록지 않기 때문에 밖에서 경제활동을 하는 아프간 가족 구성원만 ‘빨간 카드’를 소지하고 있는 형편이다.
<바흐다트의 난민 거주지>
한편 타지키스탄의 아프가니스탄 난민들은 수도 두샨베에 거주할 수 없다. 타지키스탄 정부는 난민들의 통제를 용이하게 하기 위해서 수도에서 약 20km 떨어진 소도시 바흐다트(Ваҳдат)와 두샨베 외곽에 위치한 루다키 구역 등 일정 지역에만 난민들이 거주할 수 있도록 법으로 제한하고 있다. 바흐다트의 아프가니스탄 난민들은 생계를 위해서 두샨베를 날마다 오가며 일하는 것이 어렵기 때문에 주로 자신들이 사는 지역에서 일을 찾고 있다. 그렇지 않아도 실업률이 높은 타지키스탄에서 소도시에 밀집된 채로 삶을 이어가야 하는 난민들이 그곳에서 일자리를 구하는 문제는 결코 간단하지 않다.
현재 주타지키스탄 아프가니스탄 대사관은 본국의 탈레반 정권을 인정하지 않고 있다. 이러한 이유로 대사관의 공식 업무가 상당 부분 제한받고 있어서 타지키스탄에 머물고 있는 아프가니스탄인들에게 공적 서비스를 제대로 제공하기 어렵다. 그리고 1993년 난민협약에 가입했지만, 타지키스탄 정부는 자국으로 넘어온 난민들을 보호하고 지원하기 위해서 적극적으로 움직일 수 있는 형편이 아니다. 이러한 상황에서 2024년을 보내고 있는 타지키스탄의 아프가니스탄 난민은 그야말로 ‘각자도생’의 삶을 살고 있었다. 먼저 해외로 떠난 친척들이 송금해주는 돈으로 근근이 집세를 충당하고, 국내외 NGO들이 난민 여성들을 위해 운영하는 재봉, 미용 등 직업 교육 과정이 있지만, 신청한 사람들이 많아서 1년째 순번을 기다리고 있었고, 길거리에서 타지크 아이들과 싸워서 문제를 일으켜 본국으로 추방당할까 염려하여 아들들을 집 밖으로 내보내는 것을 꺼리고 있었으며, 이곳에서 일자리를 찾는 것에 도움이 될까 하여 낯선 러시아어를 배우고 있었다.
그러나 타지키스탄은 자신들에게 문을 열어준 나라였고, 자신들과 같은 무슬림들이 사는 나라지만 부르카를 입지 않아도, 아버지나 남편, 오빠와 동행하지 않아도 밖에 나갈 수 있는 자유를 누릴 수 있는 나라이기도 했다.
<아프가니스탄에서 떠나올 때 가져온 재봉틀. 이 재봉틀로 아프간 전통의상을 만들어 외국으로 떠나는 사람에게 판매함>
2011년에 타지키스탄으로 넘어 온 한 아프가니스탄 난민 가정은 13년을 기다린 끝에 드디어 캐나다로 입국할 수 있는 비자를 받고 이제 마지막 남은 관문인 항공권이 도착할 날만을 고대하고 있었다. 보통 타지키스탄에서 난민들은 터키항공으로 이주하는데 6월부터 8월까지 터키항공의 난민 수송 프로그램이 중단되었다가 9월에 재개되기 때문이다. 한편 또 다른 난민 가정은 외국에 자신들을 도울 수 있는 친척이 한 명도 살고 있지 않아서 타지키스탄을 떠나고 싶지만 그럴 가능성이 있을지 모르겠다며 한숨을 짓는다. 그렇지만 이제 곧 떠나는 사람, 그리고 떠날 수 있는 기회를 기다리는 사람들 모두 자신들이 타지키스탄의 국경 너머로 던져 놓은 소망과 꿈을 이야기할 때 가장 눈이 빛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