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후변화가 초래하는 이주 – 러시아
최아영(아시아연구소)
세계은행은 온실가스 배출 문제가 해결되지 않으면 지구 온난화 등 기상 재해를 이유로 자신이 살고 있는 곳을 떠나 다른 지역으로 떠날 수밖에 없는 이주하는 이른바 ‘기후난민’들의 역내 이주가 증가할 것이라고 예측한 바 있다. 2030년이 되면 기후난민이 주로 발생하는 지역들이 형성될 것이며, 2050년이 되면 이주의 규모가 더욱 커져서 전 세계적으로 기후난민의 수는 약 2억 명을 상회할 것이라고 내다보고 있다.
러시아에서도 최근 몇 년 사이 지구 온난화의 영향이 뚜렷하게 관측되고 있다. 러시아의 연평균 기온은 전 세계 평균보다 2.5배~3배 더 빠르게 상승하고 있다. 현재 지구상에서 가장 극적인 온도상승을 기록하고 있는 북극 지대가 러시아에 존재하기 때문이다. 지구 온난화로 인해서 수목한계선이 빠르게 북상하면서 시베리아의 툰드라가 사라지고 있고, 그 결과 순록 유목이 어려워지고 있다. 이는 대대로 순록 유목을 전통적인 생업으로 삼고 있는 토착 민족들의 삶의 형태에 큰 변화를 초래하고 있다. 더욱 심각한 것은 영구동토층이 융해될 때 발생하는 메탄은 이산화탄소보다 훨씬 강력한 온실가스로 이러한 지구온난화현상을 더욱 심화시키고 있다는 점이다.
한편 러시아에서 북극 지역과 함께 기후변화의 영향이 현저하게 나타나는 곳은 볼가강 유역을 비롯한 남부 지역이다. 이 지역은 러시아의 대표적인 농업 지대이지만 폭염, 가뭄 등 기상 재해로 인해서 작황이 나빠지고, 목초지가 감소하는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이 지역 주민들이 더 이상 생업을 유지하지 못하고 가축과 농경지를 팔아 다른 지역으로 이주하는 현상들이 목격되고 있다.
러시아의 전문가들은 현재 러시아에서는 기후변화로 인해 두 가지 방향의 국내 이주 흐름이 관측된다고 보고 있다. 첫 번째는 러시아의 북극 지대에서 남부 지역으로 이주하는 것으로 예전부터 존재하는 흐름이었으나 북극해 해수면이 상승하고 영구동토층이 녹아 지반이 붕괴되어 건물, 도로 등 인프라가 파괴되는 현상과 전염병 등으로 인해서 그 이주의 흐름이 뚜렷해질 것으로 보고 있다.
두 번째는 러시아의 남부 지역에서 중앙 및 북부지역으로 향하는 흐름이다. 이것은 상기한 러시아 남부 지역에서 발생하는 기록적인 폭염 등 기상 이변으로 인해 수자원이 부족해지고, 삶의 환경이 악화되면서 보다 기후 환경이 양호한 중앙이나 북부지역으로 이동하는 흐름이다. 향후 기후변화의 영향이 더욱 심각해진다면 러시아 남부뿐 아니라 러시아 남쪽의 인접 국가인 중앙아시아 국가에서 러시아로 기후이주민들이 유입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그렇게 된다면 중앙아시아에서 러시아로 향하는 이주는 노동이주 뿐 아니라 기후 문제로 인한 이주의 성격도 가지게 될 것이다.
대규모 기후난민이 발생하고 있는 아프리카와 남아시아 지역 등과 비교했을 때 러시아는 현재까지는 상대적으로 기후변화의 영향이 대규모 이주까지 촉발하지는 않고 있다. 그러나 러시아 정부는 영구동토층 융해로 인한 문제를 전담하는 연방 차원의 관청을 만들려는 움직임 등 기후 변화 문제에 대해 보다 장기적인 차원에서 적극적으로 대처하려는 노력을 하고 있다.
한편 기후변화는 러시아에게 오히려 긍정적으로 작용할 수도 있다는 관측도 나오고 있다. 지구온난화로 인해 러시아 북부에서 연평균 기온이 상승하면서 농업이 가능해지고, 사람들이 생활하기에 쾌적한 기후조건을 지닌 공간으로 탈바꿈하는 지역들이 발생할 것이므로 기후변화로 인한 이주민들이 러시아로 유입된다면 이것이 러시아에게 새로운 기회로 작용할 수 있다고 보는 의견들도 관측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