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화로서의 소통과 회복에 기여하는 난민 인터뷰
호모인테르 박재윤, 오유현 공동대표
들어가며…
서울대학교 중앙아시아센터 ‘이주·난민연구단’의 ‘경계를 넘는 이주자로서 유라시아 난민 연구: 이주 동학의 다면적 변화와 영향’이라는 제하의 연구 일환으로, 본 교육 프로그램은 이 연구에 참여하고 있는 연구자, 학생 및 일반 시민 대상 참여형으로 11일과 25일 두 차례에 걸쳐 진행되었다. 본 고는 위에서 언급한 교육 프로그램에서 진행된 내용을 바탕으로 작성되었고, 특히 난민 스스로 자신의 목소리를 내고 이러한 목소리가 연구를 통해 전해지며 난민 당사자가 힘을 얻게하는 ‘회복에 기여하는 인터뷰‘가 핵심 내용이었다. 이러한 차원의 연구를 진행하기 위해 연구자 본인이 견지해야 할 핵심적 태도와 소통의 자세는 무엇인지 그 연결고리들을 살펴보기 위해, 첫 번째 시간은 <난민 내러티브의 이해: 난민 인터뷰&방법론>에 대한 주제로 시작하였다.
<자신의 내러티브와 함께 만나게 되는 난민의 내러티브>
난민 내러티브에 앞서 우선 ‘난민’하면 연상되는 단어나 이미지는 무엇인지 떠올려 보자. <그림1>에서와 같이 ‘꽃제비’, ‘흰머리’, ‘Undocumented(미등록)’ 등과 같이 교육 참여자들은 연구자로서 또는 개인적으로 ‘난민’과 관련한 경험과 연결된 다양한 단어들을 떠올려주었다. 동시에 난민출신국이나 발생 지역, 이동 경로와 같은 아프간 특별기여자, 지중해, 쿠르디 등 미디어를 통해서 접했을 법한 정보와 단어들도 보였다. 하지만, 제시한 단어들은 ‘중립적’으로 존재한다기보다는 그 이면에 불안, 공포, 슬픔, 그리움 등과 같은 정서와 연결되어 있을 가능성이 크고, 그러한 정서가 동반된 경험에 대해서도 나눌 수 있었다.
<그림 1> 난민하면 연상되는 단어
<그림 2> 피난을 위해 챙길 물건 하나
참여자들은 앞서 언급한 단어들 이외에도 ‘뿌리뽑힘’, ‘열쇠’와 같은 상징적이고 복합적인 층위의 다양한 단어들을 떠올렸지만, ‘난민에 대한 국민의 인지도 연구’(2019)를 통해 국내에서 ‘난민’과 관련하여 일반적으로 가장 많이 떠올리는 단어들은 ‘가난’ ‘전쟁’ ‘빈곤’ ‘제주’, ‘불쌍’, ‘외국인’, ‘종교’, ‘예멘’, ‘인종’, ‘배고픔’이었다. 이를 통해 ‘난민’이라고 하면 쉽게 연상하는 이미지는 가난, 빈곤, 전쟁, 불쌍, 배고픔 등으로 실제 ‘難民(난민)’ 단어 속에 담긴 ‘어려움에 처한 사람들’을 연상하게 하는 전쟁이나 기아의 이미지가 특히 강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중요한 것은 우리 각자가 가지고 있는 ‘난민’에 대해 연상되는 단어나 이미지들과 함께 이들을 만난다는 것이다. 각자 자신의 내러티브와 함께 내 앞에 있는 난민의 내러티브를 만나고, 듣고, 읽고, 쓰고, 이해(해석)하게 된다. 그렇게 만남 또는 연구의 맥락에서 인터뷰(Interview)는 분명 일방향이 아닌 양방향의 상호작용(Interaction)으로서의 만남이다. 인터뷰가 나아가는 방향은 질문하고 대답하는 각각의 인터뷰어(Interviewer)와 인터뷰이(Interviewee) 공동의 몫이며 공동의 작업이다.
<안전과 생존, 존재 증명 그리고 상실>
인터뷰가 공동의 작업이자 협업의 생산물이라는 측면을 염두해두고, 이번에는 보다 일반적인 ‘난민의 경험’에 대해 살펴보자.
난민을 대상으로서 타자화하는 것이 아닌, 최대한 공감하며 자신과 연결하여 이해하기 위해 ‘피난 시 챙길 물건’[그림2]을 생각해보자. 꼭 하나만 챙겨야 한다면 당연히 무엇을 가지고 가야 하나를 떠올리고, 이는 필연적으로 무엇을 버려야 하나라는 과정을 거치게 된다. 이러한 과정에서 자신이 관계를 맺었던 사물, 공간, 존재 등 다양한 관계들과의 단절과 이로 인한 상실감을 경험하게 된다. 게다가 급박한 상황이라는 조건에서 우리의 본능적이고 최우선적 기준은 안전과 생존임이 분명하다. 또한, 지금껏 소속된 사회 내에 있어 굳이 필요가 없었던 자신의 존재를 증명하기 위한 여권과 같은 물건도 필수적으로 떠오르게 된다. 이렇게 안전과 생존, 존재의 증명이 우선 순위에서 상단에 위치할 것임은 분명하지만, 동시에 애착을 맺는 정서적인 관계들과의 연결을 유지하고픈 마음 – 이러한 정서적인 관계가 심리적 안정과 안전, 나아가 궁극적으로는 생존에 기여할 수 있음은 분명하다 – 역시 강할 것이며, 그러한 까닭에 우리는 ‘강아지’ 또는 가족사진을 포함한 소중한 사람들과의 기억이 담긴 ‘핸드폰’ 역시도 여권만큼이나 신중하게 선택하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이렇게 피난 직전 과정에서 겪게 되는 상실, 안전과 생존 등은 피난의 과정 그리고 비호를 신청하게 되는 제3국에서도 계속 이어진다. (<표1>. 트라우마 3단계 과정(각주 1)) 아마도 탈출 전, 탈출 간의 다양한 트라우마적인 사건들은 당연히 예상 가능할 것이다. 하지만, 탈출이 이루어진 후에도 수많은 사건들을 겪고 감당하게 된다. 예를 들면, 사회‧경제적으로 낮은 지위, 고국에서의 나쁜 소식, 신체적 정신적인 증상의 악화 등이 있다. 실제로 우리가 만난 난민들을 떠올려 본다. 본국에서는 변호사였던, 또는 초등학교 교장선생님이었던 분들이 비호국에서는 육체노동을 하며 전혀 다른 삶을 살아가는 모습, 고국에서 가족들이 안전의 위협을 받거나 가족의 누군가의 부고를 듣게 되는 경우, 처음 만났을 때의 총기와 지혜 가득한 눈빛이 점차 피곤으로 그 빛을 잃어가는 모습을 보게 된다. 이렇듯 난민으로서 경험의 핵심은 다양한 측면에서의 상실이라고 여겨진다.
<표 1> 트라우마 3단계 과정
<난민 인터뷰: 대화로서의 소통과 회복의 기여로서의 인터뷰>
그럼 실제 난민의 인터뷰를 위해서는 구체적으로 무엇을 고려해야 할까? 우선 난민을 위한 인터뷰 기술인 ‘대화형 소통 방법’(Diglogical Communication Method, 이하 DCM)을 간단하게 살펴보자.
DCM은 아동과 취약한 사람들을 인터뷰에 활용되기도 하고, 이는 난민과의 인터뷰에서도 적용가능하다. 그 원칙으로서는 다음과 같다:
– 인터뷰는 대화로서 여겨 짐
– 인터뷰는 공감적인 소통방식으로 진행되는 것이 특징임
– 사용되는 소통방법들은 신뢰할 수 있고, 충분히 자세한 정보들을 수집하도록 도움
인터뷰가 공동의 작업이라고 앞서 언급한 바와 같이, DCM에서 역시 인터뷰 중 의사소통은 인터뷰 진행자와 난민 간의 대화 과정으로 여겨진다. 그렇기에 두 사람 모두 대화 중에 서로의 행동에 영향을 미치므로 궁극적으로 얻게 될 결과(정보의 양과 질)는 이들의 관계와 소통방식에 따라 달라진다.
또한 소통에 있어 언어적 측면 이외에도 비언어적인 측면이 중요하기에 인터뷰 진행자는 상호 간의 비언어적인 측면에 대한 인식이 필요하고, 특히나 기본적으로 인터뷰어와 인터뷰이 간에 존재하는 비대칭적인 관계를 고려하였을 때 자신의 언어적, 비언어적 의사소통이 난민의 행동에 미치는 영향에 대해서 더더욱 섬세하게 의식하며 인터뷰 진행에 통합할 수 있어야 한다(각주 2).
이렇듯 공감적인 소통방식을 통해 상호 간에 영향을 주고받으며 우리는 최대한의 신뢰 관계를 구축하고, 연구 목적에 부합하는 자세한 정보를 얻고자 한다. 하지만 과연 이것으로 충분할까? 난민의 경험을 일반화할 수는 없지만, 앞서 살펴본 바와 같이 난민으로서 삶의 여정에서 수많은 트라우마를 경험한다. 이러한 난민과의 인터뷰에서 인터뷰 진행자에게는 연구에 있어 정말로 핵심적인 질문에 대해 중간중간 ‘난민 인터뷰이가 ‘엉뚱한 답변’을 한다면’, 게다가 인터뷰를 위한 시간이 벌써 많이 지나간 상황에서 중요한 질문마다 ‘회피’하는 답변을 한다면’ 과연 연구자로서는 어떻게 해야 할까?
난민과의 인터뷰에서 발생할 수 있는 답답함이 가득할 이러한 상황에 대처할 구체적인 방법보다는 트라우마인폼드 접근(Trauma-informed Approach, 이하 TIA), 즉 궁극적으로 ‘회복에 기여하는 인터뷰’라는 관점을 달리해보는 것을 우선시해보자.
트라우마인폼드된 프로그램, 조직 또는 시스템은 트라우마로 인해 광범위하게 퍼져있는 영향을 인지하고, 회복을 위한 가능성 있는 경로를 이해할 필요가 있다(각주 3). TIA에서는 트라우마의 신호나 증상을 인식하고 실천에 이러한 관점을 접목하게 된다. 이를 연구 상황, 특히 직접적인 만남이 이루어지는 인터뷰 상황에 적용해보자. 만일 연구자가 보기에 난민 인터뷰이가 ‘엉뚱한 답’을 반복적으로 하고 있다면 그것은 트라우마에 대한 재경험(Retraumatization)을 피하기 위한 ‘정상적인 반응’을 보이는 것일 수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계속적으로 질문을 반복하는 대신 ‘회복에 기여하는 인터뷰’와 같은 우리가 연구를 통해 궁극적으로 기여하고자 하는 바가 무엇인지를 자문한다면 우리의 선택은 비교적 명확할 것이다.
마치며…
첫 번째 회기를 마치며 정리와 성찰로서 참여자들에게 의미 있었던 키워드를 모아보았다. 그 중 ‘충분한 시간’이란 단어가 눈에 들어온다. 연구의 현실적인 조건으로 인해 안전과 신뢰의 관계를 맺기에 충분한 시간을 가지는 것은 쉬운 일은 아닐 것이다.
그럼에도, 연구 자체가 가지는 힘을 떠올린다. 특히 인터뷰라는 방법을 통해 일반명사로서의 ‘난민’이 아닌 고유명사로서의 ‘개인’의 역사가 그 자신의 목소리로 들려지도록 하는 자리, 이를 경청하고 기록하는 연구자를 통해 트라우마 생존자를 위한 회복의 시작에 숨결을 불어넣는 ‘상생적 연구’를 떠올린다.
각주
(1) The Center for Victims of Torture(2005), Healing the Hurt, Chapter3.
(2) UNHCR Austria, ed. 2017. Handbook for Interpreters in Asylum Procedures. Vienna: UNHCR Austria.
(3) Substance Abuse and Mental Health Services Administration. SAMHSA’s Concept of Trauma and Guidance for a Trauma-Informed Approach. HHS Publication No. (SMA) 14-4884. Rockville, MD: Substance Abuse and Mental Health Services Administration, 20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