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쟁 그리고 또 다른 전쟁. 다시 피난길에 오르는 이스라엘의 우크라이나 난민들
최아영(아시아연구소)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을 피해 이스라엘로 입국한 우크라이나인들과 우크라이나 유대인들은 2023년 10월 7일 하마스가 이스라엘을 공격하며 발생한 이스라엘-하마스 전쟁이라는 또 다른 위기에 직면하게 되었다.
2022년 2월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발발 직후 이스라엘 정부는 우크라이나 접경국인 폴란드, 루마니아, 몰도바 등지에 전쟁을 피해 이들 나라로 유입된 우크라이나 유대인들과 그들의 가족과 친지들을 돕기 위한 긴급 구조 및 지원 업무를 시작했다. 이스라엘 입국을 원하는 우크라이나 유대인 난민들을 위해서 귀환 자격 심사를 대폭 간소화한 ‘알리야 익스프레스’(Aliyah Express)시스템을 가동하여 전세기를 통해 신속하게 이들을 이스라엘로 후송하기도 했다.
이스라엘 중앙통계청과 구호 단체에 따르면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한 이후 약 45000명의 우크라이나인들이 이스라엘로 입국했다. 우크라이나 난민들이 이스라엘을 목적지로 선택했던 이유는 이스라엘은 부모, 조부모 중 한 명만 유대인이어도 본인과 자녀, 비유대인 배우자에게 귀환권을 부여하기 때문에 입국 이후 안정된 법적 지위를 가질 수 있고, 초기 정착 지원 프로그램이 비교적 잘 정비되어 있기 때문이다. 또한 이스라엘 인구의 약 15%에 달하는 130만 명이 구소련 국가 출신으로 러시아어를 사용하고 있고, 그중 약 50만 명이 우크라이나에서 이주한 사람이기에 난민들이 당면하는 가장 큰 장벽중 하나인 언어 문제가 어느 정도 해소되기 때문이었다. 이스라엘로 온 우크라이나 난민들은 러시아어 사용자 커뮤니티가 이미 형성되어 있는 곳에 주로 정착했는데 가자지구에 인접한 남부 도시 아슈켈론, 아슈도드에도 다수의 우크라이나인들이 거주하고 있었다.
이스라엘 주재 우크라이나 대사관은 하마스의 공격 이후 몇 주 동안 약 4000명의 우크라이나인들이 이스라엘을 떠났다고 밝혔다. 스스로도 러시아와 전쟁을 치르고 있는 우크라이나 정부는 이스라엘에 거주하고 있는 우크라이나인들을 가자지구에서 대피시키고, 루마니아, 헝가리 등 이스라엘 밖으로 이들을 후송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지만, 그 수는 제한적일 수밖에 없다. 이스라엘을 떠난 우크라이나 난민들은 주로 루마니아, 헝가리, 폴란드 등 우크라이나 접경 국가로 이주한 다음 다시 자신들의 고향인 우크라이나로 돌아가는 경향을 보이고 있다.
전쟁의 위협뿐만 아니라 우크라이나 난민들에 대한 이스라엘 정부의 지원 전망도 불투명할 것이라는 사실도 이스라엘의 우크라이나 난민들의 발길을 돌리게 하고 있다. 이스라엘 정부는 2023년 8월에 이스라엘에 거주하는 우크라이나 난민을 위한 의료 및 사회 복지 비용을 충당하기 위해 2023년 말까지 1억 셰켈(약 2700만 달러)을 배정하겠다고 발표한 바 있다. 그러나 하마스와의 전쟁으로 막대한 전쟁 비용이 발생하고 있고, 파괴된 남부 지역과 전쟁으로 피해를 입은 자국민들을 지원해야 하는 상황에서 이스라엘 정부가 2024년에도 우크라이나 난민에 대한 인도적 지원을 안정적으로 유지할 수 있을지 확신할 수 없는 것이다.
우크라이나에 살고 있는 친지와 통화하면서 양쪽에서 동시에 울리는 공습경보 사이렌 소리를 들어야 하는 이스라엘의 우크라이나 난민들의 상황은 비극적이다. 전쟁, 그리고 또 다른 전쟁을 겪고 있는 이스라엘의 우크라이나 난민들은 그들이 떠나온 고향에서 겪었던 극한의 공포와 트라우마를 재경험하면서 또 다시 피난길에 오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