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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서울대학교 아시아연구소 중앙아시아센터 이주·난민연구단 <MRD 포커스> 3월호: 난민협약의 안과 밖: 전쟁과 난민2024-03-30 11:44
작성자 Level 8

난민협약의 안과 밖: 전쟁과 난민


최계영(서울대학교)


전쟁, 내전이나 무력 분쟁을 피해 국경을 넘은 사람들을 난민이라고 부르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다. 시리아 난민, 예멘 난민, 우크라이나 난민이라고 말하는 데에는 아무런 어색함이 없다. 그러나 놀랍게도 무력 분쟁으로 본국을 떠날 수밖에 없었던 사람들을 난민협약에서 말하는 난민으로 볼 수 있는지는 국제난민법의 오랜 난제이다.

 

유엔난민기구 편람에서는 1979년의 초판부터 무력충돌의 결과로 출신국을 강제로 떠날 수밖에 없었던 사람은 일반적으로 난민으로 간주되지 않는다”(164)고 기술하고 있다. 이는 20113판까지 동일하다. 전쟁 중 민간인은 국제난민법이 아니라 국제인도법으로 보호하여야 하고, 일반화되고 무차별적인 폭력은 난민협약에서 말하는 박해가 아니라는 것이다. 1951년 난민협약은 난민을 일상적 언어감각보다 좁게 인종, 종교, 국적/민족, 특정 사회집단의 구성원인 신분 또는 정치적 견해를 이유로박해를 받을까 두려워하는 사람으로 정한다. 생명이나 신체에 위협을 받게 된 원인이 열거된 5가지 사유 중 하나여야 한다. 전쟁이나 무력 분쟁으로 인한 위험은 개개인에게 그러한 사유가 있는지와 관계없이 무차별적으로 가해지므로 이를 피해 떠난 사람은 난민이 아니라는 것이다.

 

아프리카, 남미, 유럽에서는 난민협약의 한계를 지역 차원에서 보완하였다. 난민 개념을 독자적으로 넓게 정의하거나, 난민 보호를 보충하는 추가적인 보호 제도를 만드는 방식이다. 아프리카와 남미에서는 분쟁 난민도 포함되도록 난민을 넓게 정의하였다. ‘외부의 침략, 점령, 외국의 지배나 공공질서를 중대하게 침해하는 사건’(아프리카 통일기구 협약, 1969)이나 일반화된 폭력, 외국의 침략, 국내 분쟁, 대규모의 인권 침해 또는 공공질서를 중대하게 해치는 상황’(남미 카타헤나 선언, 1984)으로 인해 피신한 사람을 난민으로 정의한다. 유럽연합(2011)에서는 난민에 해당하지 않으나 국제적 혹은 국내적 무력충돌 상황에서 무차별적 폭력으로 인해 민간인의 생명 또는 신체에 대한 심각한 위험이 존재하는 경우 일정한 보호를 제공하는 보충적 보호 제도를 만들었다.


예외적으로만 분쟁 난민을 난민협약상 난민으로 보는 접근방식은 지속적인 비판의 대상이 되었고, 각국의 난민인정 담당 기관과 법원, 유엔난민기구의 해석도 서서히 변화하였다. 유엔난민기구는 마침내 2016년 분쟁 난민을 보다 포괄적으로 난민으로 받아들일 수 있는 지침을 발표하였다(국제적 보호에 관한 지침 제12). 이 지침은 다음의 문구로 시작하다. “오늘날의 무력충돌 및 폭력 사태야말로 난민이 발생하는 주요 이유다. 이러한 사태는 주로 정치적, 종교적, 민족적, 사회적, 성별에 의한 박해로 이어진다.” 무력 분쟁으로 인한 실향민에게 난민협약이 직접적으로 적용되고(1), 편람 제164(상술)의 문구는 박해의 공포와 협약상 사유 사이에 인과관계가 전혀 없는 경우에만 적용된다(10)는 점을 명시적으로 확인하고 있다.


해석이 변화하였다고 해서 전쟁이나 분쟁을 피해 출신국을 떠나야 했던 모든 사람들이 당연히 난민으로 인정받을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난민으로 인정받기 위해서는 인종, 종교, 국적, 특정 사회집단의 구성원인 신분 또는 정치적 견해 중 하나 이상의 사유로, 박해를 받을 것이라 충분한 근거가 있는 두려움(난민협약 제1조 제A항 제2)으로 인해 출신국으로 돌아갈 수 없어야 한다. 분쟁 난민에 있어 특히 문제가 되는 지점은 협약상 사유로 인한 것인지, 즉 인과관계와 예상되는 위해의 수준이 박해라고 볼 정도인지이다. 많은 무력 분쟁은 인종, 종교, 국적/민족, 정치적 견해의 차이가 원인(여러 복합적 원인의 하나일지라도)이 되므로 특정 집단이 공격 대상이 되거나 특정 집단에게 더 큰 영향을 미칠 수 있다. 예를 들어 특정 종파를 믿는 사람들이나 특정 민족에 속하는 사람들이 주로 거주하는 지역을 집중적으로 공습할 수 있다. 겉으로 보기에는 무차별적으로 보이는 공격이라고 할지라도 분쟁의 원인과 전개양상을 종합적으로 고려하여 인과관계를 판단하여야 하는 것이다. 분쟁상황에 처한 다수의 사람들이 같은 위험에 처한다는 이유로, 즉 일반화된 위험이라는 이유로 박해에 이르지 못한다고 보는 입장도 있다. 그러나 위해가 다수에게 미친다는 사실로부터 바로 난민이 아니라는 결론을 도출할 수는 없다. 예상되는 위해의 수준이 박해, 즉 중대한 인권 침해의 기준선을 넘는 것이라면 양적으로 다수인지 소수인지는 난민인정에 영향이 없다. 특정 집단의 다수 또는 전체가 위험에 처했다는 것은 박해의 위험을 부정할 사유가 아니라 오히려 이를 뒷받침하는 사유이다. 개인에게 차등화된 위험이 있을 것은 박해의 요건이 될 수 없다.


한편 전쟁과 난민의 맥락에서 군 복무 거부의 문제도 함께 살펴보아야 한다. 전쟁이 발발한 상황에서 군 복무를 피하기 위해 출신국을 떠난 사람들의 난민인정 문제이다. 국가는 국민에게 병역의무를 부과할 수 있고, 병역의무 부과 자체는 인권 침해가 아니다. 그러나 병역 거부를 이유로 난민으로 인정될 수 있는 몇 가지 상황이 있다. 양심적 병역거부자의 경우 출신국의 국내법이 대체복무할 수 있는 가능성을 열어 두지 않거나 대체복무의 기간이 과도하거나 징벌적 성격을 갖는다면 난민으로 인정될 수 있다. 무력 분쟁에 사용되는 수단이나 방법 때문에 병역을 거부하는 상황도 생각해 볼 수 있다. 분쟁 당사자들의 행위가 국제인도법, 국제인권법, 국제형사법에 반하고, 군에 복무하면 그러한 행위(전쟁범죄, 인도에 반하는 범죄 등)에 가담하거나 연루되다면, 이를 피하기 위한 병역 거부는 난민인정 사유가 될 수 있다. 국가가 아닌 무장단체의 징집, 일정 연령 이하의 아동의 징집은 국제법에 반하므로, 이를 피한 결과 박해의 위험에 처하게 되었다면, 역시 난민으로 인정될 수 있다.


시리아 내전, 예멘 내전,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등 지난 10여 년 사이에 일어난 국제 분쟁은 지리적으로 떨어져 있는 한국에도 크고 작은 영향을 미치고 있다. 이를 사유로 한 난민 신청의 증가도 그중 하나다. 전쟁과 무력 분쟁의 복합적 원인과 급변하는 전개 양상을 종합적으로 고려하여 충실하게 난민심사 제도를 운영할 임무가 한국 정부와 법원에게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