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대학교 아시아연구소 중앙아시아센터 이주난민연구단과 아시아이주센터, HK+메가아시아연구사업단은 5월 16일 영화 <헤르니모>의 제작자 전후석 감독을 초빙해 “디아스포라가 미래다”라는 제목으로 전문가 특강을 개최했다. 저자의 한인 디아스포라로서의 정체성 경험을 바탕으로 디아스포라의 정체성과 본국과의 관계를 탐색한다. 더 나아가 ‘디아스포라적 사유’에 대해 고민하며, 더 나아가 디아스포라 서사를 통해 현재 한반도가 씨름하는 다문화주의, 다양성, 이주민, 난민, 소외된 이웃에 대한 하나의 실마리를 발견하는 기회로 삼았다.
행사는 감독에 대한 사회자 최아영 박사(서울대학교)의 소개로 시작되었다. 전후석 감독은 재미한인이자 영화감독, 변호사이며, 한인 디아스포라로서의 경험을 바탕으로 영화 <헤르니모> (2019), <초선>(2022)을 연출했고, 책 ‘당신의 수식어(2024)’를 출판했다.
저자는 영화 <헤르니모> 장면을 인용하며 강연을 시작했다. 재외동포, 이주민 등 다른 용어에 비해 상상력을 자극하는 디아스포라라는 개념은 한인이 아닌 모든 이주민에 대한 포괄적인 이해를 가능하게 하며, <헤르니모> 역시 이를 이해할 수 있는 모든 이들을 위해 제작된 다큐멘터리이다. ‘우리 디아스포라는 결국 사라질 것인가?’라는 발레리 한 교수님의 질문을 통해 디아스포라 서사가 점점 옅어져서 소멸한다는 것은 어떤 뜻이며, 소멸하지 않아야 하면 왜이고, 보존해야 할 가치가 무엇인지를 검토한다. 디아스포라라는 개념은 문화, 언어, 가치 등의 공통점을 찾아내는 데 도움을 주며, 이런 공통점을 찾아내는 과정에서 디아스포라라는 개념이 사람들에게 중요한 가치를 제공한다. 또한 디아스포라라는 개념은 사라질 우려가 있는 민족이나 문화에 대한 존중의 의미를 제공한다. 이런 존중과 공감은 모든 사람들에게 공통적이며 중요한 가치이다.
전후석 감독은 한국인에서 재미 한인으로, 코리안 디아스포라로, 결국에는 세계시민으로 옮겨가는 자신의 정체성 형성 과정을 추적하며 디아스포라 개념을 탐색한다. 단일 민족, 순수혈통, 단군의 후손을 강조하는 한국은 문화적, 인종적, 언어적으로 다양성이 결여되어 있어 인종적 민감성이 부족하다. 정체성은 소수자의 담론이며, 주류의 일원인 다수자는 정체성을 고민할 확률이 낮은데 저자 역시 한국에서 살면서 비한국인을 만난 적도 ‘한국인’으로서의 정체성도 고민해본 적이 없었다고 고백한다. 그러나 저자가 미국 국적을 선택하고 이주하게 되면서 정당성을 의심받을 수 있는 환경이 조성되었고, 정체성에 대한 고민이 시작되었다.
역사적이거나 개인적 사건을 통해 디아스포라 서사가 형성된다. ‘재미 한인(Korean American)’이라는 정체성은 1992년 LA 폭동이라는 역사적 사건을 통해 한인 이민자들에게 새롭게 형성되었다. 두순자 사건이 로드니킹 사건에 뒤이어 인종 갈등으로 언론에 의해 부각 되고, 이로 인해 한인 타운과 그 상점이 72시간 동안 흑인들의 약탈과 폭력에 노출되었던 해당 사건은 미국에 살던 한인 이민자들에게 큰 충격을 주었으며, ‘재미 한인’이라는 정체성과 연합, 한인 정치인의 필요성을 깨닫게 했다. 또한 이러한 내용을 담은 저널리스트 김경언의 연설은 전후석 감독에게 ‘재미 한인’이라는 정체성을 형성하는 개인적인 사건으로 다가왔으며, 당시 감독이 느꼈던 감정을 영화 <초선>의 도입부를 통해서 느낄 수 있다.
이후 전후석 감독은 세계 각지에서 다양한 형태의 코리안 디아스포라를 만나게 된다. 연변 과학기술원에서 유학하면서 만난 조선족 친구는 자신들을 완전한 사과도, 완전한 배도 아닌 사과배로 표현했으며, 전후석 감독은 북향민과 독일 한인, 브라질 한인, 남아공 한인 등 역시 유사한 표현을 사용하여 이중, 삼중 정체성 안에서 자신을 규명하려는 시도를 하는 것을 포착했다. 이러한 경험을 통해 나의 정체성과 그들의 경제성을 비교하면서 ‘코리안 디아스포라’로서의 정체성을 형성하게 된다.
그러나 이러한 소수자로서의 정체성 탐방은 민족주의자 혹은 국수주의자로 끝나지 않았고, 휴머니즘과 세계시민의식으로 확장되었다. 전후석 감독은 1905년 멕시코 선인장 농장에서 조선인들이 가축보다 못한 취급을 받았다는 기록에 마음 아파하던 중 한국에서 이루어지는 예멘 이민자 반대 시위 소식을 접하면서 우리가 디아스포라라면 그들도 디아스포라라는 디아스포라의 정체성을 이해하려는 노력이 필요함을 인지했다. 최진석 교수는 정치적 역사적 지리적 개념이 아닌 철학적 존재론적 개념으로 디아스포라 개념을 확장하고, 그 경계성과 이중성, 혼합성, 다양성, 환대성에 주목하여 다수자에 위치해 있을 수 있을 때라도 소수자로서의 삶과 사유를 추구하는 철학적 디아스포라 개념을 추구한다. Hugh of Saint Victor의 “자신의 고향을 달콤하게 느끼는 사람은 미숙아이며, 좀 더 성숙한 사람은 모든 것을 고향으로 여기는 코스모폴리탄이고, 가장 성숙한 사람은 모든 곳을 타향으로 느끼는 의식적 이방인을 자처하는 사람들”이라는 서술을 인용하여, 디아스포라의 핵심을 고통과 이를 통한 혁신으로 설명했다.
이후 질의응답을 통해 디아스포라 정체성에 대한 논의를 확장했다. 영화 <헤로니모>와 <초선>에서 그리는 디아스포라 개념의 차이점에 대한 질문에 대해서, 전후석 감독은 전자의 경우 추상적인 디아스포라 개념의 존재에 초점을 맞춘 반면 후자는 더 현실적인 정치의 영역을 지적하며, 따라서 둘에 기반한 답이 다를 수 밖에 없다고 설명했다. 정치와 이념에서 디아스포라와 같은 개념이 온전히 보전되기 어려우며, 그 해결책으로서 의식적인 디아스포라와 의식적이지 않은 디아스포라 개념을 제시한다. 또 어떤 식으로 디아스포라가 평화 통일에 기여할 수 있느냐는 질문에는, 소위 코리안 드림을 위해 유입되는 사람들이나 북한과의 공존, 또 귀환한 사람들과 한국이 평화롭게 공존하는 데에 디아스포라적 사유가 기여할 수 있다고 대답했다. 다음 작품 계획에 대한 질문에 대해서는 북한에서 장애아를 치료하고 그 인간성을 복원하는 치료 프로그램을 운영하는 윤상혁 박사의 활동을 영상으로 담고자 하며, 가장 소외된 자들의 관계 회복을 통해 한반도의 회복을 미리 볼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를 밝혔다.
한 질문자는 디아스포라 집단 내에서도 차별과 갈등이 존재하는데, 서로 다른 담론을 어떻게 담아낼 것인지를 물으며 디아스포라 개념을 낭만화하는 것은 아니냐는 의혹을 제기했다. 이에 대해 전후석 감독은 본인이 한국인으로서의 정체성을 낭만화하고 있지 않으며, 다만 디아스포라 그룹간의 갈등은 나이든 세대와 그들의 편견을 중심으로 이루어지며, 더 어리고 더 현지화된 세대 사이에서는 이러한 경향이 적을 뿐 아니라 오히려 디아스포라라는 공통적 경험을 바탕으로 유대감이 형성되기도 한다고 설명했다. 재미 한인과 고려인, 조선족간의 연대감에 대한 질문에 대해서는 재중동포의 경우 한국도 중국도 아닌 고유의 집단을 형성하고 있으며, 연결고리를 찾기 어려운 것이 현실이라고 답했다. 특히 ‘왜 재미 한인들이 서로 연대하고 도와주려고 하는지’에 대해서 재중 동포가 질문했던 경험을 떠올리며, 중국과 달리 미국은 소수자로서의 탄압에 저항해야 하는 환경의 영향으로 형성된 차이일 것이라고 추측했다.
신범식 교수(서울대학교)는 디아스포라는 자기 정체성 진보의 여정이며, 특별한 경험이면서도 보편적 성격을 가지고 있다며 디아스포라 정체성의 의의를 강조했다. 또한 본 강연은 디아스포라적 사고가 세계시민 의식으로 확장되는 단계적 경험으로 구성되었는데, 중층적으로 쌓여가는 정체성의 측면에 초점을 맞출 필요성을 제기했다. 저자는 이러한 의견에 동의하며 인종적으로 정체성을 구축하는 것이 미국적 발상일 수 있음을 인식하고 있다고 발언했다. 다양한 정체성을 가진 사람들 사이에서 존재하는 충돌과 접점에 대한 이해, 그리고 각자의 정체성에 대한 이해와 존중을 강조하며 강연이 마무리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