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대학교 아시아연구소 중앙아시아센터와 HK+ 메가아시아연구사업단은 9월 25일 ‘한국 내 고려인 밀집거주지의 형성 – 안산, 광주 제천’이라는 제목으로 학술회의를 개최했다. 행사는 ‘1세션: 자연발생적인 밀집거주지’와 ‘2세션: 만들어진 밀집거주지’로 나뉘어 진행되었다.
1세션은 사회자 신범식 교수(서울대 아시아연구소 부소장)의 연구 사업 소개로 시작되었다. 신 교수는 국내 1세대부터 박사과정 학생들까지 세대가 어우러지는 공동연구라는 의의를 표명하며, 연구의 목적, 방향을 설명하면서 고려인 밀집거주지의 특성과 그 속의 상호작용의 특징, 차별화된 특성을 밝혀냄으로써 한국 사회의 일원으로써 고려인이 적응하는 과정, 그리고 그 내부의 동학에 대한 연구가 진행되어야 함을 강조했다.
고려인의 재외동포 제외가 헌법 불합치 판결을 받으며 자격 부여 확대가 시작되었고, 4세대 이후 동포도 재외 동포의 범주에 포함되었다. 조금씩 한국 사회가 포용적인 재외동포 정책을 펼치고 있다. 국내에 거소등록되어 있는 고려인은 8만 명, 실제로 활동하는 인구는 11만 2천 정도로 집계된다. 계속해서 증가하고 있으며, 앞으로도 5만 명 정도의 유입을 예측해볼 수도 있다.
이어서 신 교수는 연구 지역으로 광주, 안산, 제천이 채택된 이유를 설명했다. 안산은 외국인 노동자가 밀집한 지역으로서, 여기에서 조선족이 빠져나가며 고려인이 유입되는 과정에서 외국인 노동자의 거주지 형성 과정을 겪었다. 따라서 안산은 기존 노동 이주의 유산을 활용하며 자연스럽게 형성된 집단 거주지의 형태를 보인다. 이에 비해 광주와 제천은 만들어진 집거지로서, 교회, 일부 고려인 리더들의 연합으로 고려인 정착을 지원하는 적극적인 도움을 바탕으로 빠른 속도로 정착자가 늘어서 형성되었다는 점에서 차이점을 보인다.
마지막으로 신범식 교수는 올해 말 발간 예정인 책을 준비하는 단계에서 회의 참여자들의 의견을 청취하고 책의 완성도를 높이고자 하는 목표를 밝혔다. 현재는 고려인 집거지를 중심으로 생겨나는 문제에 대한 대책 마련의 필요성이 대두되면서 해당 연구, 그리고 향후 연구를 생각해야 하는 단계이다. 언어 문제, 자녀교육 문제, 사회 통합 문제를 주제로 다음 과제를 진행할 계획이 소개되며 발표가 마무리되었다.
이어서 1세션의 첫 번째 발표인 주송하 교수(국민대 정치외교학과)의 ‘시민 사회의 이민 정책에 대한 영향 – 안산 고려인 공동체 사례’가 소개되었다. 해당 연구는 우리나라의 이민 정책에서 시민 사회는 어떤 역할을 하고 있으며, 한국 이민 정책의 주요 추동 요인은 무엇인지 알아보고자 하였다. 기존 연구는 서구 국가의 이민 정책, 혹은 동아시아와 한국의 이민 정책에서 국가의 역할에 방점을 두었다. 주 교수는 시민사회와 이민 정책의 관계성을 알아보는 연구는 부족했던 현황을 지적하며, 안산 고려인 시민단체인 ‘너머’, ‘미르’의 이민 정책에서의 역할과 영향력을 분석했다.
‘너머’는 한글 야학으로 2011년 출발하여 이듬해 시민단체로 개원했으며, 2016년부터 안산시에서 운영했던 고려인 문화센터를 위탁 운영하고 있으며, 2014년에 고려인 지원을 위한 시민원탁회의, 간담회를 개최하고, 2017 고려인 특별법 개정을 관련하여 청와대 청원 및 국민 청원을 시도하는 등의 활동을 진행해왔다. 2024년 2월 안산시 고려인 동포를 비롯한 재외동포에 대한 조례가 제정되었는데, 주 교수는 이를 ‘너머’의 노력이 결실을 맺은 것으로 평가하였다. 또한, ‘너머’의 분소로 시작했던 ‘미르’가 하고 있는 한글 야학, 아이들 돌봄 사업, 러시아어 통번역 상담 등 고려인 지원 사업을 설명하며, ‘미르’ 역시 ‘너머’와 동일하게 정부의 이민 정책 관련 간담회에 참여하고 있다는 점을 밝혔다. 이로써 주 교수는 너머와 미르 같은 시민 사회 단체들이 직접적 지원을 넘어서 국가 기관들과 상호작용하며 이민정책에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는 잠정적 결론을 내렸다. 아직 완성되지 않은 연구를 보완할 계획에 대하여, 이민, 고려인 지원 문제도 인권 규범이라는 일반적 가치와 관련 있기에, 일반적 시민사회가 이민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알아볼 계획을 밝혔으며, 시민사회와 상호작용하는 국가 기관의 의견도 청취할 예정임을 언급했다.
이어서 황영삼 교수(한국외대 중앙아시아연구소)의 ‘안산 고려인 마을의 공동체적 특징’ 발표가 진행되었다. 황 교수는 중앙아시아 기준으로 100년이 넘는 고려인의 역사를 강조하며 발표를 시작했고, 제목을 설명하며 현재 고려인 마을의 거주자들의 특징을 어떻게 기술하고, 요약하고 기술할 수 있을지에 대한 연구임을 밝혔다. 발표는 거주지 현황, 경제적 기반, 교육 상황의 세 파트로 진행되었다.
안산의 고려인 인구는 가장 중심이 되는 단원구, 그리고 상록구, 고향마을 세 군데에 가장 많이 분포해 있다. 정부의 정책으로 인하여 F4 비자를 소지한 사람의 비율이 상당히 증가했으며, 단원구에 10,000명, 상록구에 5,000명 정도 분포하고 있다. 러시아 고려인들은 대부분 F4 비자를 받지만, 우즈베키스탄 출신 고려인은 여전히 H2 비율이 높은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거소등록은 F4 비자 보유자를 대상으로 하고 있기에, H2 비자 소지자들은 등록되지 않는다. 따라서 안산시 2024 상반기 고려인 거소등록자는 15,000명이었으나, 실제 체류중인 고려인을 모두 합하면 23,000명 정도로 추산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선부동 땟골 마을은 일찍이 고려인들이 많이 모여 살던 곳으로 유명했으며, 이곳에 고려인 러시아 이주 150주년 행사 이후 고려인문화센터가 안산시 차원에서 건립되었다. 마지막으로 사동의 고향 마을에는 한국으로 영구 귀국한 사할린 한인들이 주로 모여 있다. 이곳에 거주하는 고려인을 대상으로 하는 거주 등의 지원이 많기에 생활에는 문제가 없는 경우가 많기에 대륙 고려인들과 성격이 다르다는 점을 언급했다.
이어진 논의에서는 고려인들의 경제적 기반에 대한 현황이 제시되었다. 고려인들의 사회 활동, 공단 노동자로서의 위치와 자영업자 현황을 개괄하며, 안산시에 속하는 국가산업단지가 많기에 일자리가 풍부하고, 저임금 자리가 많은 상태고, 이는 많은 정착이 일어나는 이유 중 하나이다. 이 외에도 땟골 마을의 러시아 식당, 카페, 빵집, 마트 등에서 보이듯이 여러 고려인들이 자영업자로 활동하고 있다.
마지막으로 안산의 다문화 초중고교 현황이 제시되었으며, 선일초·중, 원곡초등학교, 고등학교 등에서 공통적으로 외국인 학생 수가 한국인 학생 수를 뛰어넘어 한국 부모들이 자녀를 해당 학교에 보내기 꺼려하는 현상이 발생하고 있음을 설명했다. 추가적으로, 공식 학교는 아니지만 민간이 운영하는 ‘노아네 러시아학원’을 소개하며, 졸업장을 받으면 러시아에서도 인정해준다는 것이 특징임을 밝혔다.
황 교수는 발표를 마무리하며 땟골마을이 고려인 공동체의 상징적 역할을 하며, 일자리가 풍부하기 때문에 안산으로 고려인이 들어올 수밖에 없다는 점을 재확인했다. 또한, 비자 문제의 해결 필요성이 존재하며 교육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이중언어 교육 등의 방안이 제시되어야 함을 지적함으로써 앞으로 행해질 연구의 방향성을 제시하였다.
최아영 박사(서울대 아시아연구소 중앙아시아센터)는 “이주는 한 사회에서 맺어왔던 관계를 해체하는 것을 의미한다”고 설명하며 ‘‘생겨난’ 커뮤니티 – 안산 고려인 밀집거주 지역의 공적 네트워크의 형성과 역할’ 연구에 대한 발표를 시작하였다. 새로운 거주국 사회에서 정착하기 위해서는 공적인 네트워크와 연계되어야 하며, 이를 통해 필요한 외부 자원을 연결받을 수 있다. 이러한 관계망이 넓어질수록 고려인들이 획득할 수 있는 사회적 자본도 증가할 수 있다. 이러한 사회적 자본 개념을 바탕으로, 안산에 밀집해 거주 중인 고려인들이 안산시에 형성된 공공기관, 사회단체, 종교단체들과 어떻게 연계되어 있는지를 살펴보는 것이 이번 연구의 목표임을 밝혔으며, 고려인들이 사회적 네트워크를 활용하는 방식에 대한 연구는 향후 보충될 예정임을 덧붙였다.
최근 안산에서는 ‘다문화’라는 용어 대신 ‘상호문화도시’라는 개념이 사용되기 시작했다. 안산의 가장 큰 특징 중 하나는 고려인이 처음부터 집중적으로 모여 시작한 것이 아니라, 다른 이주민 공동체 속에서 형성되었다는 점이다. 광주의 고려인 마을에서는 먼저 고려인 관련 조례가 만들어졌던 것에 반해, 안산은 인프라가 먼저 확충된 후 고려인들이 점진적으로 자리 잡아가는 모습을 보였다.
최 박사는 본인의 답사 경험과 현장 사진을 통해 안산 지역의 특징을 소개했으며, 그중 특히 많은 교회가 존재함을 언급했다. 이주민과 종교단체는 신앙심을 바탕으로 연대감, 환대, 심리적 지지와 지원을 제공하는 중요한 공간이며, 올드커머와 뉴커머가 만나 정보를 교환하고 상호 교류하는 장이 된다. 일부 교회는 예배 시설과 복지 시설을 겸하고 있으며, 시와 협력하여 공적 네트워크에 편입된 사례도 존재한다.
또한, 이주로 인해 아동과 청소년을 양육하는 데 필요한 사회적 자본이 감소하기에, 이들을 위한 공적인 기반과 네트워크가 필요함을 지적했다. 안산에서는 공교육을 받지 않는 청소년들이 한국의 문화와 언어를 이해할 수 있도록 지원하는 교육 프로그램이 운영되고 있다. 이와 관련하여 안산시 글로벌청소년센터와 이주배경청소년 지원 네트워크 추진단의 역할이 강조되었다.
민간 차원에서 고려인을 지원하는 단체로는 ‘너머’와 ‘미르’가 있으며, 이들은 고려인의 문화적 정체성을 보존하고 이를 선주민들에게 알리는 활동을 병행하고 있다. 또한, 고려인 독립운동기념비 건립 사업도 추진 중이다. 학교에서는 한국 사회로의 통합을 위한 교육을 제공하고 있다면, 민간단체는 고려인들이 자신들의 문화적 정체성을 유지하면서도 한국 사회에서 존재할 수 있는 자원을 획득할 수 있도록 돕고 있다.
안산의 고려인 밀집 거주지역은 자연발생적으로 형성되었으며, 이곳에는 코어가 부재한 상황이다. 민관협력이 중요한 이슈로 떠오르고 있으며, 특히 고려인 아동과 청소년의 유입과 사회 네트워크 문제가 시급한 과제로 인식되고 있다. 마지막으로, 최 박사는 내국인 주도의 네트워크도 중요하지만, 고려인들이 직접 조직한 자조 단체가 공적인 네트워크에 연결되어 그들의 이익을 대변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안산을 비롯한 국내 고려인 동포 커뮤니티에 놓인 과제라고 주장하며 발표를 마무리했다.
계속해서 발표된 내용에 대한 토론이 이어졌다. 첫 번째 토론자로 선정된 양승조 교수 (숭실대 사학과 )는 국내 최대 고려인 밀집 거주지인 안산 고려인 공동체의 무게에 비례하는 정도로 그동안 관심이 주어지지 않았으며, 광주 고려인 공동체에 초점이 맞춰져 있었으므로 안산에 집중한 1세션의 의의를 발견했다. 주송하 교수의 발표에 대하여, 연구 진행방향 파악을 위한 연구 방법론을 제시할 것을 제언했으며, 재외동포의 이주를 수용하고 있는 것을 노동력 수급을 위한 것으로만 설명한다면 내국인과 재외동포를 연계하는 역사/민족적 특수성을 사상하는 것일 수 있다는 점을 지적하였다. 황영삼 교수의 발표에 대해서는 발표자가 제시한 안산 공동체의 세 가지 현재적 특징을 분리해서 개별 연구로 나누어 심화 분석을 진행할 것을 제안했다. 마지막으로, 최아영 박사의 연구에서 ‘선주민’과 ‘내국인’ 중 하나의 용어로 통일하고, ‘기독교’ 대신 ‘개신교’를 사용함으로써 내용을 보다 명확하게 할 것을 제언했다. 또한, 종교-문화적 배경에 따른 차이뿐만 아니라 언어 문화적 배경에 따른 민족적 차이가 있는지 질문하였으며, 그리고 발표자가 제시한 고려인 집거지 교회에서 한국 개신교 예배를 따르고 있는 이유에 의문을 제기했다. 토론을 마무리하며 양 교수는 고려인 공동체에 대해 깊이 있게 공부하고 많은 사실을 알게 되었음에 감사를 표했다.
두 번째 토론자는 서대승 박사(서울대 비교문화연구소)로, 안산 지역의 외부와의 연계성이 중요함을 지적한 발표자들에 대하여 전통적인 방식의 연구를 어떻게 다른 방식으로 제시할 수 있을지 고민해야 한다는 입장을 밝혔다. 주송하 교수의 연구가 흥미로운 접근법을 취했다고 평가하며, 정당 등 더욱 다양한 조직들을 연구해볼 것을 제언하였고, 시민 사회의 이민 정책에 대한 ‘영향’이 구체적으로 초반에 명시될 필요성을 언급했다. 황영삼 교수의 논문 제목 ‘공동체적 특징’에 대하여, 이미 다뤄진 내용 외에도 인구, 최근의 변화, 그리고 이에 대한 해결책 등에도 주목하면 더 많은 정보를 담을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고 밝혔다. 또한, 안산 고려인 마을을 직접 방문했던 경험을 기반으로 자영업의 양상이 논문에서 언급된 것보다 다양함을 설명했다. 마지막으로 최아영 박사의 발표에서 사용된 사회적 자본의 개념에 대하여, 결속형 자본과 교량형 자본이 정확히 어떤 식의 네트워크를 이야기하는 것인지를 분명하게 기술할 것을 제안했다.
질의응답 시간에는 송금영 전탄자니아 대사(아시아연구소 방문학자)가 카자흐스탄에서 근무할 당시 접했던 카자흐스탄 정부의 소수 민족 전통 문화 보존 정책을 설명했고, 플랫폼을 제공하는 것이 네트워크 및 모임의 활성화에 일조할 수 있다는 의견을 공유했다. 또한 공공외교 차원의 질문을 던지며, 고려인은 한국 국적이 아닌데 중앙아시아 국가들 (카자흐스탄 외 우크베키스탄, 키르기즈스탄 등)의 주한대사관들은 이런 문제에 관심이 있는지 알아볼 필요성을 제시했다. 마지막으로, 계획 중인 도서가 발간되면 영어, 러시아어로 번역하여 세계적으로 중요한 외국 대학이나 관련 국제기구와도 공유되었으면 하는 바람을 전달했다.
이후 임미은(안산 선일중학교 교사)이 소개되었고, 신범식 교수는 인터뷰에 응해서 연구에 귀중한 자료를 제공해준 점에 대해 감사를 표했다.
이어서 박종소 교수(서울대 노어노문학과)는 이민과 함께 여러 사회 문제가 불거졌던 외국 사례를 언급하며, 장기적으로는 우리 사회에서도 이런 점에 대비해야 할 필요성이 발생할 수 있음을 지적했다. 발표에서 중요시되었던 고려인의 자조적인 조직, 그리고 내적인 것을 강조하는 고려인의 조직이 부각될수록 이런 사회 문제를 야기할 가능성이 존재하지는 않는지 알아보고, 이 점을 주의하는 방향으로 연구가 진행될 필요성을 강조하였다.
1세션은 발표자들이 토론 내용에 대해 답변하는 것으로 마무리되었다. 주송하 교수는 향후 연구를 보완할 때 고려인의 민족적인 특수성, 그리고 시민사회 관련하여 다양한 조직들을 고려하겠다고 답변했다. 황영삼 교수는 자영업의 다양한 형태에 대해 제시되었던 의견에 대한 답변으로, 땟골 마을의 동내 대표 카페인 ‘우골록’의 존속 문제를 지켜보는 중이라고 설명하였다. 최아영 박사는 토론자들이 질문했던 선주민-내국인 용어의 차이를 설명하고, 추가적인 인터뷰와 조사를 통하여 공교육 기관의 역할, 고려인 교회의 한국식 운영 형태 등의 세부적인 내용을 보충할 계획을 밝혔다.
이어서 2세션은 고가영 박사(아시아연구소)의 ‘설립자가 있는 공동체 – 광주 <고려인마을>의 형성과 현황’ 발표로 시작되었다. 광주 <고려인마을>은 자연발생적으로 형성되거나 지방자치단체의 주도하에 형성된 다른 고려인 밀집거주지와 달리 민간 NGO인 사단법인 <고려인마을>에 의해 운영되고 있다. 이곳은 주목받는 이주민 공동체로서 이미 많은 연구의 대상이 되었으나, 공동체 형성과정과 공동체의 특성을 단계별로 구분하여 연구한 바는 없었다. 해당 연구는 구소련 지역 거주 한인 디아스포라들의 유출 배경이 되는 이들의 이주사와 한국으로의 유입현황을 광주의 고려사람 밀집거주지를 중심으로 살펴보고 그 형성과 발전을 단계별로 구분하여 살펴보고자 하였다.
고 박사는 고려사람들의 역사적 맥락을 강조하며, 이들의 삶을 네 단계로 구분했다. 첫째, 월경민의 삶(1863/1864~1937년)으로 조선인들이 정치적, 경제적 원인으로 국경을 넘어 연해주에 정착했던 시기다. 둘째, 유향민의 삶(1937~1956년)으로 ‘일본의 스파이’라는 구실로 연해주에서 중앙아시아로 민족 전체가 강제이주를 당한 시기다. 셋째, 소비에트 국민의 삶(1956~1991년)으로 스탈린 사후 소련 사회의 해빙 분위기 속에서 특별 거주 제한조치가 해제된 시기다. 넷째, 독립국가의 국민의 삶(1992년~현재)으로 소연방 해체 이후 각 국민국가의 소수민족으로 살아가게 된 시기다.
소연방 해체 후 중앙아시아 국가들의 경제적 어려움과 자민족 중심주의, 그리고 우크라이나 –러시아 전쟁이 고려인들의 한국 유입 요인이 되었는데 그중에서도 주요 계기는 재외동포법의 재개정이었다. 1998년 초기 법안은 고려인과 조선인을 제외했으나, 2004년 개정으로 이들도 재외동포 체류자격 비자(F-4)를 취득할 수 있게 되었다. 2007년에는 방문취업(H-2) 사증 발급이 시작되어 고려인의 유입이 더욱 확대되었다.
광주 <고려인마을>의 발전 단계는 네 단계로 구분된다. 첫째, 형성 단계(2002~2013)에서는 설립자 선주민 이천영 대표와 고려인 신조야 공동대표의 역할이 중요했다. 둘째, 제도적 기반 마련 단계(2013~2017)에서는 ‘고려인주민지원조례’ 제정과 비영리법인 <고려인마을> 설립 허가 취득 등이 이루어졌다. 셋째, 강제이주 80주년과 선주민과의 동행 단계(2017~2022)에서는 고려인 ‘동행위원회’가 발족되어 의료와 법률 자문 분야에서 구체적 지원이 이루어졌다. 마지막 단계인, 우크라이나 난민 유입과 확장 단계(2022~현재)에서는 우크라이나-러시아 전쟁으로 인한 난민 고려인들의 유입으로 <고려인마을>이 다시 한번 확장되는 계기가 되었다.
현재 <고려인마을>은 고려인마을종합지원센터, 고려인동행위원회, 고려인마을 어린이집, 월곡고려인문화관(역사유물전시관), 고려인 미디어센터 등 다양한 운영기관을 갖추고 있다. 그러나 일자리 부족, 좁은 거주 공간, 국적 취득의 어려움, 언어 장벽, 부정적 인식 등 경제적, 제도적 한계도 존재한다. 따라서 고려인들이 안정적인 미래를 계획할 수 있도록 정부 차원의 정책적, 제도적 개선이 필요하다는 제언으로 발표는 마무리되었다.
2세션 두 번째 발표를 맡은 이준석(서울대학교 정치외교학부 박사과정생)은 ‘“모집된 공동체”의 동학 – 제천 고려인 공동체의 형성, 특징, 그리고 그 이론적 함의’를 소개했다. 2023년부터 시작된 충청북도 제천시의 고려인 이주 및 정착 지원사업은 고려인을 대상으로 하는 첫 지방자치단체 차원의 모집 정책이라는 점에서 주목받고 있다. 제천시는 1980년대 이후 시멘트와 석탄 산업의 쇠퇴로 인한 장기적인 경제활동인구 유출 및 지역경제 침체를 겪으며 이에 대한 대응책으로 2023년 김창규 제천시장의 추진 하에 ‘고려인 이주 및 정착 지원사업’을 본격적으로 시작했다. 이준석은 이를 지방자치단체(지방정부)의 적극적인 후원에 따른 이민자 공동체(커뮤니티) 형성의 한 사례로 관찰했다. 고려인 공동체 형성의 새로운 형성인 만큼 단순 언론보도를 제외한 학술 또는 정책 연구적 접근이 매우 드물어 본 연구는 제천시의 고려인 ‘모집’과 그로 인한 고려인 공동체 형성에 대한 시론적(introductory)이고 기술적(descriptive)인 연구로서 가치를 지닌다고 할 수 있다.
이준석은 제천시의 고려인 이주 및 정착 지원사업의 현황과 추진 배경을 설명한 후 비수도권 기초자치단체(제천시)의 적극적인 모집 정책을 통해 탄생한 제천 고려인 공동체가 다른 지역과 비교했을 때 몇 가지 특징적인 패턴을 보인다고 주장했다. 지방자치단체 주도형 제천 고려인 공동체는 그 절대 인구 규모는 물론 해당 지방자체단체 인구 대비 규모에서도 안산과 광주를 비롯한 기존의 ‘성공적’인 공동체에 미치지 못하고 있다. 규모 면에서 제천의 고려인 공동체는 상대적으로 작고 밀집도가 낮아 엄밀한 의미의 집단 거주지로 보기 어렵다는 것이다. 또한 결속력 측면에서도 안산이나 광주에 비해 낮은 편이라고 평가했다. 제천의 고려인들은 지방정부의 막대한 지원에 힘입은 이주로 공동체 내부 연계 및 결속력이 낮은 상태로 남아있다. 안산과 광주의 경우 자연발생적으로 형성된 공동체로 경제적 동기와 문화적 정체성이 뚜렷한 반면, 제천은 지자체 주도로 형성되어 고려인들 간 연계가 아직 관찰되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또한 안산과 광주가 자족적 공동체로 러시아어 사용 집단 및 지역 단체들과 활발히 교류하는 것과 달리, 제천은 지자체 의존도가 높고 고려인들 간 네트워크나 지역사회와의 교류가 제한적이라고 분석했다. 따라서 제천의 사례는 특정 구심점에 의존하는 고립적 공동체의 높지 않은 지역사회 연계를 반영한다는 점에서 광주의 사례와 유사하지만, 공동체의 결집력이나 집단 정체성의 발전에 있어 매우 낮은 수준을 유지한다는 차이점이 있다.
제천 고려인 공동체의 모집사례는 지방정부에 의한 외국인(재외동포)의 전략적 수용이라는 측면에서 이론 정립적(theory building) 함의를 지닌다. 한편 제천의 고려인 공동체와 같이 지방정부의 적극적인 이민자 모집 및 수용은 기존 연구의 한계를 극복할 수 있는 새로운 영역이 될 수 있지만, 그 경험적 사례가 부족하다는 단점이 있다. 이에 이준석은 한국과 유사한 중앙집권 국가로 지속적인 인구감소를 겪고 있는 일본 사례에 대한 관찰이 제천 사례의 이론적 접근에 도움이 될 것이라는 의견을 끝으로 발표를 마쳤다.
이어서 2세션의 마지막 순서로 정민기(서울대학교 정치외교학부 박사과정생)의 ‘제천시 고려인 커뮤니티의 다양한 네트워크’ 발표가 진행됐다. 정민기는 제천 고려인 커뮤니티에 형성되어 있는 다양한 네트워크를 관(官)의 차원과 민(民)의 차원으로 나누어서 살펴보는 것을 목표로 하였다.
이주민의 증가는 다양한 네트워크의 형성과 발전을 수반한다. 그리고 그러한 사회 네트워크는 이주민들의 정착 및 재정착을 목표로 하는 지역에서 이들의 사회적 관계 패턴에 영향을 준다는 점에서 중요한 역할을 한다. 제천시의 고려인 이주 지원사업은 안산이나 광주 등의 자생적이고 자발적인 민(民) 중심의 이주와는 달리 관(官)이 중심이 되는 이주 사업이다. 따라서 제천시의 고려인 커뮤니티의 네트워크는 이주민 중심의 관과 민의 네트워크가 공존한다고 할 수 있다. 정민기는 고려인 커뮤니티의 네트워크를 관과 민의 차원으로 나누고 이를 구성하는 층위를 시내-시외-국외로 나누어 살펴보았다.
먼저 관 차원에서 제천시는 시내의 다양한 기관 및 단체와의 협력을 통해 이주민들이 지역사회에 원활히 적응할 수 있도록 다방면의 지원을 제공하고 있다. 재외동포지원센터를 통해 주거, 취업, 의료, 교육 등을 지원하는 프로그램을 운영하며, 이를 위해 지역의 대원대학교, 제천상공회의소 등과 긴밀한 네트워크를 구축하고 있다. 시외 및 국외 네트워크를 통해서도 고려인 이주민들과 지속적으로 소통하며, 그들의 안정적인 정착을 돕고 있다. 특히 대한고려인협회는 제천시와 공동으로 홍보 및 정책 자문을 제공하고, 국내외 고려인 사회와의 교류를 통해 이주민들이 한국 사회에 자연스럽게 적응할 수 있도록 돕고 있다. 우즈베키스탄, 카자흐스탄, 키르기스스탄의 고려인협회와의 협력 역시 제천시가 추진하는 이주 정책을 현지에 홍보하고, 실질적인 이주 유치활동을 지원하는 데 기여하고 있다.
민 차원에서의 네트워크 형성도 제천시 고려인 사회의 중요한 요소다. 이주민들은 주로 SNS나 왓츠앱, 인스타그램 등을 통해 국내외의 다른 고려인들과 소통하며 정보를 교환하고 있다. 이러한 비공식적인 네트워크는 이주민들이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고, 이주 과정에서 겪는 어려움을 극복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 텔레그램 채널이나 유튜브를 통해 제천으로 이주한 고려인들은 자신들의 경험을 공유하며, 이주를 희망하는 사람에게 실질적인 도움과 가이드를 제공하고 있다. 민 차원에서의 국외 네트워크는 주로 고려인 이주민들이 국외에 있는 가족, 친지, 지인들과의 연결을 유지하는 방식으로 이루어진다. 왓츠앱, 인스타그램, 영상통화 등 디지털 소통 수단을 활용해 국외 고려인들과 교류하며 정보를 공유하고 있다. 아울러 국외에서 발간되는 신문이나 온라인 매체를 통해서도 정보가 전달되고 이주를 고려하는 고려인들에게 실질적 도움이 제공된다.
정민기는 발표를 마무리하며 이주민의 정착을 돕기 위한 정책이 단순히 이주민 유치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이주 후의 안정적 정착을 위한 종합적 지원체계를 마련하는 데 중점을 두어야 함을 시사한다며 제천시의 사례가 좋은 선례가 될 수 있다고 설명했다. 또한 이주 정책의 성공을 위해서는 관 주도의 정책적 지원뿐만 아니라 민간차원에서의 네트워크 형성도 필수적이며 국제적인 네트워크 역시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이후 토론 패널의 질문과 이에 대한 간략한 답변이 이어졌다. 먼저 토론 패널로 참여한 권은혜(한성대)는 고가영, 이준석, 정민기 세 명의 발표자에게 발표에 대한 논평과 질문을 제시했다. 앞선 고가영의 발표에 대하여, 코리아 고려인 디아스포라의 역사와 고려인 마을의 역사가 결부된 연구가 역사학자의 시각에서 인물 중심의 시각으로 논의된다는 점에서 인상깊었다고 말했으며, 유대인 디아스포라와의 비교 연구도 가능할 것이라는 의견을 제시했다. 질문으로는 광주로의 문 빅토르 화가의 이주와 미술관 조성에서 관의 지원이 있었는지를 물었다. 이준석의 발표에 대해서는 안산, 광주 고려인 마을과의 비교 연구가 가진 실험성이 매력적이라고 평했으며, 특히 2018년 이후 일본의 정책과의 비교연구에 대하여 1890년대 이후부터 라틴아메리칸닛케이진(NAN)에 대한 정책이 존재했고, 2008년 금융위기 이후 실업자인 NAN을 돌려보내기도 하는 등 흥미로운 현상도 있어 더 장기간을 대상으로 하면 좋은 비교 사례가 될 것이라고 제안했다. 또 제천시식의 주거 정책에 대하여, 고려인의 시니컬한 인터뷰 내용과 미국이 실시했던 유사한 정책을 들어 한국인 선주민과 고려인 이주민의 관계는 어떠한지, 또 제천시가 분산 거주 정책을 이상적으로 보는 것인지 등에 대해 질문했다. 마지막으로 정민기의 발표에 대하여는 소셜 네트워크 이론의 구체적인 적용에 대해서 제안했고, 이주민 고려인의 민 주도 네트워크로 언급된 사례가 SNS를 활용하는 수준에서 그치는 것인지, 혹은 정보를 얻는 것 이상의 네트워크인지를 질문했다.
토론 패널 배은경(한국외대)은 먼저 세 발표에 대하여 관련 기록이 부족한 만큼 행정 기록 등에 대한 수집과 현재 연구에서 활용하는 자료를 포함하는 전반적인 아카이빙이 필요할 것이라고 제안했으며, 전반적으로 고려인의 입장에서 어떤 도움이 필요할 지에 대한 고민이 필요함을 강조했다. 이어서 각 발표에 대한 질문을 제기했다. 고가영의 발표에 대하여는 고려인 이주에 따라서 변화하는 고려인의 정체성이 어떤 영향이 미치는지를 질문했고, 구체적으로는 연구 대상이었던 안산 거주의 선호가 높은 까닭이 이러한 정체성의 문제와 연관되어 있을 것이라고 추측했다. 배은경은 이준석의 발표에 대하여는 지금 하고 있는 생활 지원이 고려인들의 한국행에 적합하지 않을 수 있다는 의문을 제기하며, 제천시가 지역 특화형 비자 등 유의미한 혜택 제공을 하고 있는데도 적극적으로 이어지지 않는 까닭은 무엇일지에 대해서 질문했다. 마지막으로 정민기의 발표에 대하여는 관 중심 네트워크는 인구소멸에 대응하기 위한 것인데, 고려인의 이주 목적은 그렇지 않을 것이라고 추측하며 이러한 목적의 차이가 두 네트워크 간의 차이로 이어지지는 않는지 질문했다. 이후 추가적인 질문과 의견이 이어졌다. 양승조(숭실대)는 제천 모델의 지속 가능성을 질문했고, 정민기 발표자가 제기한 민 중심의 SNS 네트워크를 굳이 모여 살지 않는 로컬리즘 현상과 연관지어 설명할 수 있을 것이라고 제안했다. 황영삼(한국외대)은 관 중심 모델의 효과를 평가하는 지표 중 하나로 고려인이 제천에 들어가기 전과 후의 만족도를 비교해볼 것을 제안했다.
고가영은 미술관 설립의 경우 광주시 차원의 지원은 없었고 다만 향후 지원을 바라고 시작하는 것이라고 답했다. 또한 아카이빙의 필요성에 동의하며, 고려인의 정체성 역시 변화하고 있음을 느낄 수 있었다고 답변했다. 다른 고려인들이 모두 중앙아시아로의 이주를 환대의 경험으로 설명하는 반면 광주 고려인들은 차별의 경험으로 설명하고 있음을 들어 정착지와 정체성 사이의 관계가 흥미로운 지점이 있음을 시사했다. 이준석은 분산 거주와 지속 가능성 두 가지로 나누어 답변했다. 우선 분산 거주와 관련하여, 제천시가 집단 거주 지역을 문제로 인식하는 것은 분명하며, 선주민들이 섞여 사는 것에 과반수는 우호적이라는 의견이라는 답변을 인용했다. 또한 지속 가능성에 대해 의도적으로 말을 아낀 까닭은 막대한 예산이 투입되고 있기 때문이며, 다만 숫자 늘리기에 치중하기보다는 지원 없이도 다른 고려인들이 제찬으로 유입이 되어야 이 공동체가 살아남을 수 있을 것이라고 답했다. 마지막으로 정민기는 제천시장의 리더십이라는 변수와, 부서 순환으로 초기 구상자들의 업무가 변화하는 특성을 들어 다음 선거의 당선 여부가 정책의 지속 가능성에 중요 변수가 될 것이라고 답했다. 또한 민 중심 SNS 네트워크와 관련하여, 현재의 네트워크는 게시물 내에서 질의응답이 진행되고, 일정 시간 연락처를 게시했다가 삭제하는 등 한정된 수준으로 이루어지고 있고, 형성에 시간이 얼마 되지 않은 만큼 시간의 경과에 따른 추적이 필요할 것이라고 답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