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대학교 아시아연구소 중앙아시아센터 이주난민연구단은 4월 24일 방글라데시 출신 운동가로 <치타공 언덕 바르기, 한국은 날다> 저자인 로넬 이나니를 초빙해 북토크를 개최하였다. 저자 개인의 경험을 중심으로 한국 내 체류 중인 방글라데시 출신 이주민, 특히 소수 민족 출신 이주민과 난민의 이야기를 직접 들으며 이주민과 한국인 사이의 상호 이해 증진을 도모하고 유라시아 지역의 이주 동역학의 다양성을 조명하였다.
북토크는 저자에 대한 사회자 최아영 박사(서울대학교)의 소개로 시작되었다. 저자 이나니(로네 차크마 나니)는 1994년 처음으로 한국 땅을 밟은 후 2004년에 난민으로 인정받았고, 2011년에는 한국 국적을 취득했다. 재한줌머인연대(JPNK)를 창립했으며, 줌머 민족, 소수 선주민, 이주민 인권운동을 전개하고, 김포에서 난민과 이주민을 위한 상담과 통역, 난민 인권 강사로 활동하고 있다.
시인 타고르의 노래 ‘두려움을 떨쳐버려라’로 본격적인 발표를 시작한 이나니는 1974년에서 1997년까지 한국 땅을 밟기 전까지의 경험에 대해 설명했다. 방글라데시 치타공 산악지역(CHT)에서 태어난 그는 게릴라 투쟁에 깊이 관여한 교사의 영향을 받아 힌두식 이름인 나니 구팔 대신 로넬이라는 새로운 이름을 갖게 되었으며, 샨티바히니 평화군에 들어가게 되었다. 저자는 당시 줌머인 65만명 가량이 함께 투쟁의 분위기를 공유했으며, 게릴라는 소수자들의 투쟁의 최후 수단이라고 설명했다. 당시 지역 내의 갈등을 해결하기 위한 정당이 존재했으며, 이 정당이 샨티바히니 평화군을 운영했다. 그는 평화군으로서 각 지역의 뱅갈족 사업자들과 국가 사업자들을 대상으로 모금하는 역할을 맡았으며, 모금 도중 군인으로부터 체포되었고 3년간 투옥되어 재판을 받았으며 무죄로 풀려났다. 이후 한국에 입국하여 2002년에 난민 신청, 2년 후 난민으로 인정되었으며 2009년에 귀화를 신청하고 2011년 국적을 취득했다.
발표자는 방글라데시를 세계에서 가장 긴 해변 콕스 바자르와, 뱅갈족 시인인 타고르, 빈곤퇴치 운동가 무함마드 유누스를 가진 국가로 자부심 있게 소개했으며, 소수자에 대한 압력을 중심으로 방글라데시의 역사를 설명했다. 뱅갈어를 사용하는 동파키스탄(현재의 방글라데시)에게 서파키스탄의 우르두어 사용하기를 강요하자, 뱅갈어의 인정을 요구하는 시위가 발생했으며, 더 나아가 독립 운동의 계기가 되어 9개월 만인 1971년 3월 26일 독립을 선언하게 되었다. 이러한 방글라데시의 언어 투쟁은 국제 모국어의 날 지정으로 이어졌다. 또한, 무슬림과 힌두의 갈등으로 파키스탄이 분리된 바 있는데, 방글라데시 내에서도 소수 종교인 힌두인에 대한 인권 침해와 차별이 만연하여, 종교가 무슬림인지 힌두인지를 확인하기 위해 군인이 일반인의 할례 여부를 확인할 정도였고, 이로 인해 무슬림이 증가하고 힌두인은 감소하는 추세가 존재한다고 설명했다.
이후 발표자는 Chittagong Hill Tracts를 소개했다. 치타공 산악지대에는 방글라데시 주류 뱅골족과 다른 인종, 종교, 언어, 문화를 가진 소수선주민(Indigenous People)들이 살고 있다. 카크, 차크마, 마루마, 미즈족 등으로 이루어진 줌머인(Jumma)은 자신들의 문화와 정치적 자치권을 보장받지 못한다는 이유로 정부와 갈등을 빚었다. 1997년에 평화협상(CHT ACCORD)을 맺었고, 이후 지역 의회법으로 개정되었으나 부족들이 아무런 힘이 없고, 중앙정부 군인들과 정부가 여전히 같은 위치를 가졌다는 점에서 유의미한 합의라고 보기 어려웠다. 소수선주민 중 하나인 차크마족은 자연재해로 인해 난민이 된 후에도 인도 내에서 어려움과 차별을 겪고 있다.
마지막으로는 재한 줌머인 연대와 그 활동에 대해서 소개했다. 재한 줌머인 연대는 현재 인구 182명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난민, 노동자 등으로 구성되어 있다. 재한 줌머인 연대는 전통 축제인 보이사비 행사를 통해 지역과 소통하고 있다. 방글라데시 치타콩 산악지대에 거주하는 세 개 소수민족인 챠크마, 마르마, 트리푸라의 Boisuk의 Boi, Sangrai의 Sa, Bizu의 Bi를 따와 이름 붙여진 줌머인의 가장 큰 축제 보이사비가, 이제는 김포 주민들과의 화합의 장이 되어가고 있다.
이후 질의응답이 이어졌다. 책에서 “이중의 정서적 통합을 위한 고통의 터널을 지나야 한다”고 묘사된 줌머인 2세대의 정체성 문제에 대해 최아영 박사(서울대학교)는 줌머인 1세대들이 이러한 어려움을 어떻게 돕고 있는지를 질문했다. 저자는 이에 대해서 분명히 줌머인 2세대들이 겪고 있는 정체성 혼란이 있으나, 현재는 지역사회(김포)와 학교가 외국인 2세 자녀에 대한 관심을 기울이고 있고 이것이 긍정적인 효과를 가진다고 답변했다. 학교에 이중언어 교사가 상주하며 민간 기관도 협조하고 있는 만큼, 한국어로 소통하며 한국인과의 다름을 드러내지 않으려고 했던 이전의 2세대들과 달리 최근의 2세대 자녀들은 고유의 언어와 문화에 대해서 더욱 자신 있는 모습을 보인다고 저자는 전했다.
또한 자제분이 차크마어를 사용할 수 있느냐는 황의현 박사(서울대학교)의 질문에는 이전과 달리 자녀가 차크마어에 관심을 가지고 사용하려고 한다고 밝혔다. 또 2015년 자신의 개명을 언급하며 이름을 한국식으로 바꾸지 않아도 됐을 것이라고 언급하기도 했다. 부인과 차크마어로 대화하느냐는 바딤 슬랩첸코 박사(서울대학교)의 질문에는 그렇다고 답하며, 차크마어를 사용하지 못하는 다른 소수민족, 또 뱅갈어 사용하는 다른 사람과는 뱅갈 언어로 이야기한다고 덧붙였다. 마지막으로 재한 줌머인 연대에도 여성 회원이 있느냐는 질문에 대해서는, 최근에 여성 회원의 참여가 확대되고 있다고 답변했다. 재한 줌머인 연대는 정치적 단체로 출범해서 사회적, 문화적 영역으로 활동 반경을 넓히고 있다. 정치적 단체로 그 성격이 제한되어 있었을 때에는 여성들의 참여가 적었으나, 최근에는 사회 문화와 자녀 교육에 대한 관심을 바탕으로 여성 중심의 문화 단체인 한국 줌머 여성단이 만들어졌다는 것이 그의 설명이다.
이나니는 북토크에서 자신의 경험을 바탕으로 소수자들이 처한 어려움과 이를 타개하려는 노력, 방글라데시의 역사와 이주자들의 경험에 대한 풍부한 인사이트를 제공했다. 줌머인들과 한국 사회의 화합과 연대를 위한 이나니의 노력이 결실을 맺기를 기원하면서 “혼자 꾸는 꿈은 꿈으로 끝나지만, 같이 꾸는 꿈은 현실이 된다”는 책 속의 시를 인용한 사회자 최아영의 폐회사와 함께 행사가 마무리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