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랩첸코 바딤(아시아연구소)
1992년 10월 13일, 러시아는 난민 지위에 관한 협약에 가입했다. 이는 자국을 떠나야만 하는 상황에 처한 외국인을 받아들일 국제적 의무를 러시아가 지고 있음을 의미한다. 하지만 우크라이나 전쟁이 야기한 심각한 난민 위기에도 불구하고 러시아에서 난민 인정률은 상당히 낮은 것으로 밝혀졌다. 최근 러시아 내무부가 발표한 통계자료에 의하면, 2023년 12월 31일 기준으로 난민 지위를 인정받은 사람은 244명인데, 이는 2022년에 277명이었던 것과 비교할 때, 23명이 감소했음을 알 수 있다. 2023년 수치는 1997년 이후 역대 최저치이다.
반면 러시아는 난민 지위와 동시에 1년간 부여되는 ‘임시 망명’ 지위(временное убежище)에 관한 제도를 운영하고 있다. 러시아 내무부에 따르면 2023년에 ‘임시 망명’ 지위는 6,828번 승인되었으며, 이는 2022년보다 15배 감소한 수치이다. 2022년에 ‘임시 망명’ 지위가 약 90,100건이 허가되었던 것과 달리, 2023년 12월 31일 기준으로 불과 17,308명이 이 지위를 획득했다. 2023년 말 ‘임시 망명’ 지위를 받은 사람들 대부분은 우크라이나 출신(14,527명)이었다. 지난 10년 동안 ‘임시 망명’ 지위를 받은 사람이 가장 적었던 해는 2021년(1,081명)이었다.
‘임시 망명‘ 지위는 ‘난민‘ 지위와 비교할 때, 권리가 적고 최대 체류 기간도 1년으로 한정되어 있고, 갱신 절차는 이 지위를 다시 신청하는 것과 유사하다. 이로 인해 ‘임시 망명’ 인정을 받은 사람들이 이 지위를 상실하는 경우가 종종 있다.
그런데 흥미로운 것은 2023년 러시아연방에 수백만 명의 우크라이나 난민이 입국한 사실을 러시아 언론이 보도한 점이다. 구체적으로는 2023년 3월 27일 타스통신 보도에 따르면, 2022년 2월 18일 이후 550만 명의 우크라이나 난민이 러시아연방에 입국했으며, 그중 40만 명이 2023년 1분기에 입국했다. 이 수치는 과연 러시아에 체류하는 우크라이나 출신 난민들의 상황을 잘 반영하고 있는지 의문이 들게 한다. 만약에 이렇게 수많은 난민이 러시아에 입국했다면, 이들에게 어떤 지위를 부여했는지 궁금증을 자아낸다. 이러한 점에서 타스통신이 제기한 수치의 신빙성이 떨어지거나, 만약 이 보도가 사실이라면 러시아 정부가 우크라이나 출신 난민들에게 시민권을 대대적으로 부여했다고 볼 수 있다. 이러한 점을 고려한다면, 우크라이나 출신 난민들 거의 모두는 러시아에 귀화했다고 추정해 볼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