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5월 23일 서울대 인문대학 7동 308호 국제회의실에서 제로 공동학서울대 러시아연구소와 아시아연구소가 “아시아 속의 러시아, 북아시아를 찾아서”라는 주술회의를 개최했다. 1세션에서는 북아시아에 속하는 러시아 영토에 대한 역사적, 민속학적 담론이, 2세션에서는 국제관계 및 지경학적 측면에서 바라본 북아시아의 중요성이 논의되었다.
노어노문학과 박종소 교수가 사회를 맡은 첫 세션은 19세기의 시베리아에 대한 다양한 담론들을 분석하는 역사학부 서양사전공 한정숙 명예교수의 발표로 시작되었다. 발표자는 발표에서 다루게 될 정확한 시간적 배경은 19세기 후반부터 20세기의 혁명 전까지라는 점을 지적하며 본격적으로 발표를 시작했다. 동북아시아라는 넓은 지역을 포괄하는 시베리아는 러시아의 단순한 공간적 발판 이상의 상징적 의의를 지닌다. 그중에서도 다양한 사회적 변화들이 격동하던 19세기, 러시아의 아시아 시베리아에 대해 이루어진 여러 층위의 담론들을 발표자는 크게 세 부분으로 나누어 소개했다.
발표의 첫 번째 부분은 니콜라이 야드린쩨프의 저서인 『식민지로서의 시베리아』와 『시베리아의 토착민들』에 기초했다. 이 책에서 계몽적 민족주의 지식인 야드린쩨프는 시베리아 사람들에 대한 연민과 제국 정부의 정책에 대한 비판을 수행한 내용을 언급한다. 야드린체프는 지역주의자의 시각으로 접근하며, 이전까지 식민지로서만 치부되어왔던 시베리아 지역의 토착민 문제와 그들의 자유권을 논했다.
발표자가 분석하는 두 번째 문헌은 니콜라이 황태자의 동방 여행 전 기간에 걸쳐 수행하였던 에스뻬르 우흐똠스키 공작의 여행기 『황태자 전하의 동방여행』 세 권 가운데 시베리아 여행에 관한 서술 부분이다. 그렇기에 발표의 두 번째 부분을 통해서는 황제의 최상층부 황실 인사들과 그 측근의 시각에서 바라본 시베리아는 어떠했는지, 당시 러시아 사회 상류층의 시베리아에 대한 시각을 접할 수 있다.
마지막 담론은 제국 관리의 입장에서 바이칼 호수 동쪽 시베리아 지역의 인종 구성 상황에 대해 발하는 일리야 레비또프의 황화론적 경고와 관련된다. 지리적 경계는 당시 일종의 경제특구로 여겨지던 바이칼 동쪽 지역(zabajkaljie)으로, 백인 인구가 희박한 러시아의 이 동쪽 지역에 시베리아횡단철도의 발달로 큰 유입을 보인 중국인 노동자들에 대해 레비또프는 경제·사회적 정책을 제안한다. 수적인 우세함으로 황러시아 지역(zjoltaja russija)을 구성하는 이 중국인들을 관리하기 위해, 관리 출신 레비또프는 시베리아에 자주 방문할 것을, 이에 더해 당시로서는 이례적으로 중국인 노동자 인력을 효과적으로 관리할 것을 제안한다.
토론자인 역사학부 서양사전공 노경덕 교수는 과거의 유럽-러시아에 치중된 역사 연구에 대한 반성이 이루어지는 최근 역사학계의 경향을 언급하며 북아시아 연구를 주제로 하는 본 학술대회의 의의를 짚었다. 또, 발표 내용이 19세기뿐만 아니라 시베리아라는 지역에 대한 그 이전 18세기의 식민주의적 시각, 20세기의 이념 대결과 냉전 시기의 시각, 현대의 생태 환경 담론까지도 포괄하여 더 넓은 범위에서 이루어졌으면 한다고 제안했다.
이어서 인류학과 강정원 교수가 “샤머니즘: 북아시아와 유라시아의 연결통로”라는 제목으로 발표를 했다. 발표자는 유라시아와 북아시아가 샤머니즘을 통해서 연결된다는 사실을 주장하고 싶다고 밝히며 발표를 시작했다. 그에 따르면, 샤머니즘은 북아시아와 유라시아를 연결하는 매개이다. 북아시아는 샤머니즘이 중심적으로 성행한 지역이라고 말할 수 있지만 샤머니즘의 정의를 넓게 보면 북아시아뿐만 아니라 유라시아 전역에 광범위하게 분포되어있다는 것이다. 강정원 교수는 샤머니즘을 종교를 넘어 세계관이나 철학, 이론으로 넓게 보는 시각이 필요하다고 주장하며 이러한 이해를 통해서만이 북아시아 샤머니즘과 유라시아, 전 세계와의 연관성이 부각 되는 계기를 마련할 수 있다고 말했다.
또, 발표자는 샤머니즘 연구의 역사와 함께 여러 지역에 산재한 샤머니즘의 특징을 개괄적으로 소개하기도 했다. 특히 유라시아 샤머니즘, 북아시아 샤머니즘에 대한 연구가 중요한 까닭은 한국과 북아시아, 나아가 세계의 복합적인 문화 요소가 수렴되는 지점을 바로 여기에서 찾을 수 있다는 데 있다. 샤머니즘은 북아시아와 유라시아, 나아가 세계가 연계되는 중요한 통로이자, 인류 문화의 탁월한 업적이며 북아시아 혹은 시베리아를 러시아나 유라시아 세계의 또 다른 중심으로 구성해 줄 문화인 것이다.
토론을 맡은 종교학과 최종성 교수는 유라시아와 북아시아의 연결지점을 샤머니즘에서 찾으며 두 지역을 아우르는 샤머니즘의 보편성을 논의하는 과정에서 필연적으로 사장되는 것이 있다며 연구의 한계를 지적했다. 또, 유라시아와 북아시아를 연결하는 샤머니즘의 최소 지점으로 어떤 것이 있는지 명확히 밝힌다면 더 좋은 연구가 될 수 있다고 제안했다. 마지막으로 토론자는 샤먼의 의식 상태뿐만 아니라 그 참여자들의 의식 상태도 연구 대상에 포함한다면 더욱 풍부한 연구가 될 것이라는 말도 덧붙였다.
러시아연구소 소장인 노어노문학과 정하경 교수가 사회를 맡은 두 번째 세션의 첫 발표는 정치외교학부 외교학전공 신범식 교수의 발표 “메가아시아의 연계성과 북아시아”였다. 발표자에 따르면, 21세기는 아시아의 세기가 될 것이라는 예측이 20세기 중후반부터 꾸준히 제기되어왔다. 아시아의 인구수나 경제적 능력이 세계적인 지표에서 압도적이기 때문이다. 특히 탈냉전 이후 지구 질서의 변동 가운데 아시아는 하나의 지역으로서의 특징을 지니고 질적인 변모를 경험하고 있다. 따라서 이러한 변화를 포착하고 분석할 필요가 커졌다.
그러나 아시아 내부의 지역 간 격차가 크고, ‘아시아’라는 명칭이 애초에 서구에서 기원했기에 아시아 내부에서 공통의 연대를 바탕으로 ‘하나의 아시아’라는 정체성을 갖기란 쉽지 않다. 따라서 아시아인들의 새롭고 주체적인 자기규정의 노력 속에서, 즉 세계화의 흐름 가운데 아시아로서의 아시아를 포착하려는 시도 속에서 ‘새로운 아시아(New Asia)’라는 개념이 나타난다.
최근 지구적 세력 배분에 대한 논의는 미주-아시아-유럽이라는 세 축 사이의 연결에 주목하는 시각이 주도권을 쥐고 있다. 이러한 거대 흐름(mega-trend)과 함께 중국 중심성을 극복한 아시아 보편의 틀을 찾기 위해 아시아를 ‘메가아시아’로 조망하고, 아시아 ‘전체’를 하나의 단위로 설정하여 발전시킬 필요가 있다. 메가아시아란 아시아 내 존재하는 다양한 지역들이 신대륙주의 및 신지역주의와 같은 지구적 및 지역적 동학에 의해 연결됨으로써 구성되는 거대한 상호작용의 네트워크라고 할 수 있다. 실크로드 때부터 역사적으로 아시아는 네트워크를 지닌 지역(networked region)을 구성하고 있었다. 현대에 이르러서 아시아에서는 두 개의 새로운 네트워크, 즉 ① 유라시안 뉴 실크로드(Eurasian New Silk Road)와 ② 인도퍼시픽 얼라이언스(Indo-Pacific Alliance)를 형성하기 위한 메가트렌드가 중요한데, 이는 각각 신대륙주의와 신해양주의에 연결되는 개념이다.
이와 같은 메가아시아라는 트렌드 속에서 러시아 영토의 일부인 ‘북아시아(우랄, 시베리아, 극동 지역을 통칭)’라는 개념은 메가아시아의 구성, 메가아시아와 세계의 연결, 향후 메가 아시아의 구조적 변화를 설명하는 데 유용한 개념이 될 것이다. 특히나 메가트렌드가 북극 지역에서도 일어나고 북극 경제권이 출현하고 있는 현재 상황은 북아시아의 방향을 설명하는 중요한 지표가 될 가능성이 있다. 또, 북아시아의 전략적 함의가 커지면서 지정학적 긴장이 고조될 가능성 역시 존재하기에 북아시아에 주목할 필요성은 더욱 대두된다. 메가아시아의 지역들이 공존하는 구조로 가기 위해서는 메가아시아적인 공영 구조를 만드는 것이 러시아에도, 아시아의 국가들에도 유리할 것이다.
네 번째 발표자인 한국수출입은행 해외경제연구소 조영관 연구원은 “북극항로와 북아시아 물류체계의 재편”을 주제로 발표했다. 조영관 연구원은 북극항로에 관한 논의의 필요성을 강조하며 발표를 열었다. 북극항로는 북동항로의 일부로, 러시아의 북극항로는 카라 해협~추코트카 프로비데니야(Провидения, Чукотка)의 약 5,600km에 이르며, 운항 가능 시기는 6~10월, 11월이다. 조 연구원은 크림반도 병합을 전후로 북극항로에 관한 논의가 많이 사그라들었음에도, 북극항로는 수에즈 운하를 이용하는 기존 항로보다 운항 일수를 10일 정도 단축하는 효과가 있다는 점에서 여전히 중요성을 가진다고 설명했다.
발표자에 따르면, 북극항로는 1932년 7월 알렉산드르 시비랴코프(Александр Сибиряков)가 처음으로 운항하면서 탄생하게 되었고 1991년 소련 해체 이후 국제적으로 이용되기 시작했다. 특히 1996년 오타와 선언을 바탕으로 한 북극이사회(북극권 환경 보호와 지속가능한 발전 논의, 북극 주변 거주민 보호 등을 목적으로 한 협의체)의 설립은 소련 이후 북극항로가 적극적으로 개발될 수 있었던 계기가 되었다. 조 연구원은 북극항로가 러시아 내에서 점점 중요한 지역이 되어가고 있음을 역설했는데, 그에 따르면 러시아 내 다른 지역들의 에너지가 많이 소진된 상황에서 그간 기술 부족과 쇄빙선의 부족 등으로 개발되지 못했던 북극항로 지역에 보존된 에너지가 주목을 받고 있기 때문이다.
또, 조 연구원은 북극항로는 러시아뿐만 아니라 러시아의 에너지를 공급받는 국가들에게도 중요한 지역이 되어 가고 있다고 분석했다. 특히 2013년 한중일을 포함한 13개 옵저버국의 북극이사회 가입은 북극항로가 동아시아 및 남아시아지역에까지 영향관계를 미치는 중요한 계기가 되었다. 조 연구원은 자료를 통해 2013년 이후 북극항로의 물동량과 선박수의 급증을 보여주며, 하나의 국제 물류망으로서 북극항로의 가능성을 주장했다. 그는 북극항로 발전의 주요 원인으로 첫째, 에너지 개발, 둘째, 북극해 해빙, 셋째, 물류비 절감의 목적을 지적했다.
러시아 역시 북극항로 발전에 관심을 가지며 관련 정책을 적극적으로 내놓고 있다. 러시아는 2020년 ‘2035 북극 정책’에 이어 2022년 8월 ‘2035 북극항로 개발 계획’을 발표했는데, 이때 러시아는 동아시아를 거쳐 인도까지 물류망의 고려 범위로 두고 있다. 조 연구원은 해당 계획을 포함하여 러시아의 북극항로 관련 정책에서 스스로를 ‘근북극국가’로 표방하는 중국의 적극적인 협력(2013년 북극이사회 옵서버국 지위 획득, 2018년 빙상실크로드 발표 등)이 눈에 띈다고 설명했다.
조 연구원은 일본과 한국 역시 북극항로를 적극 활용하겠다는 의지를 밝히고 있음을 강조했다. 일본은 홋카이도의 토마코마이항을 북극항로 허브항으로 추진하겠다고 발표했으며, 한국은 북극이사회 옵서버 취득 직후 2013년 9월 16일부터 10월 21일가지 러시아 우스트루카-한국 여수까지 북극항로 시범사업을 곧바로 추진했다. 또, 발표자는 한중일 3국의 LNG 수입이 세계 LNG 수입에서 차지하는 비율이 무려 약 50%에 달하며, 따라서 러시아 에너지 개발에 지대한 영향을 미치고 있음을 강조했다.
마지막으로 조 연구원은 북극항로와 물류체계의 변동을 전망했다. 조 연구원은 현재 북극항로가 아시아태평양 지역으로의 물동량이 증대하고 있음에도 그 발전에 있어 명확한 한계를 가진다고 지적했다. 첫째, 현재 북극항로는 연중 사용에 어려움을 겪고 있으며, 둘째, 북극항로의 운항 선박은 비정기 유조선, 벌크선 위주로 컨테이너선은 거의 운항되지 않으며, 셋째, 그 결과 물동량의 70~80%가 석유 및 LNG에 치중되어 있다. 한편 조 연구원은 물류가 재편되는 와중에 한계가 명확했음에도 불구하고, 우크라이나 전쟁과 ‘에버기븐호’ 좌초 사고 등 예상치 못했던 상황이 북극항로의 개발을 촉진했다는 점을 지적하며 발표를 마쳤다.
쉰 명이 넘는 청중이 모여 뜨거운 토론이 이루어진 본 학술회의는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으로 인해 러시아에 관한 관심이 다소 줄어들었다는 세간의 평을 무색하게 했다. 아시아연구소 중앙아시아센터장 신범식 교수는 인문학과 사회과학 분야 전문가들이 러시아와 관련된 현상들에 대해 함께 이야기 나누는 뜻깊은 자리였다며 학술회의의 의의를 평가하며 앞으로도 이런 자리를 주기적으로 마련하자고 말하며 폐회를 선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