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년 6월 9일 서울대학교 아시아연구소 중앙아시아센터가 주최한 콜로키움이 개최되었다. 주제는 <중앙아시아의 코미타투스 전통과 노예병>으로, 이영희 박사(터키 앙카라대학교 오스만제국사 박사)가 발제를 진행하였다.
라틴어로 ‘무장한 호위병’이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는 코미타투스는 본래 로마의 역사학자 타키투스가 용맹한 게르만족 전사들을 묘사할 때 쓰던 표현인데, 이 코미타투스 전통은 중앙아시아 전통에서 기인하였고, 스키타이 시기부터 존재하였다. 코미타투스란 주군을 지키는 친위부대라고 볼 수 있는데, 이들의 의식주를 주군이 해결해주는 대신 코미타투스는 목숨을 걸고 주군을 지키고, 주군이 죽으면 함께 순장되기도 하였다. 이렇듯 중앙아시아에 그 뿌리를 두고 있었던 토미타투스 전통은 실크로드 육상 교통로를 통해서 전 지구적으로 확산, 그리고 각 지역의 특색에 맞게 변형되고 변화하여 정착되게 된다.
특히 이슬람 세계가 이 코미타투스 전통을 받아들이는 과정이 중요한데, 이슬람 세력이 중앙아시아를 정복한 이후에도 이슬람 세계에 소개된 코미타투스 전통이 소개되게 된다. 이후 압바스 왕조 시절에는 아랍 민족을 제외한 세력들을 대거 등용하는데, 이때 페르시아 세력의 영향력을 차단하기 위해 ‘굴람’이라고 불린 투르크 출신의 코미타투스들을 역시 활용하게 된다. 비록 왕조가 쇠퇴하는 시기에 지방 세력들이 굴람들을 활용해 독자세력을 추구하는 단점이 있었으나, 이슬람 세계는 이들의 막강한 군사력을 활용해 강력한 중앙집권화 정책을 추진하였다.
특히 중국과 몽골제국으로 전파된 코미타투스 전통은 한단계 확장된 양상을 보였는데, 바로 당장의 주군, 통치자에 대한 충성을 넘어 가문에 대한 충성과 후견인 역할을 수행하게 된 것이다. 실제로 요나라 시절 한족 전쟁포로 출신인 ‘한덕양’은 단순한 노예병 역할 수행을 넘어 재상직을 수행하였고, 어린 나이에 즉위한 ‘성종’의 후견인 역할을 충실하게 수행한 결과 친왕의 자리까지 오르기도 하였다. 코미타투스의 이러한 정치적 후견인 역할 수행은 튀르크 국가에서도 ‘아타베그’라는 이름으로 나타났는데, 결국 주군이라는 개인에 충성하던 코미타투스가 점차 주군의 가문이라는 집단까지 충성의 개념을 확장시켰다고 볼 수 있다.
마지막으로 오스만 제국에서 나타난 코미타투스 시스템은 코미타투스가 가문이라는 집단을 넘어, 국가라는 집단에 충성하게 되었음을 보여준다. 당시 오스만 제국은 이슬람의 가치를 동원해 기독교 문명을 대표하는 비잔티움 제국과 끊임없는 분쟁을 벌였는데, 이때 이들은 ‘예니체리’, ‘데브쉬르메’ 제도 등 비무슬림 가정의 아동들을 정예부대로 양성하였고, 이들은 콘스탄티노플 공방전에 투입되거나 제국의 엘리트 관료 역할을 수행하며 오스만 제국의 정치에 막강한 영향력을 끼쳤다. 결국 주군, 통치자 개인에게 충성하는 중앙유라시아의 전통이 최종적으로는 국가라는 집단에 충성하는 형태로 확장된 것이다.
발제 이후에는 참석자들 간에 열띤 토론이 벌어졌다. 서울대 중앙아시아센터 소속 정민기 조교는 이민족 출신인 코미타투스들의 반발에도 불구하고 통치자들이 이들을 효율적으로 관리한 메커니즘, 그리고 코미타투스들의 군벌화 과정에 대한 질문을 던졌다. 이에 이영희 박사는 금전적인 혜택 등을 통해 주군들이 노예병들의 충성심을 유지하려 노력하였으나, 때에 따라서는 충성심이 변질되어 때로는 통치자들을 배신하는 경우가 많았다고 답변하였다. 다만 이들은 체제를 완전히 전복하지는 않았는데, 오스만 제국의 경우에도 술탄이 폐위되기는 하였으나 노예병들이 제국 자체는 그대로 유지하려고 한 것이 대표적인 예시이다.
이어 한 참석자는 술탄을 보좌하던 이민족 환관들을 코미타투스의 영역에 포함시킬 수 있는지에 대한 질문을 던졌고, 실제로 환관들도 궁정기관에 소속되어 있었던만큼 이들을 코미타투스의 영역에 포함시킬 수 있다고 언급하였다. 이때 백인 환관들은 주로 술탄의 업무를 보좌하는 비서실 역할을 수행했고, 흑인 환관들은 황실의 하렘과 후궁들을 관리하는 역할을 수행하였다.
고가영 박사(아시아연구소 객원연구원)는 코미타투스 전통이 유목적인 전통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을 언급하였다. 즉 유목사회에서 통치자가 다른 부족들로부터 위협을 느끼기 때문에 친위부대를 두텁게 만들기 시작한 것인데, 이것이 통상적인 문화권의 ‘친위부대’와 어떠한 차이점을 가지고 있는지 살펴보아야 한다는 점을 시사하였다.
신범식(서울대) 교수는 마무리 발언에서 역시 ‘중앙아시아의 코미타투스 전통’이라는 개념이 성립하려면 타 문화권과는 구별되는 특징을 보여야하는데, 과연 노예병과 친위부대라는 개념은 타 문화권에 비해 독특한 특징을 가지고 있을지에 대해 질문을 던졌다. 아울러 코미타투스는 관료제의 속성과 군사집단의 속성이 혼재되어 나타나는데, 서구의 중앙집권 과정에서는 상비군과 관료제가 독립된 별개의 조직으로 나타났던만큼 이 점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고 언급하며, 세미나를 마무리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