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26년도 9월호: 왜 스페인은 그들을 돌려보냈나
2026년 9월 20일
2026년도 10월호: 2022년 전후의 북극 거버넌스
2026년 10월 26일비자로는 더 이상 살 수 없다: 2026년 러시아 외국인 체류제도 개편과 모스크바 한인사회의 체류 전략 전환
강경민(아시아연구소)
1. 흔들리는 체류의 기반
모스크바에 거주하는 한인의 법적 지위는 생각보다 중층적이다. 유학생은 학생비자로, 기업 주재원과 자영업자는 노동허가 및 고급인력(Высококвалифицированный специалист, 이하 ВКС) 제도에 기댄 취업비자로, 대학과 연구기관에 몸담는 교원과 연구자는 교육·과학 분야 초청 절차를 거친 비자로 입국한다. 3년 기한의 임시거주허가(Разрешение на временное проживание, 이하 РВП)나 영주권에 해당하는 거주허가(Вид на жительство, 이하 ВНЖ)로 생활의 기반을 다진 이들도 적지 않다. 그럼에도 지난 십수 년간 한인사회의 표준적 체류 경로는 어디까지나 ‘비자’였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런데 2026년 들어 이 경로에 뚜렷한 균열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급여 요건, 의료검진, 수수료, 범죄경력 증명 등 외국인이 감당해야 할 법적 의무가 짧은 기간에 누적되면서, 비자에 의존한 장기 체류의 지속 가능성 자체가 의문시되기에 이른 것이다. 실제로 올해 들어 교민사회에서는 비자 체류를 정리하고 РВП로 전환하려는 움직임이 눈에 띄게 늘었다. 교육 분야 초청으로 입국하는 한국인 교원의 미성년 자녀, 곧 독자적 경제 능력이 없는 동반 가족에 대한 비자 발급이 ‘거부’가 아닌 ‘보류’ 상태에 머물러 있는 사례도 있다.[1]
그렇다면 2026년을 전후해 러시아의 외국인 체류 법제에서는 무엇이 달라졌으며, 러시아 정부는 왜 지금 이민법의 틀을 바꾸고 있는가. 그리고 그 변화는 모스크바 한인들의 체류 전략을 어떻게 바꾸어 놓고 있는가. 이 물음들에 대해 러시아어 법령 원문과 정부 문서를 짚어 가며, 직접 교민 사회에서 경험한 내용을 함께 엮어 서술하고자 한다.
2. 러시아는 왜 바꾸는가?
1) 정책의 설계도: 2026–2030 국가이민정책 개념
2026년 법 개정의 상위 설계도는 2025년 10월 15일 대통령령 제738호로 승인된 “2026–2030년 러시아연방 국가이민정책 개념”이다.[2] 이 문서는 노동력 수요로 인해 노동이민의 증가가 2030년까지 지속될 것임을 인정하면서도, 국가안보에 대한 새로운 도전과 위협이 이민정책의 쇄신을 요구한다고 명시한다. 그 원칙은 러시아연방과 러시아 국민의 이익 우선으로 요약되며, 생체정보 수집·의료검진·자격 확인의 의무화, 비취업·비학업 가족의 체류 제한, 그리고 ‘전통적 가치를 공유하는’ 외국인에 대한 우대가 주요 과제로 제시된다. 러시아 행정법학계는 이를 이민정책의 패러다임이 사회경제적·인구학적 접근에서 ‘가치 지향적·제한적 안보’ 접근으로 이행한 것으로 평가한다.[3]
2) 직접적 계기가 된 모스크바 크로쿠스 테러와 ‘추방 체제’
제도적 전환의 직접적 계기는 2024년 3월 22일 모스크바 근교 크로쿠스 시티홀 테러였다. 사건 직후 국가두마 의장 볼로딘(В. Володин)의 주도로 이민법 강화를 위한 실무그룹이 구성되었고, 그 첫 결실인 연방법 제260-ФЗ호(2024.8.8)가 2025년 2월 5일 시행되면서 이른바 ‘추방 체제(Режим высылки)’와 ‘통제대상자 명부(Реестр контролируемых лиц)’가 도입되었다. 법원을 거치지 않는 내무부의 추방 결정 권한이 열리자 집행 규모는 가파르게 늘어, 2025년 한 해 약 7만 2천 명이 추방되었고 2026년 상반기 추방 건수는 전년 동기 대비 65.5% 증가하였다. 같은 기간 러시아 체류 외국인 수는 약 630만 명에서 570만 명으로 감소하였다.[4]
3) 국가 안보 논리와 경제 현실의 간극
그러나 공식 논리와 경제 현실 사이의 간극은 좁지 않다. 블룸버그 이코노믹스는 2025-2026년 기간 러시아의 노동력 부족을 약 150만 명으로 추산하며, 2026년 상반기 우즈베키스탄, 타지키스탄, 키르기스스탄 국민의 노동 목적 입국은 전년 동기 대비 약 15% 감소하였다.[5] 이주민 범죄가 전체 범죄의 2~4% 수준에 머문다는 지적은 ‘범죄 억제’라는 명분의 설득력을 약화시키며, 수수료 인상법이 연방예산 수입 확충을 입법 목적으로 명시한 데서 보듯 재정적 동기 또한 개편의 한 축을 이룬다.[6] 러시아 대통령령 국가경제 및 공공행정 아카데미(РАНХиГС) 연구원인 플로린스카야(Ю. Флоринская)가 고용주 중심의 ‘조직 모집’ 구상을 비현실적이라고 평가한 것도 이러한 긴장의 연장선에 있다.[7]
요컨대 개편의 정책적 시야는 중앙아시아발 대량 노동이민에 맞추어져 있으나, 규범은 국적과 체류 목적을 가리지 않고 일률적으로 설계되었다. 표적은 특정하되 규범은 보편적인 이 구조야말로 정책의 직접 대상이 아닌 집단에게 예기치 않은 부담을 전가하는 메커니즘일지 모른다.
3. 그러면 무엇이 바뀌었나 – 2026년 법령 지형
흔히 언급되는 ‘2026년 9월 1일 새 이민법 시행’이라는 표현은 정확하지 않다. 이날 효력을 발생한 것은 의료검진 제도를 개편한 연방법 제162-ФЗ호, 모스크바권 외국인 위치등록 앱 «Амина»의 적용 확대, 외국인 고용 통보 양식을 바꾼 내무부령 제290호 등이며, 구조적으로 더 큰 변화는 2026년 하반기에 공포되어 2027년에 걸쳐 단계적으로 시행되는 법률들에 담겨 있다. 주요 내용을 정리하면 [표 1]과 같다.
[표1] 2026년 전후 러시아 외국인 체류 관련 주요 법령
| 법령 | 시행일 | 핵심 내용 | 재러 한인에 대한 함의 |
| 연방법
제162·163-ФЗ호 |
2026.9.1 | 입국 후 30일 이내 의료검진(종전 최대 90일), 이후 매년 갱신.
– 위반 시 벌금 2만 5천~5만 루블 벌금형 및 추방 |
노동비자·РВП·ВНЖ 신청자와 (개인초·청관광비자를 포함한 비자 소지자 중) 90일 초과 체류자에게 적용 |
| 연방법
제189·190-ФЗ호 |
2026.7.26 | 수수료 인상
– РВП 15,000루블 (종전 1,920루블) – ВНЖ 30,000루블(6,000루블) – 초청장 8,000루블(960루블) |
개인과 고용주의 체류 비용 급증 |
| 연방법
제241-ФЗ호 |
2027.1.1(원칙) / 2027.3.1(ВКС) | 최저생계비 이상 소득 요건 필요
– ВКС 급여 하한: 월 717,000루블 – 교원·연구자: 월 358,500루블 |
비자 체류의 경제적 기반 잠식 |
| 연방법
제294-ФЗ호 |
2026.11.3 | 추방을 수반하는 행정위반 조문 22개 45개 (미허가 집회, 군 ‘신용 훼손’ 등 포함) | 정치적 표현과 경미한 위반도 추방 사유 |
| 연방법
제314-ФЗ호 |
2027.2.1 | РВП·ВНЖ 신청 시 14세 이상 무범죄 증명(국적국별, 발급 3개월 이내), 모든 미말소 전과는 거부 사유 | 한국 범죄경력회보서 제출 의무화 |
| 정부명령 제2792-р·2807-р호 |
2026·2027년분 | 쿼터에 의한 신청 РВП 3,802건 3,010건으로 감소 (쿼터 수량 축소) | 쿼터 경로의 축소 |
※ 출처: 각 법령 원문 및 법률정보 포털을 바탕으로 정리함.
4. ‘비자 체류’에서 ‘РВП 전환’으로
1) 급여 문턱의 현실
모스크바 한인사회에 가장 직접적인 충격을 준 것은 ВКС 급여 하한의 상향이다. 연방법 제241-ФЗ호는 “러시아연방 외국인의 법적 지위에 관한 법률”(제115-ФЗ호) 제13.2조를 개정하여 ВКС의 최저 급여를 월 717,000루블로, 대학·연구기관의 교원·연구자 등 일부 범주에 대해서는 월 358,500루블로 정하였다.[8] 종전에 대학·연구기관은 기관별 기준에 따라 급여를 지급해 왔고, 영리 부문의 ВКС 근무자에게는 분기당 750,000루블, 곧 월 약 25만 루블의 기준이 적용되어 왔다. 이에 비추어 보면 새 기준은 약 2.9배에 이르는 상향이다. 학교와 연구소는 물론, 중소 규모의 한국계 기업이나 한국인을 고용한 현지 기업 역시 이 수준의 급여를 지급하거나 그에 상응하는 소득을 창출할 여력이 없다. 각종 수당을 기준 급여에 편입하는 방식 또한 현장에서는 현실적 해법으로 받아들여지지 않고 있다. 그렇다고 월 3만~4만 루블 수준의 일반 노동 임금으로 고용 형태를 전환하는 것도 РВП 미소지자인 비자 체류자에게는 처음부터 대안이 되지 못한다는 것이 현장의 일관된 인식이다.
그 중에서도 처지가 더욱 곤란한 것은 현지에서 사업체를 운영하는 한인 자영업자들이다. 이들은 대개 1인 법인 형태의 소규모 회사를 설립한 뒤, 그 회사를 통해 ВКС 자격으로 3년 기한의 비자를 받아 사업을 영위해 왔다. 그러나 월 717,000루블 이상을 대표자 본인의 급여로 지급할 수 있을 만큼 수익을 내는 영세 법인은 극히 드물다. 다만 이 급여 기준은 2027년 3월 1일부터 시행될 예정이며, 동법 제2조 제6항은 그 이전에 취득한 노동허가에 대해 경과규정을 두고 있다. 따라서 2026년 들어 나타난 РВП 전환의 급증은 이미 발효된 규범에 대한 반응이라기보다, 예고된 규범에 대한 선제적 대응의 성격이 짙다.
2) РВП로의 이동
비자 체류의 대안으로 부상한 РВП 역시 결코 넓은 문이 아니다. 쿼터에 의한 РВП 발급 허가는 2026년 러시아연방 전체 3,802건에서 2027년 3,010건으로 줄었고, 러시아 국민과의 혼인을 근거로 한 쿼터 외 신청도 2024년 개정으로 혼인 기간 3년 이상 유지 또는 혼인 중 공동 자녀의 존재를 요건으로 변동되었다0. [9] 신청 단계의 필수적인 수수료·시험·의료검진·지문 등록에 더해, 취득 이후에도 연 1회의 거주 확인 통보, 허가 지역에의 구속, 연간 6개월 초과 출국 시의 취소 위험이 뒤따른다. 2027년부터는 소득 요건(제241-ФЗ호)과 무범죄 증명(제314-ФЗ호)이 더해진다. 비자 체류의 출구로 선택된 РВП가 그 자체로 점점 좁아지는 관문이 되고 있는 것이다. 다만 2024년 9월부터 대한민국 국적자에게도 쿼터 밖의 경로가 열렸다. 대통령령 제702호가 ‘정부 지정 국가’ 출신으로서 ‘전통적 러시아 가치’를 이유로 이주하려는 외국인에게 쿼터와 언어·역사·법 시험을 면제한 РВП 신청을 허용하였고, 정부 명령 제2560-р호(2024.9.17)가 대한민국을 그 47개 대상국에 포함하고 있다.
3) 우회로의 ‘가치 비자’와 РВП
이러한 상황에서 일부 한인이 주목하는 경로가 대통령령 제702호에 근거한 이른바 ‘가치 비자’와 РВП 간소화 절차이다. 2024년 8월 19일 서명된 대통령령 제702호 “전통적 러시아 정신적·도덕적 가치를 공유하는 자에 대한 인도적 지원에 관하여”는 서명일부터 시행되었으며, 핵심 조항(제1·2·4·5항)은 2024년 9월 1일부터 적용되었다.[10] 이 법안의 핵심은 자국의 ‘파괴적 신자유주의 이념 강요’ 정책에 동의하지 않아 러시아로 이주하려는 외국인에게 입국 및 체류에 관해 두 가지 혜택을 부여한다. 그 중 하나는 3개월 단수 일반사증, 곧 ‘가치 비자’의 발급이고, 다른 하나는 쿼터와 러시아어·역사·법 시험을 면제한 РВП 신청의 허용이다. 대상국 목록은 정부 명령 제2560-р호(2024.9.17)로 확정되었으며, 앞서 언급했듯이 47개 항목 가운데 대한민국이 포함되어 있다.[11]
여기서 유의할 점은 ‘가치 비자’와 간소화된 РВП가 반드시 한 묶음으로 움직이는 것은 아니라는 사실이다. 실무상 이 경로를 밟는 한국인은 두 유형으로 나뉜다. 첫째는 주한러시아 재외공관에서 ‘가치 비자’를 발급받아 입국한 뒤 쿼터 없이 РВП를 신청하는 경우이다. 둘째는 이미 노동비자, 가족동반비자, 개인초청비자 등 다른 비자로 입국해 체류하던 중 같은 사유로 쿼터 없이 РВП를 신청하는 경우이다.[12] 두 유형 모두 ‘전통적 가치의 공유’를 신청 사유로 내세워 제702호 절차를 밟는다는 점에서는 다르지 않다. 즉 ‘가치 비자’는 입국 수단의 하나일 뿐이며, 쿼터와 시험 면제라는 실질적 혜택은 РВП 단계에서 제702호의 사유를 원용하는 데서 비롯된다. 반대로 이 사유를 내세우지 않는 한국인은 종전과 같이 러시아어·역사·법 시험을 치르고 쿼터를 배정받는 일반 경로를 거쳐야 한다.
여기에는 흥미로운 역설이 있다. 러시아가 2022년 ‘비우호국’으로 지정한 대한민국은 동시에 ‘신자유주의 이념을 강요하는 국가’ 목록에도 올라 있다. 그리고 바로 그 분류 덕분에 선택에 의해 ‘전통적 가치의 공유자’로서 체류상의 특혜를 받을 수 있게 되었다. 다만 한국인 신청 규모에 관하여 공식적으로 확인 가능한 수치는 첫 2024년 9월 1일에 시행 후 6개월간의 РВП 신청 34건(전체 약 800건 중 10위)이 사실상 유일하다. 이후 내무부와 외무부는 전체 РВП 신청 건수(2025년 7월 기준 1,600건 이상)와 관련 사증 발급 건수(2026년 10월 4일 기준 1,989건)만을 공개하였을 뿐, 국가별 내역은 밝히지 않았다..[13]
5. 절차의 장벽과 확대되는 제재 위험
1) 사하로바 이민센터
제도적 장벽은 절차의 장벽으로 이어진다. 모스크바에서 РВП·ВНЖ·국적 관련 서류는 모스크바시 산하 국가예산기관인 ‘모스크바시 다기능 이민센터’, 통칭 사하로바(Сахарово) 이민센터에서만 사전 예약제로 접수를 받는다. 이 센터는 2015년 임시 시설로 출발하여 2016년 1월 신(新)모스크바 보로노프스코예 거주구의 현 본관으로 이전하였으며, 당시 하루 최대 7,500명을 처리하는 187개 접수 창구를 갖춘 시설로 소개되었다.[14] 본래 노동특허(патент)를 받으려는 대규모 노동이민자의 처리를 염두에 두고 설계된 이 시설에서, 주재원, 사업가, 교원 등 다양한 형태로 체류 중인 한인들 역시 같은 동선과 대기열을 거쳐야 한다. 온라인 사전 검토를 거쳐야 예약이 가능하고 접수 이후에도 장시간의 대기가 반복된다는 것이 교민들의 공통된 경험이다.
2) 서류의 문턱과 중개 의존
서류를 갖추어 접수에 이르기까지의 문턱 또한 높다. 한국에서 발급된 문서는 아포스티유를 거친 뒤 러시아 내에서 공증 번역되어야 하며, 2027년부터는 발급 후 3개월 이내의 범죄경력회보서가 추가로 요구된다. 특히 까다로운 것은 성명 표기의 일치 문제이다. 제출 서류의 성명은 그동안 입국 시 받은 입국카드, 거주등록증, 현재 소지한 비자에 기재된 성명과 정확히 일치해야 한다. 그러나 과거에 발급된 이들 문서 사이에 이미 표기가 엇갈려 있는 경우가 적지 않다. 이 때문에 로펌을 통해 서류를 준비하고도 사하로바 이민센터에서 접수를 거부당하는 사례가 교민들 사이에서 잇따르고 있다. 이 경우 이의 제기(обжалование)를 거쳐 서류를 다시 제출하는 길이 있으나, 그만큼 시간과 비용이 더 든다. 서류를 한 차례 제출했다고 해서 신청이 곧바로 완료되는 것도 아니다. 보완이 필요하거나 누락된 서류가 발견되면 제출 예약부터 모든 절차를 처음부터 다시 밟아야 하고, 서류 검토 비용 역시 다시 납부해야 한다. 약 4개월에 이르는 심사 기간 동안에는 비자 연장 등을 통해 합법 체류도 유지해야 한다.
약 4개월에 이르는 심사 기간 역시 신청인에게는 또 하나의 시험대이다. 비자로 입국한 외국인의 경우 РВП를 신청했다고 해서 체류 기간이 자동으로 연장되지는 않으며, 체류의 적법성은 여전히 비자의 유효기간에 묶여 있다. 이 때문에 심사 도중 비자 만료가 다가오는 신청인은 관할 내무부 이민국을 통해 체류를 이어 갈 ‘РВП 서류 제출을 완료한 신청인(Подны документы на РВП)’을 위한 단수 비자를 발급받는 것이 현장의 일반적인 대처이다. 문제는 최근 신청자가 급증하면서 결정이 예정일을 넘기는 사례가 잦아졌다는 점이다. 이 경우 신청인은 일단 출국해 국외에서 비자를 새로 받아 재입국해야 하는 처지에 놓이기도 한다. 한편 РВП 발급이 결정되면 그 유효기간에 맞춘 ‘임시거주자 비자(Виза временно проживающего лица)’가 발급되며, 이 비자로 РВП 허가 기간 중 출입국이 가능하다. 국외에 머무는 동안 발급 결정이 내려진 경우에도 법률 해설에 따르면 РВП 수령을 위한 입국용으로 우선 4개월 기한의 임시거주자 비자가 발급되고, 본인 귀책이 아닌 사유로 허가를 받지 못하면 6개월까지 연장할 수 있다.
이와 같이 러시아어 구사 능력만으로는 감당하기 어려운 이러한 ‘행정적 문해력’의 요구는 현지 대행업체와 로펌에 대한 의존을 낳는다. 그리고 이는 추가 비용의 발생, 부실 대행의 위험, 정보 비대칭의 심화로 이어지고 있다.
3) 사증 체류에 관한 처벌 내용 확대
한편 체류 자격의 공백은 곧바로 제재 위험으로 이어진다. 러시아 법원 판결문에서는 한·러 사증면제협정의 1회 60일 체류 한도를 알지 못했다고 진술한 한국인에게 벌금 2,000루블과 ‘통제된 자진출국’ 형식의 행정추방을 명령한 사례(노보시비르스크주 옵스크 시법원, 2019), 비자 만료 후의 체류를 이유로 같은 처분을 유지한 사례(칼루가주 법원, 2023)가 확인된다.[15] 2025년 2월부터는 합법적 체류 근거 없이 머무르는 외국인이 통제대상자 명부에 등재되며, 이 경우 은행 거래를 비롯한 각종 법률행위가 제한된다.[16] 최근 2026년 10월에는 하바롭스크에서 활동하던 한국인 선교사가 불법이주 조직 혐의(형법 제322.1조)로 징역 5년 8개월을 선고받았다는 보도가 나왔다(항소 중).[17] 이는 단순 체류·등록 문제가 행정 제재를 넘어 형사 사건으로 비화할 수 있음을 보여 주는 사례이다.
6. 비우호국 국민이자 동시에 가치의 공유자로
2026년을 전후한 러시아 외국인 체류 법제의 개편은 안보와 통제를 축으로 한 이민정책 패러다임의 전환을 법제화한 것이다. 그 표적은 분명 중앙아시아발 대량 노동이민이었다. 그러나 국적과 체류 목적을 가리지 않는 일률적 규범 설계로 인해 그 비용은 모든 외국인에게 고르게 분담되었고, 재러 한인사회 역시 적지 않은 부담을 떠안게 되었다. 비자 체류에서 РВП로의 이동과 ‘가치 비자’라는 우회로의 모색은 이러한 구조적 압박 아래 놓인 소규모 전문직 공동체의 대응이다. 그것은 자발적 정착의 선택이라기보다, 제도가 강제한 전략적 재배치로 해석할 수 있으며 이 재배치가 개인의 영역에 머물지 않는다는 점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2027년 3월 ВКС 급여 기준이 시행되면 그 충격은 한국계 기업과 한국인을 고용한 현지 기업, 그리고 한국인 교원·연구자를 둔 대학과 연구기관으로 고스란히 번질 것이다. 그럼에도 한인들이 기댈 수 있는 정보 기반은 여전히 빈약하다. 해마다 수시로 바뀌는 러시아 이민법제의 속도의 공백을 메우는 것은 결국 교민 사이의 입소문과 대행업체의 해석이다. 그만큼 정보 비대칭은 개인이 감당해야 할 또 하나의 비용이 되고 있다.
현재 이 문제는 ‘비우호국’ 출신 국민이 바로 그 국가가 ‘신자유주의 이념을 강요한다’는 이유로 ‘전통적 가치의 공유자’로 재분류되어 РВП 발급 절차상 특혜를 얻는 구조라는 역설을 가지고 있다. 이는 러시아의 이민정책이 노동력의 수급을 관리하는 행정의 영역을 넘어, 이주자를 가치와 정체성에 따라 선별하는 정치의 영역으로 옮겨 가고 있음을 시사한다. 재러 한인에게 체류는 이제 서류와 급여의 문제를 넘어 어떤 명분 아래 머물 것인가를 스스로 묻게 하는 문제가 되었다. 가치화이자 선별화의 성격을 지닌 이 같은 러시아의 이민 정책이 어디까지 진행될 것인지는 앞으로 더 면밀히 지켜보아야 할 질문이다.
[1] 공식적인 ‘거부’가 아닌 ‘보류’이기에 이를 뒷받침하는 지침이나 통계는 확인하기 어렵다. 다만 뒤에서 살펴볼 신이민정책 개념이 일하지도 공부하지도 않는 가족 구성원의 체류 제한을 명시하고 있다는 점에서, 정책 방향과 무관하지 않으리라는 추정은 가능하다.
[2]Указ Президента РФ от 15.10.2025 № 738 «О Концепции государственной миграционной политики Российской Федерации на 2026–2030 годы». № 4171-р(2025.12.30)
[3]«Новая концепция государственной миграционной политики России: в контексте обеспечения (защиты) духовно-нравственных ценностей», Административное право и процесс, 2026, № 3, с. 56–60.
[4]Парламентская газета, 2026.4.18; BFM.ru, 2026.7.29
[5]The Moscow Times, 2026.8.6; Ведомости, 2026.8.6.
[6]G. Ibragimova, “Moscow’s Xenophobic Migration Policy Is Impacting Relations With Central Asia,” Carnegie Politika, 2025.10.2; И. Надеждин, «Искусство жонглировать цифрами», Профиль, 2026.
[7]Ведомости, 2025.10.17
[8]Федеральный закон от 26.07.2026 № 241-ФЗ, ст. 1 п. 10; ст. 2 ч. 3·6. 단, 급여 하한은 매년 지수화된다.
[9]Распоряжение Правительства РФ от 06.10.2025 № 2792-р; от 07.10.2026 № 2807-р.
[10]Указ Президента РФ от 19.08.2024 № 702 «Об оказании гуманитарной поддержки лицам, разделяющим традиционные российские духовно-нравственные ценности», п. 6.
[11]Распоряжение Правительства РФ от 17.09.2024 № 2560-р.
[12] 이민 전문 법률사무소의 해설에 따르면 제702호에 따라 발급된 사증으로 입국하는 것이 바람직하나 일반 개인초청 사증을 포함한 다양한 목적의 사증으로 입국한 경우에도 신청이 가능하다. 다만 전자비자(электронная виза)로 입국한 경우는 제외된다(Ve-Law, 2026).
[13]russianroute.com, 2025.3.27; vezdenashi.ru, 2025.7.9; РИА Новости, 2026.10.13.
[14] mos.ru; proverky.net
[15]Обской городской суд Новосибирской области, дело № 5-35/2019; Калужский областной суд, дело № 12-274/2023(sudact.ru).
[16] Федеральный закон от 08.08.2024 № 260-ФЗ(2025.2.5 시행); 115-ФЗ 제31.2조(통제대상자 명부). 제한 조치의 내용은 ppt.ru 법령 해설 참조.
[17]Известия, 2026.10.20; РЕН ТВ, 2026.10.20.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