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중앙아시아센터 이주난민연구단 제15회 전문가초청특별강연
2026년 2월 13일
2026년도 3월호: 걸프 국가의 이주 노동자, 이란 전쟁의 또다른 피해자
2026년 3월 31일서울대학교 아시아연구소 중앙아시아센터 이주·난민연구단은 2026년 3월 30일, 라승도 교수를 초청해 「슬픈 툰드라: 현대 러시아 영화에 나타난 북극 이미지」를 주제로 전문가 특별 강연을 개최했다. 라 교수는 러시아 북극 지역과 문화, 영화 연구를 오랜 기간 수행해 온 전문가로서, 현대 러시아 영화 속 북극 이미지의 유형과 그 정치·사회적 의미를 중심으로 강연을 진행했다.
라 교수는 강연 서두에서 러시아에서 북극에 대한 관심이 본격적으로 확대된 시점을 2010년 전후로 제시하며, 이는 단순한 문화적 관심이 아니라 국가 전략과 긴밀히 연동된 흐름이라고 설명했다. 소련 붕괴 이후 내부 안정화에 집중하던 러시아는 2000년대 후반부터 북극을 전략적 공간으로 재인식하기 시작했고, 이에 따라 정책과 제도, 문화 생산이 동시에 활성화되었다. 특히 영화는 이러한 흐름 속에서 북극을 대중적으로 재현하고 확산하는 핵심 매체로 기능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이어 라 교수는 현대 러시아 영화 속 북극 이미지가 크게 세 가지 범주로 나타난다고 분석했다. 첫째, 북극은 천연자원의 보고로서 개발의 대상이 되는 공간으로 재현된다. 둘째, 북극은 영토 확장과 국경의 의미를 강조하는 프론티어 공간으로 등장하며, 탐험가와 과학자, 군인 등의 영웅 서사가 중심을 이룬다. 셋째, 북극은 소수민족과 원주민의 삶을 담아내는 공간으로 그려지지만, 이들의 서사는 종종 주변화되거나 제한적으로 재현된다는 특징을 보인다.
라 교수는 특히 북극을 배경으로 한 영화들이 러시아의 국가 정체성과 긴밀히 연결되어 있다는 점을 강조했다. 많은 작품에서 “우리가 최초다”라는 서사가 반복되며, 이는 러시아의 과학기술적 성취와 영토적 정당성을 강조하는 상징적 장치로 작동한다. 이러한 서사는 제국 시기와 소련 시기의 탐험과 개척 경험을 현재로 호출하며, 강대국으로서의 러시아 이미지를 재생산하는 데 기여하고 있다.
동시에 강연에서는 북극의 어두운 현실을 조명하는 영화들도 함께 소개되었다. 산업 개발 과정에서 형성된 도시의 환경오염, 알코올 문제, 사회적 붕괴, 그리고 전통과 단절된 원주민 공동체의 변화 등은 북극을 ‘슬픈 툰드라’로 만드는 핵심 요소로 제시된다. 특히 일부 작품은 현대화가 오히려 원주민의 삶을 훼손하고 정체성을 약화시키는 과정을 비판적으로 묘사하며, 북극 개발의 이면을 드러낸다.
또한 라 교수는 북극 이미지가 단순한 자연환경의 묘사를 넘어 러시아의 문화정치적 상징으로 기능한다는 점을 강조했다. 북극은 자연과의 투쟁, 인간 의지의 승리, 국가적 성취를 상징하는 공간으로 재현되며, 이러한 서사는 우주, 전쟁, 스포츠 등 다른 국가 서사와도 유사한 구조를 보인다. 즉, 북극은 러시아의 ‘위대함’을 시각적으로 구현하는 핵심 무대로 활용되고 있다는 것이다.
강연 후 이어진 질의응답에서는 북극 개발과 문화 재현의 관계, 영화가 국가 전략과 결합되는 방식, 그리고 북극 지역 원주민 서사의 변화 가능성 등에 대한 논의가 이루어졌다. 라 교수는 특히 최근 들어 일부 작품에서 원주민들이 자신의 목소리로 서사를 구성하기 시작했다는 점을 긍정적인 변화로 평가하면서도, 여전히 구조적 한계가 존재한다고 지적했다.
이번 강연은 북극을 둘러싼 논의가 단순한 자연환경이나 자원 문제를 넘어, 문화·정치·사회적 의미가 교차하는 복합적 영역임을 보여주었다. 특히 현대 러시아 영화라는 문화적 텍스트를 통해 북극을 재해석함으로써, 러시아의 국가 전략과 정체성을 보다 입체적으로 이해할 수 있는 계기를 제공했다는 점에서 의미 있는 자리였다.




